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에 선박보험료 125배 폭등…반도체 칩 하나가 넘나드는 국경 70개 '먹통'
유가 110달러·비료가격 40% 폭등·전기료 삼중고…데이터센터 비용 구조 붕괴
삼성전자·SK하이닉스 HBM 출하 차질 우려…"하반기 실적 변동성 예년보다 훨씬 커"
유가 110달러·비료가격 40% 폭등·전기료 삼중고…데이터센터 비용 구조 붕괴
삼성전자·SK하이닉스 HBM 출하 차질 우려…"하반기 실적 변동성 예년보다 훨씬 커"
이미지 확대보기반도체 업계의 한 투자 전략가가 최근 서울 여의도 한 간담회에서 던진 이 한마디가 현재 글로벌 AI 산업이 처한 위기를 압축한다. 2026년 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공언한 1조 5000억 달러(약 2250조 원) 규모의 인공지능(AI) 투자가 한순간에 '신기루'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원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이란과의 전쟁이 불붙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고리를 차례로 끊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칩 하나에 국경 70번…'거미줄 공급망'의 역습
반도체는 설계부터 완제품 출하까지 100일 이상의 시간과 1000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칩 하나가 넘나드는 국제 국경만 70개에 달한다.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OilPrice.com)은 지난 20일(현지시각) 보도에서 이 구조를 '아무도 설계도를 갖지 않는 공급망'이라 지칭하며, 지정학 위기가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충격을 다음 세 갈래로 진단했다.
첫째, 물류비용의 수직 상승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료는 불과 수개월 전 선박 가액의 0.02~0.05% 수준에서 최근 5%까지 치솟았다. 1억 2000만 달러(약 1800억 원) 가치의 유조선 한 척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4만 달러(약 6000만 원)에서 500만 달러(약 75억 원)으로 무려 125배가량 폭등한 셈이다. 해상 운임뿐 아니라 항공 화물에도 '전쟁 위험 할증료'가 부과되면서 공급망 전체의 비용 구조가 뒤틀리고 있다.
둘째, 핵심 원자재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헬륨과 희귀 가스는 걸프 지역 의존도가 높다. 특히 일본·독일의 웨이퍼 공급 → 미국의 설계 → 대만·한국의 첨단 미세 공정 제조로 이어지는 글로벌 분업 구조 곳곳에서 비용 마찰이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있다.
셋째, 데이터센터가 직접 타격을 받았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최근 드론 공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내 일부 시설이 파손됐음을 공식 확인했다. 이로 인해 중동 지역 클라우드 인프라의 신뢰도가 급락하면서 설비 이전 비용까지 추가로 발생하는 상황이다.
유가·비료·금융의 '3F 쇼크'가 AI 산업을 덮치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연료(Fuel)·비료(Fertilizer)·금융시장(Financial)이라는 세 경로가 동시에 AI 산업의 비용 구조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브렌트유)는 전쟁 이전 배럴당 70달러(약 10만 5400원) 수준에서 최근 110달러(약 16만 5700원)를 돌파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는 유가가 10달러(약1만 5000원) 오를 때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0.1%씩 깎인다고 분석한다. 이번 상승 폭(40달러, 약 6만 원)을 적용하면 세계 GDP에 0.4%포인트 하방 압력이 가해지는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비료 시장의 붕괴다. 전 세계 요소(Urea) 공급의 46%를 차지하는 걸프 지역 물류가 막히면서 비료 가격이 40% 이상 급등했다. 미국농업인연맹(AFBF)의 지피 두발(Zippy Duvall) 회장은 공개 성명에서 "비료 부족은 농작물 수확량 감소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들의 실질 소득을 잠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 서비스의 최종 소비자가 지갑을 닫게 만드는 강력한 수요 수축 요인이다.
전기료 42%↑에 정치적 역풍까지…'AI 회의론' 확산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별도 리포트에서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이미 국가 전체 전력의 4.4%에 달하며, 이 수요가 2026년과 2027년 핵심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을 각각 0.1%포인트씩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가계의 전기 요금은 2019년 이후 이미 42% 오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AI 인프라 확대를 위한 전력망 확충 비용이 일반 가정의 고지서에 전가되자 정치적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쇼크가 AI 인프라 구축의 '정치적 창문' 자체를 닫고 있는 셈이다.
중국 역시 이 틈을 파고들어 희토류 통제권을 더욱 조여 쥐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 갈륨·게르마늄·흑연 등의 수출 통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중국이 갈륨·게르마늄에 대한 전면 금수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 GDP 손실이 최대 90억 달러(약 13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삼성·SK하이닉스 '이중고'…HBM 출하 차질 현실화 우려
이란 전쟁발 물류 마비와 원자재 가격 폭등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직접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제조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 등 특수가스의 걸프 지역 의존도가 높은 만큼,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곧바로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으로 연결된다. 항공·해상 운임의 전쟁 위험 할증료는 수익성을 갉아먹는 또 다른 요인이다.
수요 위축도 심각한 변수다. 골드만삭스를 포함한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유가 급등으로 인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점화가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를 늦출 것으로 본다. 실제 아마존·구글이 비용 절감을 위해 AI 서버 주문량을 줄인다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의 출하량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 격차보다 공급망 유지 비용이 실적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전력 비용 상승에 따른 국내외 생산 기지의 운영 부담까지 더하면, 올해 하반기 국내 반도체 업계의 실적 변동성은 예년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 시각이다.
'저비용 공급망' 시대의 종언…AI 투자 실질 규모 절반으로
EY-파르테논(EY-Parthenon)의 그레고리 다코(Gregory Dac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정학 위기가 장기화될수록 경제적 충격은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로 불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메타(6000억 달러, 약 903조 원)·애플(5000억 달러, 약 753조 원)·아마존(2000억 달러, 약 301조 원) 등이 약속한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AI 투자는 '비용 폭등'이라는 암초를 정면으로 만났다. 투입 금액은 같더라도 실제로 완공되는 데이터센터와 확보되는 칩의 물량은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는 의미다.
'저물가와 안정적 공급망'이라는 두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지금, AI 산업이 마주한 진짜 전쟁은 실리콘 위의 기술 경쟁이 아니라 공급망 생존 비용을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는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