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붐 속 5년 만의 회사채 발행…주문 129조원 몰려 발행 규모 확대
이미지 확대보기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투자 붐 속에서 250억달러(약 38조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한다.
이는 지난 2021년 이후 5년 만의 채권 발행으로 AI 관련 기업에 투자하려는 시장의 수요가 여전히 강한지를 가늠하는 거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엔비디아가 미국 투자등급 채권시장에서 25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채권은 2년물부터 30년물까지 다양한 만기로 구성된 7개 구간 발행이다. 당초 발행 규모는 200억달러(약 30조3000억원)였지만 뉴욕 시간 이날 오후 초반까지 850억달러(약 128조7000억원)가 넘는 주문이 몰리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강한 수요 덕분에 발행 조건도 개선됐다. 10년물 채권 수익률은 미국 국채보다 0.5%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 논의 당시 가산금리는 0.75%포인트 수준이었다.
◇ 美·이란 합의 뒤 시장 여건 개선
엔비디아의 대규모 채권 발행은 미국과 이란의 합의 이후 금융시장 여건이 개선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이란 전쟁 완화 기대에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위험자산 선호가 살아나면서 우량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도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로런 와간트 티로프라이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이란 합의 이후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엔비디아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매우 우량한 회사”라며 “엔비디아가 다른 기술기업들만큼 자주 채권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투자 수요를 키웠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이번 발행 순자금을 일반 기업 목적에 사용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기존 회사채 상환과 차환도 포함된다.
이번 발행은 엔비디아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2021년 약 50억달러(약 7조6000억원)를 조달했던 이전 채권 발행보다 최소 3배 이상 큰 규모다. 발행이 마무리되면 엔비디아의 총 채무는 현재 85억달러(약 12조9000억원)에서 약 300억달러(약 45조4000억원)로 세 배 넘게 늘어난다.
◇ AI 투자 자금조달 경쟁 가속
엔비디아 채권 발행은 AI 인프라 투자를 둘러싼 빅테크의 자금조달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엔비디아는 대형언어모델(LLM) 구축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의 핵심 공급자로 AI 투자 붐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력 인프라 투자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동안 IT기업들은 보유 현금과 차입으로 투자금을 마련해왔지만 금리 부담이 커지고 필요 자금 규모가 불어나면서 채권과 주식, 사모신용 등 다양한 조달 수단을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월가에는 이미 대규모 주식·채권 발행 물량이 몰리고 있다. 최근 스페이스X는 사상 최대인 750억달러(약 113조6000억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마쳤다. 앤스로픽은 브로드컴과 연계된 350억달러(약 53조원)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모신용 투자자들에게 손을 뻗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이달 초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 발행에 나서 850억달러를 조달했다.
엔비디아의 채권 발행은 이런 흐름 속에서 우량 AI 기업에 대한 채권시장 수요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가늠하는 사례다.
◇ 현금흐름 강하지만 투자도 확대
엔비디아는 AI 붐으로 막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 1월까지 1년 동안 엔비디아의 잉여현금흐름은 966억달러(약 146조3000억원)로 전년보다 59% 늘었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단순한 반도체 공급업체를 넘어 AI 생태계의 주요 투자자로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오픈AI, 앤스로픽, xAI 같은 AI 개발사와 코히어런트, 마벨, 루멘텀, 코닝 등 공급업체에 총 900억달러(약 136조3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일부 고객에 대해서는 금융 보증이나 사실상 후방 지원 역할도 맡고 있다. 엔비디아 칩을 이용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구축하는 코어위브와 엔스케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투자와 보증은 엔비디아가 AI 생태계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리스크 집중 우려도 키운다. AI 기업들이 서로 지분과 자금, 매출로 얽히면서 한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생태계 전체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순환 금융” 우려도 제기
톰 머피 컬럼비아스레드니들 인베스트먼츠 투자등급 신용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AI 기업 간 금융 보증과 상호 의존이 늘어나면서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서 집중 리스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이런 ‘순환 금융’ 구조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며 생태계 안의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는 신용등급이 더블A로 세 번째로 높은 투자등급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엔비디아 채권을 우량 자산으로 보는 배경이다. 반면 AI 투자에 적극적인 오라클은 투기등급보다 두 단계 높은 수준에 그친다. 같은 AI 투자 붐 안에서도 기업별 재무 안정성에는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엔비디아 주가도 최근에는 흔들렸다. 시가총액은 지난 5월 약 5조7000억달러(약 8630조원)까지 올랐지만 최근 반도체주 전반의 조정 속에 지난주 말 5조달러(약 7570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 AI 붐의 자금조달 시험대
이번 거래의 주관사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모건스탠리다.
엔비디아의 채권 발행 성공 여부는 AI 투자 붐에 대한 채권시장 수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주문이 발행 규모를 크게 웃돌면서 단기적으로는 투자자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신호가 나왔다.
그러나 AI 기업들의 부채와 주식 발행이 동시에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장 피로감이 커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계속 시장에서 조달하면, 투자자들은 어느 기업의 리스크를 얼마나 떠안을지 더 까다롭게 따질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는 AI 붐의 최대 수혜 기업이자 우량 신용등급을 가진 반도체 기업이다. 그럼에도 5년 만의 대규모 채권 발행은 AI 산업이 막대한 현금흐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