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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순다르 피차이 (Sundar Pichai) 구글 제2 창업 "크롬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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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사진=로이터
구글의 총사령탑 순다르 피차이에게는 "2008년의 반란"이 꼬리표가 붙어있다. 당시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에릭 슈미트 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IE)로 웹 브라우저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하던 시기, 구글만의 자체 웹 브라우저를 직접 개발해 출시하자는 안건이 올라왔다. 에릭 슈미트는 "지금 구글에는 브라우저 전쟁에 진입하는 무모한 소모전을 벌일 여력이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30대 중반의 부사장급 엔지니어였던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MS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구글 검색엔진 접근을 차단하거나 기본 설정에서 제외할 경우, 구글의 검색 광고 수익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데이터 분석 자료를 제시했다. 피차이는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설득해 냈고, 비밀리에 개발팀을 구축해 2008년 9월 웹 브라우저 '크롬(Chrome)'을 시장에 선보였다.결과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었다. 출시 초기 낮은 점유율로 시작했던 크롬은 빠른 로딩 속도와 웹 표준 준수를 무기로 점유율을 늘려갔다. 결국 MS의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글로벌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사건은 구글 내부에서 순다르 피차이라는 인물이 리더십과 전략적 판단력을 동시에 입증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이후 2015년 구글 CEO 취임, 2019년 모기업 알파벳 CEO 겸임으로 이어진 그의 승진 경로는 2008년 '크롬 프로젝트'라는 실제적 성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가 엔지니어 출신으로 테크 최고 존엄의 자리에 오른 과정은 획기적인 기술적 돌파구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치열한 실리콘밸리의 서바이벌 게임 속에서 자신만의 명확한 무기 세 가지를 구축했다. 그 첫째가 '크롬(Chrome) 신화'와 압도적인 사업적 성과이다. 2004년 구글에 입사한 피차이가 거둔 최고의 업적은 웹 브라우저 '크롬'의 개발이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상황에서, 피차이는 자체 브라우저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기존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크롬의 대성공은 단순히 브라우저 점유율을 높인 것에 그치지 않고, 구글의 검색 생태계를 완벽히 방어하는 전략적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

둘째는 파편화된 조직을 묶는 '경계 없는 조율자(The Unifier)'로 묵어내는 능력이다. 구글은 천재적인 엔지니어들이 모여 각자의 아이디어를 경쟁시키는 조직 문화로 유명하다. 이는 혁신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사업부 간의 극심한 칸막이 현상과 내부 갈등을 유발했다. 피차이는 거친 충돌이 일상화된 조직에서 특유의 경청 능력과 겸손함으로 상대방을 설득했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기술적 맥락을 완벽히 이해하면서도, 경영진과 이사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부드럽게 조정하는 '정교한 매개체'로서의 독보적 입지를 다졌다.
피차이의 세번째 업적은 안드로이드와 핵심 사업부의 성공적 통합이다. 드로이드의 창시자인 앤디 루빈(Andy Rubin)이 떠난 후, 피차이는 안드로이드 사업부까지 총괄하게 되었다. 그는 파편화되어 있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구글의 핵심 검색 및 앱 생태계와 정교하게 결합시켰다. 이후 구글 드라이브, 구글 지도 등 핵심 제품군을 '하나의 구글'이라는 거대한 플랫폼 테두리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기업 역사에서 창업자와 후임 전문경영인의 관계는 늘 위태로운 외줄 타기와 같다.피차이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의 관계는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의 조화'를 보여준다 절대적 신뢰에 기반한 전권 위임이 주목을 끈다. 2015년 구글이 지주회사 체제인 '알파벳'으로 개편될 때 피차이는 구글 CEO로 승진했다. 이후 2019년, 두 창업자가 알파벳의 총괄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용퇴하면서 피차이는 모기업 알파벳의 CEO까지 겸임하게 되었다. 창업자들은 용퇴 당시 "우리가 피차이보다 더 의존한 사람은 없었으며, 알파벳의 미래를 이끌 적임자는 그뿐이다"라는 선언으로 그에게 완전한 전권을 부여했다.

차등의결권 구조 속에서의 공존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구글은 창업자가 일반 주식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Dual-Class Stock)' 구조를 가진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경영 전면에서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대주주로서 기업의 최종 지배권을 쥐고 있다. 피차이는 대주주들의 원천 기술(AI, 우주, 생명공학 등)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인 매출 실적과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책임지는 양방향 소통을 유지한다.최신 생성형 AI 전쟁이 격화되면서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의 코드 작성 현장으로 복귀했을 때도, 피차이는 이를 권력 침해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술적 협업자로 포용함으로써 잡음 없는 경영 권력을 유지했다.

피차이가 구글을 이끈 지난 10여 년은 구글이 단순한 '검색 포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으로 체질을 완벽히 바꾼 시기였다 취임 직후 피차이는 구글의 비전을 기존 'Mobile First'에서 'AI First'로 전격 수정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DeepMind)와 구글 내 연구 조직을 통합하여 글로벌 AI 연구 생태계를 선도하도록 판을 짰다. 이는 오늘날 거대언어모델(LLM)인 '제미나이(Gemini)' 구축의 기초가 되었다.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의 흑자 전환과 대형화: 검색 광고에 편중되어 있던 구글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기업용 클라우드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구글 클라우드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 안착과 함께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피차이 재임 기간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수배 이상 급증하며 '2조 달러 클럽'에 안착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안정적인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통해 주주 가치를 증대시켰다.에릭 슈미트가 벤처기업 구글에 '경영의 틀'을 잡았다면 래리 페이지는 미래를 향한 '파괴적 혁신'을 시도했다. 순다르 피차이는 거대 공룡을 정교한 시스템으로 다듬어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기계'로 체질을 완벽히 개조한 경영자라 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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