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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묶인 정유산업… 바꾸기 어려운 ‘수익 구조의 역설’

기획|한국 에너지 구조 해부 ②
설비·수익성·장기계약이 만든 딜레마… 기업은 왜 다변화를 주저하나
한국성유공사 원유비축기지 전경. 사진= 한국석유공사이미지 확대보기
한국성유공사 원유비축기지 전경. 사진= 한국석유공사

수입과 수출이 결합된 산업 구조


중동 정세 불안이 국내 에너지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충격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한국 정유 산업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대신, 이를 정제해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중동에서 들여온 원유를 가공해 다시 해외에 판매하는 ‘수입-가공-수출’ 모델이다. 실제로 국내 원유 수입의 약 70% 이상이 중동에 집중돼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왔지만, 동시에 원료와 시장 모두를 해외에 의존하는 이중 리스크를 안고 있다.

원료가 흔들리면 산업이 멈춘다

22일 석유공사 등 업계에 따르면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정유 공정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는 곧 생산 차질과 수출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히 국내 도입 원유 상당수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핵심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해당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전략 요충지로, 봉쇄나 긴장 고조 시 물리적 공급 이전 단계인 운송·보험에서부터 병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원료 조달과 제품 판매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다변화 시도…그러나 탈중동은 쉽지 않다


국내 정유사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 기업은 북미·남미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며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중동 중심의 조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공급 안정성과 유연성 사이에서 선택이 갈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제약은 여전히 크다.

기술과 수익성의 충돌


중동 원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를 구조적으로 정리한 인포그래픽. 기술과 수익성이 충돌하며 다변화를 가로막는 현실을 보여준다. 자료=AI생성 및 자체편집이미지 확대보기
중동 원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를 구조적으로 정리한 인포그래픽. 기술과 수익성이 충돌하며 다변화를 가로막는 현실을 보여준다. 자료=AI생성 및 자체편집

국내 정유 공정은 중질유 처리를 전제로 한 고도화 설비 중심으로 구축돼 있다. 상압·감압 증류 이후 잔사유를 분해하는 고도화 공정 비중이 높아, 무거운 원유를 투입할수록 수익성이 개선되는 구조다.

이러한 설비는 벙커C유 등 저부가 잔사유를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즉, ‘무거운 원유일수록 돈이 되는’ 구조다.

반면 경질 원유는 가벼운 성분 비중이 높아 고도화 공정을 거칠 필요가 적다. 이 경우 기존 설비 활용도가 떨어지고 일부 공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 정제 마진이 낮아질 수 있다.

여기에 원유 성상 변화에 따른 제품 수율 문제도 발생한다. 중질 원유 기준으로 설계된 공정에 경질 원유를 투입하면 고부가 제품 생산 비중이 줄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설비 전환은 더 큰 부담이다. 공정 재설계와 고도화 설비 조정에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전환 과정에서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도 불가피하다. 동시에 제품 포트폴리오 변화로 인한 수익성 불확실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결국 원유 도입선 다변화는 단순한 조달 전략이 아니라, 기존 투자 구조와 수익 모델 전체를 흔드는 선택이 된다. 이 같은 구조적 제약 속에서, 국내 정유 산업은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여전히 중질 원유 중심, 즉 중동 의존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전’과 ‘효율’ 사이의 선택


중동 의존 구조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지만, 기존 체계를 유지할 경우 생산 효율과 수익성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반대로 공급선을 다변화하면 리스크는 분산되지만 비용 증가와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수익성과 장기 안정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다.

정유 산업은 단순한 원료 구매를 넘어 국가 산업 전반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석유화학, 항공, 운송 등 주요 산업이 동일한 에너지 체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정유 산업은 ‘중동 의존’이라는 구조적 조건을 안은 채, 효율과 리스크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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