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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춤으로 그린 시간' 김근희를 사유하다

전통춤의 깊이와 묘미를 존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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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입춤(전영선)
4월 9일(수) 저녁 일곱 시 반,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컴퍼니 운정춤’ 주최, 경기검무보존회 후원, 김꽃잎 연출의 '운정, 춤으로 그린 시간'이 이병준(무용 칼럼니스트)의 사회로 공연되었다. 한국무용계를 일군 운정 김근희 선생의 역작들은 후학들에 의해 기존 관념의 고정 레퍼토리를 우회한 여섯 갈래의 다섯 독무와 한 작품의 사인무로 구성되었다. 춤으로 섬세하게 단련된 ‘컴퍼니 운정춤’의 정형의 움직임은 레퍼토리는 같아도 여유로움으로 맥을 짚고 우뚝 선 화사의 춤이라는 느낌을 불러왔고 몰입의 경지를 제공하였다.
전통춤과 변주에 걸친 여섯 마당의 춤은 전통춤의 매력 가운데 교태미 구사 지도에 으뜸가는 능력을 소지한 김근희의 지도력이 투영되었다. 7명(여성 5명, 남성 2명)의 무용수로 구성된 김근희의 후학들은 '교방입춤'(전영선), '무상'(김가온), '진도북춤'(이종화), '즉흥시나위'(김꽃잎), '운정한량무'(최수진), '경기검무'(전영선, 김가은, 허희숙, 오지영)를 공연했다. 압도적 연기와 밀도 높은 사운드, 사실적 조명은 소극장에 집중과 몰입의 경지를 창출했다. '운정, 춤으로 그린 시간'은 하나의 잊지 못할 판타지가 되었다.

이날 공연된 작품들은 우리 춤의 가치를 소지하면서도 여성적 매력과 남성적 흥신을 불러왔다. 자연과 어울리며 무용수 스스로 꽃이 되는 움직임의 표현과 공동체 의식을 고취한 작품들은 서로 무서운 균형감각을 소지하고 있었다. 전통춤 공연은 늘 관객과 하나가 되며,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는 주체적 가치를 소지한다. '운정, 춤으로 그린 시간'은 무형문화 유산의 대중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 공연이었다. 권위적 전통과 철학적 주제를 벗어난 낭만적 전통 구사의 작품들은 무수한 경험과 지혜에서 추출한 상상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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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입춤(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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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김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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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김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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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춤(이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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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시나위(김꽃잎)

'교방입춤'(춤: 전영선): 운정 김근희가 재구성한 안무작이다. 교방(敎坊)은 조선조 각 지역의 기녀들을 교육하고 관장했던 교육기관이었다. 이 작품은 전통적 가치관과 유교적 제약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을 표현한다. 춤사위는 정제 풍의 상부구조의 품격과 서민적 소탈함이 어우러진다. 예기(藝妓)를 연희한 전영선은 의상의 화려함과 교태미를 극도로 끌어올리며 전통춤의 멋과 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리와 장단에 몸을 싣고 부채를 운용하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 춤의 가치와 창작 정신을 마주하게 된다.

'무상'(춤: 김가온): 김근희에 의해 1968년 창작된 신무용 계열의 춤이다. 김근희가 20대에 어머니를 여윈 뒤 느낀 허망함과 회환을 풀어낸 작품이다. ‘무상’(無常)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세월이 덧없고 인생이 무상함을 성찰한다. 김가온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여정을 춤으로 담아낸다. 긴 천과 짧은 천으로 연(緣)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조용히 묵상하며 번민을 감싸는 춤사위 속에 깊은 울림이 스며든다. 김가온의 시원한 긴 선과 천을 보석처럼 안고 운용하는 노련한 백색 기교의 춤은 사연을 심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진도북춤'(춤: 이종화): ‘진도씻김굿’ 보유자 박병천(朴秉千, 1933~2007)이 재구성한 전남 지역의 북춤이다. 작고 가벼운 북을 어깨에 메고, 양손에 북채를 들고 다양한 잔가락과 빠른 춤사위로 즉흥성이 뛰어나다. 이종화의 독무는 정형의 강렬한 남성성과 섬세한 여성성을 구사하며 북춤 특유의 역동성과 깊이를 선서했다. 이 북춤은 모리가락에서 왼손의 손등을 보이면서 사뿐히 넘어간다. 박병천은 양태옥(梁太玉, 1919~2003)에게 사사했다. 박병천은 ‘서울의 집’ 악장 시절에 진도북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즉흥시나위'(춤: 김꽃잎): 김근희의 안무작이다. 김꽃잎은 한들바람을 타고 오는 듯 초록을 머금은 동그란 단선(團扇)을 들고 시나위 장단에 맞춰 즉흥성을 가미하여 ‘흥과 멋’을 한껏 표현한다. ‘시나위’는 전라도 지역의 굿의 진행을 즉흥적으로 받쳐주는 반주음악이다. 이 음악에 맞추어 무용수는 전통춤의 표현 양식을 최대한 운용하면서 즉흥성을 강조한다. 풀사이즈의 기교로 원형을 재창조하고자 하는 안무가의 노력이 담겨있다. 정형을 뛰어넘는 표정 연기와 다양한 춤사위는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운정한량무'(춤: 최수진): 김근희의 안무작이다. 여성 한량무를 촉발한 춤은 선 고운 남성 무용수들에게도 매력적인 레퍼토리가 된다. 옛 선비들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면서 미래를 설계하곤 했다. 일탈은 현실 도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내적 일렁임을 단련시키고 성찰하는 과정이다. 예술을 즐기고 철학적 사고를 깊이 하는 태도는 세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삶의 한 표현 방식이다. 최수진은 '운정한량무'의 멋과 맛을 여유롭게 운용하면서 춤으로 죽림의 가치를 실현했다. '운정한량무'는 여전히 매력적인 춤이다.

'경기검무'(춤: 전영선, 김가온, 허희숙, 오지영): 전통춤에서 검무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최고(最古)의 춤이다. ‘경기검무’는 한성준(韓成俊, 1874~1942)-강선영(姜善泳, 1925~2016)-김근희(金槿姬, 1946~)로 이어지며 2011년 6월 17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무형유산으로 재지정되었다. ‘경기검무’는 대풍류(竹風流)를 반주음악으로 삼아 맨손 춤사위와 칼 춤사위로 구성되며, 10개 내외의 세부 동작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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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시나위(김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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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한량무(최수진)
경기검무(전영선, 김가은, 허희숙, 오지영)이미지 확대보기
경기검무(전영선, 김가은, 허희숙, 오지영)
경기검무(전영선, 김가은, 허희숙, 오지영)이미지 확대보기
경기검무(전영선, 김가은, 허희숙, 오지영)

활달한 기상과 강한 기질이 배어있는 ‘경기검무’는 높은 예술성과 역사성, 전통춤의 맥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경기검무’는 흘춤과 대무 형식 모두가 전승되고 있다.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 쾌자(快子, 옷 위에 덧입는 군복)와 전립(戰笠, 조선의 군모)은 안쪽이 붉고 바깥쪽은 까맣다. 전대(戰帶, 허리띠)는 붉은색이다. ‘경기검무보존회’는 감각적 이성적 지적 단계의 수련을 거쳐 연행에 있어 안정된 단체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연행의 4인 무용수들은 다년간 수련한 익숙한 솜씨로 '경기검무'를 유연하게 연기해 내었다.

'운정, 춤으로 그린 시간'은 김근희 안무 세계를 조망하고, ‘컴퍼니 운정춤’의 전통춤 보존 의지와 사랑을 보여준 뜻깊은 공연이었다. 의미를 담은 공연은 김근희 ‘경기검무’ 보유자의 팔순 공연의 전초전이었고, 경기검무의 역사성과 매력 과시, 안무와 춤 연행에 걸쳐있는 김근희 춤의 다채로움 전시, 김근희의 무맥(舞脈)을 이을 후학들의 기량 공개 형식을 띠고 있었다. 한 생명체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8,400만 번의 윤회를 거쳐야 한다. 춤의 본질을 깨닫고, 바른 정신의 무용수들로 태어나고자 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컴퍼니 운정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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