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김대호 인물] 데이비드 쾨클러(David Goeckeler) "샌디스크 저장장치"

데이비드 쾨클러(David Goeckeler) 샌디스크 CEO /사진=샌디스크
데이비드 쾨클러(David Goeckeler) 샌디스크 CEO /사진=샌디스크
인공지능 시대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샌디스크(SanDisk)다. 과거 일반 소비자용 고가성비 USB 메모리나 디지털카메라용 SD 카드로 대중에게 친숙했던 이 기업은, 이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초대형 기업용 고성능 낸드 플래시(NAND Flash) 및 엔터프라이즈 SSD(Enterprise SSD) 솔루션의 독보적인 지배자로 우뚝 섰다. 1년 사이에 주가가 30배 이상 폭등하고 시가총액이 2,5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뉴욕 증시 나스닥 100과 S&P 500 지수의 메인 보드로 화려하게 복귀한 샌디스크의 중심에는 한 명의 거인, 바로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쾨클러(David Goeckeler)가 자리하고 있다.
데이비드 쾨클러는 단순한 전문 경영인이 아니다. 그는 시스코(Cisco Systems)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네트워크 및 보안 사업을 총괄했던 엔지니어 출신의 전략가이자, 2016년 하드디스크(HDD)의 제왕 웨스턴 디지털(Western Digital)에 흡수합병되어 독자적 브랜드를 잃어가던 샌디스크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세계 최강의 ‘순수 낸드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시킨 인물이다. 2025년 2월 24일, 웨스턴 디지털의 기업 분할이 최종 완료되면서 샌디스크의 단독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AI 시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정확히 포착하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의 지각변동을 주도하고 있다.

데이비드 쾨클러의 초기 생애와 커리어는 실리콘밸리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테크 리더의 궤적을 정확히 따른다. 미국의 전형적인 이공계 인재였던 그는 컴퓨터 과학과 네트워크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학문적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미주리 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에서 컴퓨터 과학 및 수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리노이 대학교 Urbana-Champaign에서 컴퓨터 과학 석사 학위를,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기술적 깊이와 경영학적 안목을 동시에 완비한 셈이다. 그의 파괴적 파워가 본격적으로 발현된 무대는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의 절대 강자 시스코 시스템즈였다. 시스코에서만 18년 이상 근무하며 그는 평사원에서 시작해 부사장 겸 네트워킹 및 보안 비즈니스 그룹 총괄(Executive Vice President and General Manager)의 자리까지 올랐다. 당시 그가 관할하던 사업부의 연간 매출 규모만 300억 달러(한화 약 40조 원)에 달했으며,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그의 지휘 아래 일했다.

시스코 시절 쾨클러가 보여준 가장 큰 업적은 하드웨어 중심이던 네트워크 인프라 기업을 소프트웨어 및 구독형 보안 모델 체제로 성공적으로 탈바꿈시킨 점이다. 그는 인프라의 핵심은 단순히 장비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장비 위에서 흐르는 데이터를 어떻게 안전하고 신속하게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간파했다. 이 시기에 다진 대규모 조직 관리 능력과 데이터 트래픽에 대한 깊은 이해는 훗날 그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웨스턴 디지털과 샌디스크를 이끌 때 고성능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시장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결정적 자산이 되었다. 2020년 3월, 데이비드 쾨클러는 격변기에 직면한 웨스턴 디지털의 최고경영자로 전격 영입된다. 당시 웨스턴 디지털은 심각한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었다. 전통적인 PC 및 서버용 HDD 시장에서는 시게이트(Seagate)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있었으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2016년 190억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한 샌디스크(낸드 플래시 사업부)와의 시너지가 생각만큼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HDD와 낸드 플래시는 기술적 메커니즘도, 전방 시장의 성격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영역이었다. 기계적 디스크를 돌리는 HDD는 서서히 쇠퇴하는 성숙 시장이었던 반면, 반도체 공정 기반의 낸드 플래시는 막대한 설비투자(CAPEX)와 고도의 미세화 공정 경쟁이 초단위로 벌어지는 대규모 사이클 산업이었다. 투자자들은 하나의 기업 내에 이질적인 두 사업부가 섞여 있어 낸드 플래시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복합기업 디스카운트(Conglomerate Discount)’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 등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당장 두 회사를 분리하라고 강력히 압박했다. 쾨클러는 부임 직후 내부 정비에 착수했다. 그는 무리한 통합 대신, 조직을 HDD 사업부와 낸드 플래시 사업부로 명확히 이원화하여 독립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일본의 키오시아(Kioxia, 구 도시바 메모리)와의 전략적 합작 투자(JV)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추진했던 키오시아와의 합작 합병 시도가 지분 관계를 얽어쥔 한국 SK하이닉스의 반대와 간접적인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최종 무산되자, 쾨클러는 플랜 B를 전격 가동했다. 그것은 바로 웨스턴 디지털 자체를 두 개의 독자적인 상장 기업으로 쪼개어, 낸드 플래시 사업부를 과거의 영광스러운 이름인 '샌디스크'로 완전히 독립시키는 정공법이었다. 월가가 그토록 기다리던 기업 분할이 완료되었다. 존속 법인인 웨스턴 디지털은 전통적인 HDD 사업을 맡았고, 신설 법인인 샌디스크(SanDisk Corporation)는 나스닥에 티커명 'SNDK'로 화려하게 재상장되었다. 이때 데이비드 쾨클러는 안정적인 HDD 진영을 떠나, 변동성이 극심하지만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샌디스크의 단독 CEO로 취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시장의 우려는 적지 않았다. 분할 직후 발표된 2025년 회계연도 연간 실적에서 샌디스크는 막대한 분할 비용과 일시적 업황 둔화로 인해 약 16억 4천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쾨클러의 눈은 이미 다가올 2026년의 AI 인프라 폭발을 향해 있었다.쾨클러는 취임하자마자 샌디스크의 정체성을 전면 재정의했다. 일반 소비자용 마이크로 SD 카드나 저가형 USB 제조사라는 과거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엔터프라이즈 초고용량 SSD 전문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학습시키고 실시간으로 추론하는 AI 서버에서는 프로세서(GPU)의 연산 속도만큼이나, 초당 수십 기가바이트의 대형 데이터 세트를 끊김 없이 읽고 써야 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쾨클러는 샌디스크의 독보적인 엔터프라이즈용 낸드 솔루션이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전력 소비를 줄이고 공간 효율성을 대폭 향상할 수 있음을 입증해 냈다.이러한 전략적 대전환은 2026년에 이르러 경이적인 실적 폭발로 증명되었다. 2026년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샌디스크는 시장 예상치를 60% 가까이 상회하는 주당순이익(EPS) 23.41달러를 기록했으며, 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1% 폭증한 59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특히 데이터 센터 부문 매출은 전 분기 대비 233%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일반회계기준(non-GAAP) 매출총이익률 78.4%, 영업이익률 70.9%라는 가공할 만한 수익성은 엔비디아(Nvidia)의 영업이익률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전 세계 반도체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데이비드 쾨클러 경영 전략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일본 키오시아(Kioxia)와의 전략적 혈맹 관계를 고도화한 점이다. 두 회사는 일본 이와테현 키타카미 공장(Kitakami Plant)과 미에현 요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며 생산 능력을 공유해 왔다. 단독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거대 종합 반도체 기업(IDM)과 미세화 적층 경쟁을 벌이기엔 재무적 부담이 크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쾨클러의 영리한 외교술이었다.데이비드 쾨클러의 샌디스크와 키오시아 연합은 키타카미 공장의 제2공장(Fab2, K2)에서 차세대 '10세대 3D 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돌입하며 기술적 초격차를 현실화했다. 이 10세대 제품의 핵심은 혁신적인 CBA(CMOS directly Bonded to Array) 공정 기술이다.

CBA 공정이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셀 어레이(Array)가 위치한 웨이퍼와, 이를 제어하는 핵심 구동 회로(CMOS)가 위치한 웨이퍼를 각각 별도로 제조한 뒤 두 웨이퍼를 분자 결합 방식으로 직접 정밀 접합하는 최첨단 반도체 아키텍처다.과거에는 하나의 웨이퍼 위에 구동 회로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셀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취했으나, 이 경우 고열 공정으로 인해 구동 회로의 특성이 저하되거나 적층 단수를 높이는 데 물리적 한계가 존재했다. 반면 쾨클러가 주도한 CBA 방식은 셀과 회로의 성능을 각각 독립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어, 성능 저하 없이 업계 최고 수준의 낸드 적층 단수와 대역폭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준다.

샌디스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2026년 5월, 차세대 내장 및 포터블 SSD 라인업인 ‘샌디스크 옵티머스(SanDisk Optimus)’ 시리즈를 독점 공개했다. 최대 4,000MB/s 이상의 물리적 한계치에 도달한 전송 속도를 자랑하는 이 라인업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스튜디오에서 무거운 12K 초고해상도 비디오 소스를 별도의 레이드(RAID) 시스템 없이 단일 드라이브로 실시간 편집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크리에이터 및 AI 업계의 찬사를 받았다. 쾨클러의 지휘 아래 샌디스크는 단순한 메모리 칩 공급사를 넘어, 시스템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 표준의 제정자로 올라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