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연대기(86)] 정은주(현대무용가), 몸에 축적된 감각과 기억을 깨워 새로운 의미를 만들다
이미지 확대보기'UNDERCURRENT'는 몸과 전시가 하나가 되어 전시회를 이룬 현대무용展이다. 레온 갤러리 성수커넥트(성동구 아차산로1가길 11)에 초대된 작품은 보이지 않는 기억의 흐름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어 가는 몸에 관한 기록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신체와 기억의 시작’, ‘4가지 블루의 상태’, ‘댄스 필름 2부작’, ‘미디어 퍼포먼스’에 이르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각 섹션은 몸의 감각과 기억이 공간 속에서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1 신체와 기억의 시작 : Becoming ME
이 공간은 작가 정은주의 몸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의 흔적을 호출한다. 안무 노트, 사진, 책, 몸의 궤적을 따라 축적된 다양한 기록물은 아카이브를 넘어, ‘정은주’를 형성해 온 삶의 단편이자 감각의 조각들이다. 몸은 경험을 통과하는 가장 가까운 장소이며, 지나간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신체의 감각과 태도, 움직임 속에 남아 있으며 또 다른 자아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은 '정은주'라는 한 사람이 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며, 각자의 몸 안에 존재하는 기억의 시작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Becoming ME’는 현재의 자신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생성의 과정을 가시화하며, 관객 각자의 몸에 잠재된 기억과 감각의 기원을 환기한다. 전시는 과거를 진열하는 장소가 아니라, 기억이 신체를 거쳐 현재의 존재로 다시 발현되는 사유의 장으로 확장된다. 이때 기억은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몸과 만나는 순간마다 새롭게 해석되고 갱신되는 유동적인 층위로 작동한다. 관객은 타인의 기억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몸에 각인된 시간과 감각을 호출하며, ‘나’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에 조용히 동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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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2 4가지 블루의 상태 : Becoming Blue
사진은 신체에 침윤된 기억과 감정의 미세한 층위를 네 가지 블루의 변주로 포착한다. 여기서 블루는 단순한 색채적 장치가 아니라, 내면의 경험이 신체에 스며들고 변형되는 심리적·감각적 상태를 표상한다. 저항(Resistance), 흡수(Absorption), 변화(Transformation), 해방(Liberation)이라는 네 개의 국면은 하나의 감정이 고정된 형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각이 서로 충돌하고 침전되며 마침내 새로운 존재의 양태로 이행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색채를 매개로 내면의 시간이 신체의 표면에 서서히 현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은 비가시적 내면의 운동을 정지된 이미지 안에 응축함으로써, 몸에 축적한 시간과 정서의 풍경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색채와 신체, 의상과 표정의 조응은 감정의 표면 재현에 머물지 않고, 기억이 몸을 통과하며 남기는 흔적과 변주의 결을 드러낸다. ‘Becoming Blue’에서 신체는 기억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새로운 자아로 이행시키는 생성의 장으로 읽힌다. 사진들은 몸과 기억 사이에 형성된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며, 현재의 신체가 과거의 흔적을 품은 채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모하는 과정을 증언한다.
#3 댄스 필름 2부작 : Becoming Movement, 댄스 필름 2부작('UNTOUCHABLE', 'RESONANCE') 몸 안에 머무는 기억이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는다. 닿지 못한 기억과 놓지 못한 감정에서 시작해, 기억을 받아들이고 공명하며 또 다른 움직임으로 나아가는 몸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는 기억을 과거에 고정된 잔상이 아니라 현재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감각적 동력으로 전환하며, 정지와 움직임 사이에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이자, 내면의 기억을 현재의 감각으로 환원하는 과정이다.
'UNTOUCHABLE' : '닿지 못함'에서 시작된 몸의 기억이다. 다가갈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경계에서 움직이려는 의지와 놓지 못하는 기억은 서로 충돌하며 원안에 갇혀 반복적으로 쳇바퀴에 갇힌 듯 돌고 돈다. ‘닿을 수 없음’이 만들어낸 갈망과 갈증의 흐름을 담아냈다. 'RESONANCE' : 몸이 기억을 받아들이고 공명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몸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을 지우지 않고 마치 큰 바다처럼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그 울림은 새로운 호흡이 되어 몸을 변화시키고, 또 다른 나를 향한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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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4 미디어 퍼포먼스: Becoming Presence
과거의 신체적 흔적을 현재의 현존으로 호출하며, 기록된 몸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시 감각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사진과 댄스필름에 축적된 기억의 파편들은 실재하는 신체와 영상, 음악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유동적인 감각의 장으로 변환된다. 이때 매체들은 독립된 이미지로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새로운 시간성을 형성한다. 퍼포먼스는 기억의 재현을 넘어, 지나간 흔적을 지금 여기의 생생한 사건으로 전환하는 생성의 과정이 된다.
무대의 움직임은 고정된 형상을 반복하지 않고 순간마다 다른 결을 발생시키며, 동일한 작품조차 매번 새로운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신체는 영상과 소리의 리듬에 반응하고 다시 그것을 변화시키면서, 자신 안에 잠재된 기억을 현재의 움직임으로 치환한다. ‘Becoming Presence’에서 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열린 표면으로 기능한다. 그 순간 공연장은 기억과 감각, 이미지와 신체가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현재를 탄생시키는 살아 있는 현상학적 공간이 된다.
'UNDERCURRENT : BeComing'은 기억을 과거의 흔적으로 고정하지 않고, 신체와 이미지, 움직임과 공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생성의 시간으로 확장한다. 정은주의 몸은 축적된 삶의 기억을 품은 저장소이자 그것을 움직임과 색채, 영상과 현존으로 변환하여 새로운 자아를 생산하는 열린 감각의 장이 된다. 따라서 이 전시는 수면 아래 잠잠히 흐르던 내면의 파동을 현재의 몸으로 길어 올려, ‘나’라는 존재가 기억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BeComing 되어가는 존재임을 감각적으로 증명한다. 이 작품은 현대무용의 진화를 이룬 전시회로 기록된다.
연출·퍼포머 정은주 ; #1. 정은주와 엄준혁(공간디자인)과의 협업 #2. 정은주와 이현준(사진)·조송은(의상)·김보배(메이크업·헤어)와의 협업 #3. 정은주와 이호진(영상)·박선경(음악)·박소진(시놉시스)과의 협업 #4. 정은주와 차재이(미디어아트)·후여숭(侯厉嵩, 음악)·조송은(의상)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더헤케이브 아트앤스포츠©임현우, 전호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