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트유 72.88달러·WTI 69.26달러…미·이란 합의 취약성 다시 부각
이미지 확대보기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상업용 선박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유가가 상승했다. 세계 에너지 운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다시 커지자 원유시장에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었다.
로이터통신은 7일(이하 현지시각)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 공격 보도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되살아나면서 국제유가가 올랐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날 장중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89센트, 1.24% 오른 72.88달러(약 11만원)를 기록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71센트, 1.04% 상승한 69.26달러(약 10만5000원)에 거래됐다.
CNBC에 따르면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한때 배럴당 72.85달러(약 11만원)로 1.2% 올랐고, 8월 인도분 WTI 선물은 69.26달러로 1% 상승했다. WTI는 전 거래일에는 지난 2월 27일 이후 최저 수준으로 마감했다.
◇ 악시오스 “이란, 선박에 미사일 발사”
앞서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익명의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6일 저녁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던 선박들을 향해 최소 2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선박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는 6일 오만 리마 동쪽 8해리 지점에서 사고 보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UKMTO에 따르면 남쪽으로 항해하던 유조선이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맞아 화재가 발생했으며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로이터도 해상보안 소식통들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 선적 원유 운반선이 오만 해안과 가까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손상됐다고 전했다. 같은 지역에서는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 재부상
덴마크계 투자은행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 애널리스트는 이날 유가 상승의 핵심 요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소식이 원유 가격에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을 다시 불어넣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센 애널리스트는 과거와 비교하면 위험 프리미엄이 크지는 않지만 현재 시장 매수세의 주된 동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추가 긴장이 발생하면 브렌트유가 먼저 배럴당 75달러(약 11만4000원)를 시험하고 이후 80달러(약 12만1000원)가 다음 관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걸프 지역 원유와 LNG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통로다.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 해협은 세계 하루 원유와 LNG 공급량의 5분의 1가량이 지나던 에너지 병목 지점이었다.
선박 한두 척의 피해가 곧바로 대규모 공급 차질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위치 때문에 원유시장은 실제 차질 여부보다 위험 인식 변화에 먼저 반응하고 있다.
◇ 미·이란 임시 합의 취약성 부각
이번 선박 공격 보도는 미국과 이란의 임시 평화 합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도 다시 드러냈다. 미국 정부와 이란 정부는 지난달 약 4개월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영구적 평화 합의를 위한 간접 협상은 지난주 의미 있는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양국이 합의에 이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일을 끝내겠다”며 이란을 향한 군사 행동 가능성을 다시 시사했다.
이란 외교부도 7일 미국의 위협이 계속될 경우 테헤란과 워싱턴 간 최종 합의 협상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 교착과 군사적 위협이 맞물리면서 호르무즈 해협 운항 리스크가 다시 원유시장 변수로 떠올랐다.
독일계 은행 베렌베르크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호르무즈 해협 주변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미국과 이란 모두 궁극적으로는 충돌을 통제할 이해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낮은 유가를 원하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제재 완화에 따른 자금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 일본행 사우디 원유 운반선은 해협 통과
해협 긴장에도 일부 원유 운송은 계속되고 있다. 선박 추적자료에 따르면 사우디 원유를 실은 일본 소유 초대형 유조선 2척이 7일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는 일본이 이달 중동산 원유 공급 측면에서 일부 숨통을 틀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선박 공격이 반복되면 보험료, 운임, 항로 선택, 입항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원유시장에서는 실제 공급 중단 여부와 별개로 해상 운송 위험이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추가 공격이 발생하거나 선박 운항이 위축될 경우, 단기 유가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 사우디, 홍해 송유관 확대 검토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사우디가 서부 홍해 연안으로 이어지는 원유 송유관의 수송 능력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사우디는 물론 주변국들도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더 많은 원유를 수송할 수 있다. 해협 긴장이 반복될수록 산유국들은 우회 수송망 확보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다만 송유관 증설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설비 투자, 운송 계약, 항만 처리 능력, 주변국 협력 등이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의 유가 흐름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 상황과 미국·이란 협상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 2026년 말 공급 과잉 전망도
지정학적 긴장에도 중장기 유가 전망은 일방적인 상승 쪽만은 아니다. 프랑스계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원유시장이 올해 말부터 2027년에 걸쳐 공급 부족에서 공급 과잉으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시에테제네랄은 공급 증가가 둔화된 수요 증가세를 앞지르면서 재고가 점진적으로 다시 쌓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해 4분기 유가 전망을 기존 배럴당 83달러(약 12만6000원)에서 75달러(약 11만4000원)로 낮췄고, 2027년 평균 전망도 79달러(약 12만원)에서 73달러(약 11만1000원)로 하향했다.
다만 변동성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단기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미국·이란 협상, 중동 선박 운항 상황이 유가를 흔들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증가와 수요 둔화가 가격 상단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