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쇠고기 값 치솟는데…카길 AI, 뼈서 연 3000억 건진다[육류산업 AI 혁명]

미국 소 사육 75년 만에 최저, '카베(CarVe)' 시스템으로 마리당 0.5% 더 회수
AI가 실시간 코칭…"더 많은 소 아닌, 같은 소에서 더 많은 고기"
북미 최대 육류 가공업체 카길(Cargill)이 컴퓨터 비전 기반 인공지능(AI) 시스템 '카베(CarVe)'를 도축 공정에 도입해 연간 2억 달러(약 3000억 원)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북미 최대 육류 가공업체 카길(Cargill)이 컴퓨터 비전 기반 인공지능(AI) 시스템 '카베(CarVe)'를 도축 공정에 도입해 연간 2억 달러(약 3000억 원)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한국의 마트 정육 코너에서 미국산 소고기 가격표를 보고 뒤로 물러선 소비자가 있다면, 그 배경에는 지구 반대편 텍사스 도축 공장에서 벌어지는 '픽셀 전쟁'이 있다. 공급이 줄어든 소 한 마리에서 단 한 조각의 살코기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북미 최대 육류 가공업체의 절박한 승부수다.
파이낸셜타임스(FT)21(현지시각) 북미 최대 육류 가공업체 카길(Cargill)이 컴퓨터 비전 기반 인공지능(AI) 시스템 '카베(CarVe)'를 도축 공정에 도입해 연간 2억 달러(3000억 원)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쇠고기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에 오른 가운데, 카길이 선택한 돌파구는 '공급 확대'가 아닌 '손실 최소화'였다.

붉은 픽셀이 잡아낸 0.5%의 기적


미국 미네소타에 본사를 둔 카길은 연간 약 110억 파운드(499000만 ㎏)의 쇠고기를 생산한다. 카베는 이 생산 라인을 지나는 소 사체를 실시간으로 스캔해, 뼈와 지방 사이에 남은 미세한 살코기를 '붉은 픽셀'로 식별하고 추적한다.

카길의 연구개발(R&D) 총괄 플로리안 샤텐만은 "도축 공정은 토요타 캠리 조립 라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소마다 크기와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AI의 유연한 판단이 필수"라고 FT에 말했다.

초기 시험 결과, 카베는 마리당 평균 0.5%의 고기를 추가로 회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만 보면 미미하지만, 카길의 생산 규모에 적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간 5500만 파운드(2500만 ㎏)의 추가 고기가 식탁에 오르게 되며, 현재 도매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억 달러(3000억 원)어치다. 카길은 이 기술이 미국 전체 업계로 확산될 경우 연간 13500만 파운드(6100만 ㎏)의 육류를 추가 공급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감시가 아닌 코칭…사람과 AI의 협업


카베의 핵심은 단순 감시를 넘어선 실시간 지도 기능에 있다. 작업대 옆 모니터에는 작업 결과가 색깔로 실시간 표시된다. 고기가 과도하게 남으면 빨간색이나 노란색, 적절하게 처리됐을 때는 초록색 신호가 뜨고, 관리자는 이를 토대로 작업자에게 어느 부위에서 손실이 발생했는지 즉각 피드백을 전한다.

카길은 인력 운용에도 AI를 접목했다. 날씨, 공휴일, 근속 연수는 물론 지역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 일정까지 변수로 넣어 당일 출근 인원을 예측한다. 노동 집약도가 높은 육류 가공업 특성상,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 자체가 수익과 직결된다.
현재 시스템은 텍사스주 프리오나와 콜로라도주 포트 모건 공장에 가동 중이며 다른 시설로 순차 확대될 예정이다. 카길 측은 "직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도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75년 만의 공급 충격…배경이 더 무섭다


카길을 이 기술로 내몬 것은 단순한 효율 욕심이 아니다. 미국 농무부(USDA) 올해 1월 조사에서 미국 내 소 사육 두수는 8620만 마리로 75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줄었다. 수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목초지가 메마르자 축산 농가가 사육 규모를 대폭 줄인 결과다.

공급 감소는 가격을 밀어 올렸다. 올해 1월 기준 미국 내 다짐육(Ground beef) 가격은 1년 전보다 17% 급등해, 전체 식료품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스테이크 전문점들이 1인분 양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가운데, 수요는 여전히 견조해 단기간 가격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 사육 두수 회복에 통상 3~5년이 필요한 생물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공급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더 많은 소를 키우는 것이 단기간에 불가능하다면, 지금 있는 소에서 더 많은 고기를 얻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해법"이라고 시장 참여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 밥상으로 번지는 파장


이 문제는 태평양 건너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주요 수입국으로, 미국 공급 감소는 국내 수입 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국내 대형 마트의 미국산 냉동 쇠고기 소비자 가격은 최근 수개월 새 상승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식품 업계도 AI를 활용한 공정 효율화에 관심을 높이는 추세다. CJ제일제당, 대상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스마트 팩토리와 AI 검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카길처럼 거대한 글로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품질 예측 및 공정 최적화 단계와 비교하면 아직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술 정밀도'가 육류 산업의 새 경쟁력


카길의 카베 도입은 단순한 비용 절감 사례가 아니다. 공급망 충격이 구조화되는 시대에 기술이 어떻게 생산성의 새로운 천장을 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업계에서는 AI를 통한 공정 정밀도가 향후 글로벌 육류 기업의 수익성을 가르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뼈에 붙은 살코기 0.5%를 놓고 벌이는 픽셀 단위의 추격. 그것이 지금 세계 최대 식품 가공 공장에서 펼쳐지는 경쟁의 민낯이다. 소값이 오를수록 AI''은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