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 2위 韓 vs 3위 中...신규 프로젝트는 中 600건 '압도', 韓 8위 '주춤'
애플·BOE·TCL까지...韓 '인프라'에 中 '무임승차' 우려, 생산기반 '잠식'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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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베트남은 이미 한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의 공장이 밀집한 최대 투자 격전지다. 2025년 베트남 전자 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에서만 한 해 1693억 달러(약 242조 원)의 수익을 기록하고, 전자 하드웨어와 부품 수출이 1485억 달러(약 2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각) 외신 디지타임스 아시아(Digitimes Asia)와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베트남의 견고한 전자 산업 생태계는 본래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시한 한국 기업들이 주도해 구축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급증하며 전례 없는 경쟁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 처지에서 베트남을 대체할 만한 투자처를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베트남 전자 산업 자체가 계속 성장하며 새로운 기회 역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베트남에 동반 진출했던 다수의 한국 부품사들은, 현재 베트남 현지에 자리 잡은 세계 서버 제조업체나 시스템 통합(SI) 업체로까지 공급망을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투자 역시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삼성전기(Semco)는 2022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에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으며, LG이노텍 역시 1조3000억 원 규모의 베트남 공장을 2025년 9월 완공했다. 기존의 후방 산업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韓 '기존 증설' vs 中 '신규 공습'…투자 건수 8위 '주춤'
하지만 투자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기 신호가 감지된다. 베트남 재무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한국의 대(對)베트남 투자액은 약 30억8000만 달러(약 4조4000억 원)로, 싱가포르(약 46억 달러)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25억5000만 달러(약 3조6500억 원)로 3위였다.
그러나 이는 '총액' 기준일 뿐, '신규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보면 순위는 완전히 뒤바뀐다. 한국의 투자는 대부분 기존 사업의 증설에 집중된 반면, 신규 프로젝트 투자액은 약 2억3000만 달러(약 3290억 원)에 그쳐 8위로 밀려났다. 반면 총 투자액 3위인 중국은 신규 프로젝트 수만 약 600건에 이르러,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베트남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는 기업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양국의 투자 전략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대부분 기존 사업 확장(설비 증설, 생산능력 확대) 형태로, 신규 프로젝트 수는 적으나 고부가가치 기반 생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반면 중국은 신규 법인 설립과 공장 신설 등 신규 프로젝트 수가 압도적인데, 미국의 관세 회피와 시장 위험 관리 목적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기업들이 이처럼 베트남으로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애플 등 미국 거대 기술 기업(테크 자이언트)의 위탁 생산을 맡은 중국 전자 제조업체들이 위험 분산을 위해 생산 라인 일부를 중국 본토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서버, 전자 완제품, 부품 생산 공장과 시스템 통합(SI) 중심의 투자가 활발하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공장 근무가 가능한 풍부한 노동 인구도 베트남의 매력으로 작용했다.
베트남은 이로써 세계 스마트폰, TV, 부품, 컴퓨터 생산의 신흥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기판 등 고부가가치 산업까지 영역이 넓어지는 추세다. 삼성전자, 인텔, 폭스콘과 럭스셰어 등 애플 협력사들의 거대한 제조 설비가 FDI 유입과 현지 고용 창출, 기술 고도화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애플의 공급망 재편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애플의 업데이트된 비전 프로 헤드셋은 중국의 주요 조립 협력사인 럭스셰어 프리시전(Luxshare Precision)이 베트남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에어팟과 애플 워치 대부분이 베트남에서 조립되고 있으며, 애플은 아이패드와 홈팟 생산 일부도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비전 프로 완제품에는 '베트남산(Product of Vietnam)' 라벨을 부착한다. 물론 듀얼 니트 헤드밴드 등 일부 액세서리는 여전히 중국에서 제조한다.
애플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도(아이폰), 말레이시아와 태국(맥북) 등으로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며 지정학적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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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전략적 위치와 비용 이점 외에도, 중국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수준과 달리 20%의 안정적인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어 '안전한 선택지'로 부상했다.
이러한 점을 두고 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먼저 베트남에 진출해 막대한 자본으로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현지 인력을 양성하며 생태계의 '씨를 뿌렸지만', 미·중 갈등을 피해 뒤늦게 뛰어든 중국 기업들이 그 '과실'을 따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값싼 노동력과 관세 혜택을 노린 중국 기업들의 유입이 한국 기업들이 공들여 조성한 현지 산업 생태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다.
물론 베트남 전자 산업이 마주한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베트남은 세계 5위의 전자·컴퓨터 부품 수출국이자 2위의 휴대폰 부품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나, 소재·부품 등 핵심 원자재의 해외 수입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이 점이 현지 공급망 강화의 필요성을 대두시키는 요인이다.
베트남 정부는 첨단 기술 제조 투자 지원, R&D 유치, 현지 부가가치 확대 정책을 강력히 펴고 있지만, 자국 산업과 세계 기업 간의 가치사슬과 기술 노하우 격차는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받는다. 한국 기업은 선도적 생태계 구축자라는 위치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신규 투자와 고객 다변화 전략 속에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베트남 시장을 선점한 한국 기업들이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과실'마저 중국에 내주지 않기 위한 고차원적인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