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가정용 공유기 시장 60% 잠식 중국산에 봉쇄령…볼트·플랙스·솔트 타이푼 3대 해킹 빌미
한국 네트워크 장비사·팹리스, 공급망 재편 수조 원 낙수효과…에이직랜드·가온칩스 등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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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FCC, 3월 20일 국가안보 결정 근거로 전격 수입 차단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3일(현지 시각) 행정부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국가안보 결정(National Security Determination·NSD)을 근거로, 해외에서 생산된 신규 소비자용 무선 공유기 전체를 '규제 대상 목록(Covered List)'에 올렸다. 이에 따라 이날 이후 FCC 장비 인증을 새로 취득하지 못한 외산 신규 공유기는 미국 내 수입·판매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기존에 이미 승인을 받은 모델과 소비자가 보유 중인 공유기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24일 블룸버그·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번 조치의 공식 근거는 3월 20일 행정부가 발표한 NSD다. FCC는 "해외에서 생산된 공유기가 경제·핵심 인프라·국가 방위를 교란할 공급망 취약점을 만들어내며, 미국 핵심 인프라를 즉각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심각한 사이버 보안 위협을 야기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볼트 타이푼(Volt Typhoon)·플랙스 타이푼(Flax Typhoon)·솔트 타이푼(Salt Typhoon) 등 2024~2025년 미국 통신·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3대 사이버 공격에서 외산 공유기가 거점으로 활용됐다고 지목했다.
중국산 60% 시장 공백…넷기어 주가 16.7% 급등이 말해주는 것
다만, 이번 규제가 중국 기업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FCC 결정은 '해외 생산' 여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넷기어·구글 네스트·아마존 에로·아수스 등 미국·대만 브랜드도 아시아에서 제조하는 한 동일한 규제에 걸린다. 사이버보안 전문 기관 그레이노이즈 인텔리전스의 데이터과학 부문 수석 부사장 밥 루디스는 사이버시큐리티다이브에 "완전히 미국에서 제조되는 소비자 공유기는 현재 단 하나도 없다"며 "이 규제를 실질적으로 집행하려면 연방 정부 차원의 방대한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원 중국특위 위원장 존 무레나르(John Moolenaar) 의원은 "공유기는 우리 모두의 연결을 지탱하는 핵심이며, 중국 기술이 그 중심에 자리해서는 안 된다"며 FCC 결정에 강한 지지를 나타냈다.
드론 이어 공유기까지…'차이나 프리' 전선 확대
FCC는 2025년 12월 중국산 DJI 드론 등 외산 신규 드론의 등록을 사실상 금지한 데 이어 이번에는 공유기로 규제 대상을 넓혔다. 가전에서 통신 인프라 전반으로 '차이나 프리(China-free)' 전선이 확장되는 양상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공급망 재편 여파가 단순 가정용 공유기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산업용 사물인터넷(IoT) 등 연결 기능이 핵심인 전 장비로 보안 요건이 강화될 경우, 관련 시장에 중국산이 배제되는 연쇄 효과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검찰총장 켄 팩스턴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TP링크 시스템즈를 상대로 소비자 기만 및 중국 정부에 데이터 접근을 허용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TP링크 측은 "중국 정부는 자사의 소유권이나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일축하고, 공급망 보안에 자신 있으며 전 업계 차원의 평가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수혜, 장비사·팹리스 투 트랙
금융권과 업계에서는 이번 FCC 결정을 계기로 한국 네트워크 장비 및 통신 반도체 설계 산업에 수조 원 규모의 낙수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한다. 예상 수혜군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장비 제조 부문에서는 북미 통신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에치에프알(HFR)과 기산텔레콤, 머큐리 등이 시장 공백을 메울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는 와이파이(Wi-Fi) 7 등 차세대 통신 칩 설계 역량을 보유한 가온칩스와 에이직랜드가 주목받는다. 중국산 칩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설계 자산(IP)을 탑재하려는 글로벌 공유기 제조사들의 수요가 집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증권가 관계자는 "보안 인증이 '기술 장벽'으로 작용하는 구도가 굳어질수록, 미국 유통망과 차세대 표준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국내 기업의 시가총액은 단기 매출 증가 이상의 가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조적 한계도 변수…면제 심사 결과 따라 판도 변동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완전 자국 생산되는 공유기가 단 한 종도 없는 현실에서, 이번 규제가 실효적으로 집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사이버시큐리티다이브는 "이번 규제의 핵심 문제는 타이푼 시리즈 공격에서 실제로 취약점을 제공한 것이 외산 하드웨어가 아니라 미국·서방 제품의 알려진 취약점이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솔트 타이푼 공격에서는 미국 브랜드인 시스코(Cisco) 장비가 주로 표적이 됐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FCC는 기업들이 국방부(DoD)와 국토안보부(DHS)에 '조건부 승인(Conditional Approval)'을 신청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었다. 넷기어가 이 면제를 받아낼 경우 한국 기업이 기대하는 반사이익의 규모는 일정 부분 줄어들 수 있다. 드론 규제에서 DJI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전례에 비추어, TP링크 역시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전선이 칩·소프트웨어에서 '집 안 공유기'로까지 내려온 지금, 글로벌 네트워크 인프라의 주도권 다툼은 이제 막을 올렸다. 한국이 이 판에서 실질적 '어부지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술력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보안 인증 체계에 선제적으로 편입되는 전략적 속도전이 관건이 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