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kWh 구조형 팩 탑재…880V 고전압 시스템으로 강력한 성능 발휘
2019년 인연에서 기술 동맹으로…미래 배터리 기술 공동 연구개발
2019년 인연에서 기술 동맹으로…미래 배터리 기술 공동 연구개발

두 회사는 2019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SK온은 SF90 스트라달레와 SF90 스파이더, 296 GTB, 296 GTS 같은 페라리의 핵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에 셀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입증해왔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두 회사는 지난 2024년 3월 서울에서 페라리의 베네데토 비냐 최고경영자(CEO)와 SK온 이석희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앞으로의 셀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업무협약을 공식화했다. 이로써 SK온은 페라리의 첫 순수 전기차 핵심 동반자로 자리매김했다.
페라리는 2020년부터 4년 동안 엘레트리카를 개발해 완성했다. 개발 목표는 내연기관 모델 특유의 정밀한 주행 감각과 피드백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었고, 그 중심에는 배터리 시스템이 있었다. 마라넬로의 페라리 공장에서 조립하는 엘레트리카의 배터리 팩은 SK온의 최신 하이니켈 니켈·망간·코발트(NMC) 셀을 바탕으로 한다. 총 122kWh 큰 용량을 자랑하는 이 배터리는 15개 모듈에 210개 셀을 담았다.
페라리 DNA 품은 122kWh 구조형 배터리 팩
특히 이 팩은 단순한 에너지 저장 장치를 넘어 알루미늄 뼈대(섀시)에 직접 구조 부품으로 들어가는 '구조형 팩(Structural Pack)'으로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에너지 밀도는 셀 수준에서 305Wh/kg, 팩 수준에서는 195Wh/kg에 이르러 페라리의 공식 자료와 정확히 일치한다. 880V의 고전압 시스템을 바탕으로 최대 350kW의 DC 급속 충전과 22kW의 AC 완속 충전을 지원하며, 순간 최대 1200A의 강력한 전류를 내뿜어 페라리다운 강력한 성능을 뒷받침한다.
페라리는 마라넬로에 새로 지은 전기차 전용 생산 시설 'e-빌딩'에서 SK온의 셀을 페라리 고유의 케이싱과 냉각 시스템, 그리고 독자적인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결합한다. 완성된 배터리 팩은 섀시 아랫부분에 20개 지점을 통해 단단하게 붙어 차체 전체의 비틀림 강성을 끌어올린다. 이를 통해 같은 급의 V8 엔진 모델과 견줘 무게 중심을 약 80mm 낮췄다. 슈퍼카의 코너링 성능과 주행 안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기술이다. 또한, 모든 배터리 셀은 페라리의 '포에버 프로그램'을 통해 따로 바꿀 수 있어 장기적인 서비스 이용도 보장한다.
기술 동맹으로 진화…'자급자족' 버린 페라리의 선택
페라리가 대부분의 부품을 자체 설계하고 생산하는 전통에도 SK온과 손을 잡은 것은 기술과 전략을 아우르는 판단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대규모 배터리 셀 생산은 고도의 화학 전문성과 막대한 산업 생산 능력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SK온의 대량생산 경험과 품질 관리 역량은 페라리가 요구하는 고성능·고내구성 조건을 완벽히 충족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단순 공급을 넘어 차세대 배터리 셀의 공동 연구·개발과 생산 공정 혁신까지 아우르며, 차세대 셀 화학 기술과 제조 공정 연구개발을 중장기 목표로 세웠다.
이번 동반 관계는 두 회사 모두에게 중요한 뜻을 지닌다. 페라리는 맞춤형 공학과 소프트웨어 통합이라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이번 협력으로 페라리는 배터리 셀의 품질 일관성과 추적성은 물론, 소재 조달 안정성까지 높였다. 이러한 협력 방식은 앞으로 페라리의 모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로 확대할 예정이다. SK온으로서는 비록 계약 물량 자체는 크지 않지만, 페라리라는 최고급 브랜드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명품 부문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쌓게 됐다.
내연기관 시대에 '자급자족'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세웠던 페라리는, 전동화 시대에는 SK온 같은 세계 최고 전문 기업과의 '협력'으로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엘레트리카의 본격 생산이 다가오는 지금,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장인정신과 한국의 첨단 배터리 과학의 만남은 전 세계 최고급 슈퍼카 시장에서 SK온의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동시에 높일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