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구제금융' 이미지 우려에 매각가 고수…폭스콘 '백기'
폭스콘, 일본 EV 생산 전략 차질…닛산, 새 주인 찾기 난항
폭스콘, 일본 EV 생산 전략 차질…닛산, 새 주인 찾기 난항

'전기차 제국'을 꿈꾸는 대만 폭스콘의 일본 시장 진출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때 일본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로 불린 닛산자동차 오파마 공장 인수를 타진해온 폭스콘이 수개월간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인수 계획을 모두 거둬들였다. 과도한 매각 가격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과 '구제금융'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 닛산 내부의 복잡한 속내가 맞물리면서, 세계 전기차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던 '세기의 거래'는 없던 일이 됐다.
9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폭스콘은 지난 9월 닛산자동차 오파마 공장 인수 입찰을 최종 철회했다. 양측의 협상은 지난 5월부터 본격으로 이뤄졌다. 폭스콘은 54만 제곱미터(약 16만 평)에 이르는 공장 터와 생산 설비, 건물은 물론 일부 직원까지 넘겨받는 포괄적인 인수안을 제시하며 일본 내 생산 거점 확보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협상은 시작부터 가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오랜 재정난에 시달려온 닛산은 오파마 공장 매각 대금으로 시장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1000억 엔(약 9292억 원)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장 터의 땅값만 약 300억 엔(약 2787억 원)에서 400억 엔(약 3716억 원) 수준으로 봤다. 낡은 제조 설비의 가치를 더하더라도 닛산의 요구액은 지나치다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실리보다 명분"…엇갈린 셈법에 '거래' 무산
폭스콘은 기술 장벽이 높은 일본 시장에 단번에 안착할 수 있는 '지름길'로 이번 인수를 여겼다. 이미 미국, 대만, 태국 등에서 생산 거점을 확보하며 세계 영토를 넓혀온 폭스콘에 일본은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폭스콘이 장기적인 눈으로 일본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다소 불리한 조건까지 받아들일 뜻이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닛산 내부에서는 폭스콘과의 거래를 두고 미묘한 기류가 흐른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자동차의 이반 에스피노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월 15일, "2028년 3월까지 오파마 공장의 생산을 멈추고 여러 협력사와 터 매각 또는 용도 변경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영진 일부에서는 재정난 해소에 도움이 될 폭스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을 두고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만 기업인 폭스콘에 공장을 매각하는 것이 마치 '구제금융'을 받는 모습으로 비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강한 우려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은 실리보다 명분을 택한 셈이지만, 다른 인수 후보자와의 협상마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오파마의 미래는?…폭스콘, '플랜B' 가동하나
이로써 한때 닛산 승용차 생산의 핵심 기지였던 오파마 공장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에 빠졌다. 닛산은 2028년 3월 완성차 생산 라인의 가동을 완전히 멈추고, 플라스틱 부품 생산과 도장 공정 등 일부 기능만 남길 계획이다. 공장 폐쇄의 최종 시점은 오는 10월 말 확정할 방침이다.
닛산 홍보팀은 폭스콘과의 협상 결렬을 두고 "특정 협상 상대를 이야기할 수 없다"며 원론만 되풀이했다. 이어 "외부 협력사와 힘을 합쳐 터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고 있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뚜렷한 미래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서, 일본 자동차 산업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생산 기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폭스콘의 일본 공략은 계속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협상 결렬이 닛산과의 관계에 잠시 차질을 빚었을 뿐, 폭스콘이 일본 내 생산 거점 확보 의지를 꺾은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폭스콘은 닛산 말고도 미쓰비시, 혼다는 물론 미쓰비시 후소의 전기 버스 부문과도 협력 관계를 넓히며 여러 방향으로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번 협상 결렬을 기회로 폭스콘이 다른 일본 완성차 업체와 협력 관계를 만드는 데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