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O "내년까지 소비자 가격 영향 전망"
이상 기후에 중국 소비 급증…수급 불안 심화
이상 기후에 중국 소비 급증…수급 불안 심화

닛케이는 지난 14일(현지시각) 소매 시장의 커피 가격이 수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생산지에서 잦은 이상 기후 발생으로 국제 커피 원두 가격은 더욱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주로 카페나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카 품종의 국제 가격은 지난 2월, 1kg당 9달러(약 1만 2820원)를 넘어섰다. 3월에는 8.9달러(약 1만 2682원)로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전년 동기 대비 1.9배 높은 가격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는 로부스타 품종 역시 5.7달러(약 8122원)로 전년 대비 1.6배 상승했다.
FAO 시장·무역부의 에밀리아노 마그리니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가격 상승은 대략 6개월에서 8개월 후 소매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하며, 약 1년 후에는 그 영향이 본격화될 것이다. 현재의 가격 급등 추세는 2025년 하반기, 빠르면 2026년 초부터 소비자들이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제 시장의 가격 상승폭이 그대로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지는 않는다. 수입업체와 유통업체 등 공급망 내에서 비용 부담이 분산될 수 있으며, 커피 원두 원가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최종 판매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취약한 커피 재배 환경과 불안한 수급
FAO 분석에 따르면, 세계 최대 커피 소비국인 유럽연합(EU)의 경우 국제 커피 가격이 1% 상승하면 약 19개월 후 소매 가격이 0.24%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격 상승의 영향이 완전히 해소되는 데에는 최소 4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에서는 국제 가격이 1% 오르면 약 13개월 후 소매 가격이 0.2% 상승하며, 그 영향은 약 2년간 지속될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 커피 원두 가격이 단 1년 만에 약 2배 가까이 폭등한 주된 원인은 주요 생산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이상 기후 때문이다. 아라비카 품종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브라질과 로부스타 품종의 약 40%를 생산하는 베트남은 극심한 가뭄과 기온 상승으로 인해 작황에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생육 부진과 병충해 발생 위험을 높이는 집중 호우와 장기간의 장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커피 원두 생산량은 기상 조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국제 거래 시장에는 투기 자본까지 유입되어 향후 가격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중국 소비 급증과 예측 불허의 트럼프 변수
FAO는 2025년에도 커피 원두 가격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특히, 에밀리아노 마그리니 이코노미스트는 재고 수준에 주목하며 "공급 충격이 지속되면서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커피 재고량이 약 4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고가 감소하면 시장은 공급 부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커피 생산량의 점진적인 회복을 전망하며, 아라비카 품종의 국제 가격이 2025년에는 8%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상승한 현재의 높은 가격이 다소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동시에 국제 시장은 여전히 공급 리스크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커피 원두 생산은 태생적으로 구조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25도에서 남위 25도 사이의 '커피 벨트'로 불리는 특정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열대 작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한적인 농업 생태계 내에서만 생산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현재 전 세계 커피 원두 생산량의 55%를 브라질과 베트남 두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상위 5개국의 생산량은 전체의 70%를 넘어선다. 주요 식량 작물인 밀이나 옥수수의 경우 특정 국가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다른 국가에서 대체 공급이 가능하지만, 커피 원두 주요 생산 국가들이 이상 기후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그 영향이 전 세계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더욱이 커피는 여러 해 동안 수확이 가능한 나무 작물(Tree Crops)이다. 따라서 밀과 같은 단기 작물처럼 시장 가격 변화에 따라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마그리니는 "가뭄, 고온, 장마 등의 영향으로 커피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병충해 발생 위험이 커진다. 새로운 묘목을 심더라도 수확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커피 원두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 시장의 급격한 소비 확대는 세계적인 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커피 소비량은 지난 10년간 약 2.5배나 급증했다. 특히, 인스턴트 커피에서 원두커피로의 소비 트렌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24-2025년 시즌의 로스팅 전 커피 생두 수입량은 10년 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 내 커피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전자 제품, 와인 등과 함께 커피 원두 가격 인상을 주요 물가 상승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미국은 커피 원두 수입량의 약 80%를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로부터의 수입에는 이미 5%에서 10%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의 흐름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무역 정책 변화와 더불어, 비교적 덜 주목받고 있지만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기후 변화 역시 글로벌 식량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커피 가격 급등 사태는 단순한 일회성 현상을 넘어,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수 있는 복합적인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