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 제안서 전달…협상 타결 시 브렌트유 10~20달러 급락 가능성
현대경제연구원 "수출·추경이 버팀목"…한국 정유·해운·항공주 분기점
현대경제연구원 "수출·추경이 버팀목"…한국 정유·해운·항공주 분기점
이미지 확대보기지금 이 순간에도 호르무즈 해협 어귀에는 230척 이상의 유조선이 닻을 내린 채 대기 중이다. 세계 원유 해상 교역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34킬로미터 폭의 수로를 이란이 틀어막은 지 77일째인 1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측에 새 핵 협상 제안서를 전달하고 "신속한 진전이 없으면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 블룸버그, PBS 뉴스아워가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이날 동시에 전한 내용이다. 한국 투자자에게 이 제안서는 단순한 외교 문서가 아니다. 이란의 응답은 브렌트유와 코스피 에너지·해운 섹터에 단기 변동성을 키울 촉매가 될 수 있다.
'이중봉쇄'의 구조… 왜 협상이 제자리인가
이란은 2월 말 개전 직후부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고, 미국은 이란과의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결렬된 뒤인 4월 13일부터 이란 항구를 겨냥한 해상봉쇄에 나섰다. 이 미국의 해상봉쇄에 맞선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가 맞물리면서 이른바 '이중봉쇄'가 고착된 지 현재 77일째다. 알자지라와 악시오스의 복수 소식통을 종합하면, 협상 교착의 본질은 '의제 순서 싸움'이다.
이란이 파키스탄 중재채널을 통해 제출한 14개항 제안은 명확한 2단계 구조를 담고 있다. 1단계에서 전쟁 종식·봉쇄 상호 해제·동결 자산 해제를, 2단계에서야 핵 프로그램 협상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에이는 지난 5월 3일 국영 언론을 통해 "현 단계에서 핵 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미국 행정부는 이란이 보유한 추정 440킬로그램(약 970파운드)의 고농축 우라늄 반출과 최소 10~15년의 핵 농축 중단 합의를 협상 타결의 전제 조건으로 고수하고 있다. 악시오스는 협상 범위가 농축 우라늄 모라토리엄 기간을 두고 12년이냐 15년이냐로 좁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역제안을 '완전히 수용 불가'로 규정하고 군사 재개를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가 이란을 겨냥한 '단기 강력 타격' 계획을 준비해 뒀다는 사실도 악시오스를 통해 공개됐다.
다만 협상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6일 브리핑에서 이번 협상을 "최종 합의가 아닌 향후 협상의 양해각서(MOU) 수준"으로 규정하며 진전 가능성을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같은 날 PBS 뉴스아워와의 인터뷰에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고, 이란 고위 관리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두 가지 신호가 동시에 나오는 이 불확실성 자체가 지금 시장의 핵심 리스크다.
유가 100달러 고착, 한국 경제에 얼마나 무거운가
CNBC와 블룸버그 시장 데이터를 보면 지난 7일 기준 국제 기준유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06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4.81달러에 거래됐다. 전쟁 발발 이전인 지난 2월 배럴당 75달러 선과 비교하면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만 25달러 이상 붙어있는 상태다. 이란 제안서가 파키스탄에 전달된다는 소식이 나올 때마다 유가는 장중 5%까지 급락했다가, 협상 거부 발언이 나오면 즉각 반등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에 미치는 충격은 구조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병목이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 안팎에 달하고,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국내 연구기관 추정치를 종합하면, 브렌트유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한국의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100억~120억 달러(약 14조 9900억~17조 9800억 원) 규모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쟁 전 75달러에서 현재 100달러로 25달러가 오른 지금, 한국이 추가로 부담하는 에너지 비용은 연간 30조 원을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섹터별 희비는 이미 나뉘고 있다. 여수항에는 지난 5월 7일 호르무즈 우회 홍해 항로를 통해 사우디산 원유 약 200만 배럴을 실은 한국 유조선이 처음 입항했다. 국내 정유업계에 따르면 봉쇄 이후 홍해를 통한 우회 항로 개통은 이번이 첫 사례로, 공급 재개의 긍정적 신호이지만 우회 거리 증가는 운임 상승을 수반한다.
이에 국내 증권사들은 HMM·팬오션 등 해운주에 대해 단기 운임 프리미엄을 반영해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하면서도, 협상 타결 시 운임 급락 리스크를 주요 경고 요인으로 꼽고 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 등 정유주는 재고평가이익 구간을 이미 지나 마진 압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고, 대한항공·아시아나 등 항공주는 주요 증권사들이 하반기 실적 추정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며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 투자자가 지금 당장 봐야 할 숫자 3개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 '이란 전쟁 이후의 경제 전략을 생각하며'에서 올해(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7%로 0.8%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올여름 전후 전쟁 피크 아웃과 유가 하향 안정을 기준 시나리오로 설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향 조정의 진짜 동력은 평화 기대감이 아니라 두 가지 확실한 하방 방어 카드다.
첫째, 글로벌 인공지능(AI)·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수출 독주다. 역설적으로 고유가 국면이 석유제품 수출 단가 상승으로 이어져 무역흑자 규모를 오히려 키우는 역발상 수혜가 발생했다. 둘째, 국회를 통과한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신속히 집행되면서 고유가·고물가로 위축될 뻔한 내수의 안전판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2.7% 전망은 기본 시나리오로 유가가 2분기 이후 점진적으로 안정된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다만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분석에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 위에 고착될 경우 성장률이 약 0.3%포인트가량 깎이고, 물가는 1%포인트 안팎 추가 상승하는 비관 시나리오도 병행 제시한 바 있다. 결국 2.7% 전망은 "전쟁이 끝날 것이니 안심하라"는 낙관론이 아니라, 지정학 충격이 지속되더라도 수출 호황과 재정 확대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펀더멘털 자신감을 반영한 수치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는 세 가지다.
첫째, 이란의 5월 16일 미국 핵 제안서 공식 응답 내용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을 중심으로 시장 일각에서는 협상 타결 시 브렌트유가 10~20달러 즉각 하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대로 이란이 14개항 원안을 고수하면 트럼프의 군사 재개 카드가 다시 부각되며 유가는 110달러를 향해 반등할 것이다. 시티그룹의 스콧 크로너트 미국 주식 전략가는 CNBC를 통해 "분쟁 지속 기간이 광범위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고 진단했다.
둘째, 미 의회의 전쟁권한 결의 재표결 여부다. 하원에서 212 대 212 가부동수로 부결된 전쟁권한 결의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거세지고 있으며, 공화당 상원 의원들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전쟁 보충예산에 대해 "통과가 매우 어렵다"고 내부 경고를 보내고 있다. 재표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군사작전 지속 능력이 법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셋째, 브렌트유 배럴당 95달러와 110달러를 간이 기준선으로 삼아야 한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배럴당 90~100달러 구간을 물가·성장 분기점으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95달러 아래로 정착할 경우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여력이 회복되고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재점화되며 코스피 밸류에이션 개선 경로가 열린다. 반대로 110달러를 돌파하면 현대경제연구원과 KDI가 경고한 스태그플레이션 압박이 본격화될 수 있다.
호르무즈 교착이 77일을 넘긴 지금, 한국 에너지 수입의 핏줄을 틀어쥔 이 협상의 향방은 더 이상 외교 뉴스가 아니라 개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성과를 결정짓는 실전 변수다. 개인 투자자라면 ① 레버리지·단기 상장지수증권(ETN)·선물 비중, ② 항공·해운·정유·화학 섹터 편입 비율, ③ 인버스·헤지 포지션을 최소 주(週) 단위로 점검하되, 이란 응답·미 의회 일정·유가가 95달러와 110달러를 넘나드는 국면마다 익절·손절 기준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어 전략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