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은 늘었지만 숙련 인력은 감소… 조선업 고용 구조 재편 가속
이미지 확대보기수주 호황 속 엇갈린 현장 체감
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과 옥포동 일대 대형 도크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다. 울산 동구 전하동의 HD현대중공업과 거제 옥포조선소의 한화오션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조선업계 집계를 종합하면 2025년 말 기준 국내 주요 조선 3사의 수주잔고는 약 180조~200조 원 규모로, 최소 2~3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외형만 보면 조선업은 완전한 회복 국면에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거제 고현시장과 장평동 상권은 과거 호황기만큼 활기를 되찾지 못했고, 조선소 내부 인력 구성도 눈에 띄게 변화했다.
이 간극은 단순한 경기 문제가 아니라 ‘고용 구조 재편’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줄어든 인력, 늘어난 물량
조선업 고용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곳은 거제시다. 통계청과 거제시 자료에 따르면 조선업 종사자는 2015년 약 8만명에서 2021년 3만8000명까지 급감했다. 이후 일부 회복됐지만 2024년 기준 약 5만2000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5년과 비교하면 약 2만8000명이 줄어든 규모로, 전체의 약 65% 수준에 그친다.
반면 수주 물량은 크게 늘었다. 클락슨리서치 기준 표준화물선 환산톤(CGT)으로 보면 2024년 수주량은 2016년 대비 약 4배 이상 증가했다.
처리해야 할 일감은 크게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셈이다.
고용시장 내부 변화도 감지된다. 거제시 실업률은 2025년 상반기 약 3.2%로 안정적이지만, 실업급여 지급 규모는 2015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조선업을 떠난 인력이 동일 산업으로 복귀하지 않고 다른 업종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국인 노동자 25%… 바뀐 현장 구조
부족한 인력을 메운 것은 외국인 노동자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2021년 약 5%에서 2026년 현재 25% 수준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거제시 등록 외국인 수 역시 2018년 1만 명 이하로 감소했다가 2024년 1만4000~1만5000명 수준으로 다시 늘었다.
울산 동구 전하동과 방어동 일대에서도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국적 노동자가 주요 생산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장에서는 작업반 구성 자체가 달라졌다는 증언이 나온다. 과거 숙련 내국인 중심이던 팀 구조는 이제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는 단순 인력 보충을 넘어 생산 체계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미충원율 14.7%… 숙련 공백 현실화
조선업 인력난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조선업이 포함된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의 미충원율은 14.7%로, 전 산업 평균(8.3%)의 약 두 배에 달한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조선업은 용접·취부·도장·배관 등 숙련 기술이 필수적인 산업이다.
현재 기능인력 평균 연령은 44~45세 수준이며, 협력업체의 경우 40대 이상 비중이 60%를 넘는다. 신규 인력 유입이 거의 없는 가운데 기존 숙련공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증가가 공백을 일부 메우고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고용허가제(E-9)는 체류 기간이 제한적이고, 언어 문제와 높은 이직률로 인해 장기적인 숙련 축적이 어렵다.
이로 인해 작업 속도 저하, 공정 간 의사소통 문제, 안전사고 위험 증가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이미지 확대보기생산 차질 조짐… 현장 부담 가중
울산과 거제의 조선소 협력업체에서는 용접공, 도장공, 취부사 등 핵심 직종의 인력 부족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신규 인력 교육 기간이 길어지며 공정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숙련공 1인당 작업 범위가 확대되면서 노동 강도는 높아지고, 이는 다시 인력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조선업은 공정 간 연계성이 높은 산업이다. 특정 공정의 지연은 전체 건조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납기와 수익성 문제로 이어진다.
정책 전환… ‘확대’에서 ‘구조 개선’으로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정책 방향도 변화하고 있다. 2026년 3월 울산에서 열린 조선업 인력 간담회에서는 외국인력 활용 방식 전환이 핵심 의제로 논의됐다.
기존 단순 인력 중심(E-9)에서 숙련 인력 중심(E-7)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외국인 고용 확대 기업에 대해 내국인 고용 유지 노력을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
현재 한국 조선업은 기술 경쟁력과 수주 측면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구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숙련 인력의 대량 이탈 이후 복귀는 제한적이고, 그 공백을 외국인 노동자가 빠르게 대체하면서 산업의 기반 자체가 바뀌고 있다.
수주 200조 원이라는 숫자는 산업의 외형을 보여줄 뿐이다.
조선업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지금의 인력난은 단순한 일시적 부족이 아니라, 산업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호황이 다음 사이클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