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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 원만한 결혼생활 유지 비결

[힐링마음산책(287)] 행복한 결혼의 조건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4-05-29 09:10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한 후 성숙한 짝을 만나야 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한 후 성숙한 짝을 만나야 한다. 사진=로이터

최근 고급 아파트 단지로 알려진 곳에서 단지 내 입주민만을 대상으로 미혼 남녀의 결혼을 주선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입주민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에 소모임을 만들어 단체 대화방을 통해 운영 중이며 가입 대상은 입주민 당사자, 자녀 등 가족이다. 이 소모임은 지난 4월 가입자와 자녀가 함께 인사를 나누는 정기 모임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결혼 적령기 자녀나 신청 당사자 모임도 개최할 예정이다. 참석자들은 인근 유원지에서 만찬과 2차 와인 파티를 즐길 예정이며 1분 스피치와 명함 교환 등을 진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의 미혼 자녀들끼리 단체 맞선을 보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서로 교제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찬반 의견들이 분분하다.

유사 이래 서로 지위가 비슷한 신분의 남녀가 부부가 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 중에 서로 경제적·사회적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은 어느 조사에서도 공통적이다.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정해주는 전통적인 결혼에서도, 현대판 결혼중개업소에 해당하는 매파(媒婆)도 아무나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집안을 비교해 서로 비슷하거나 보완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짝을 연결하려고 한다. 소개해준 결혼의 성사 여부와 지속 여부가 매파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결혼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결혼을 통해 양가가 혼맥(婚脈)을 쌓는 것이다. 결혼을 통한 양가의 연합(聯合)은 평상시에는 가문의 세력을 확대하는 데 유용하며,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는 가문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군(援軍)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권력·금력 혹은 다른 사회적 세력을 가진 집안끼리 결혼해 혼맥을 쌓으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재벌과 재벌끼리 혼맥을 맺는 경우도 많아 한 다리 정도만 건너면 모두 얽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또한 재벌가와 정치인 집안이 혼맥으로 엮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처럼 학력·직업·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결혼하는 것을 동질혼(同質婚)이라고 한다. 예전의 동질혼은 가문과 가문 간 연합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평등 사상이 확산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급속히 늘어나며 맞벌이가 필수 조건으로 꼽힐 정도로 결혼관이 바뀌면서 당사자 사이의 선택에 의해 동질혼의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법조인·의료인·교육자 등 전문직 등이 서로 같은 직업에서 배우자를 찾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또한 서로 다른 직종끼리 찾아도,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동질성이 중요해진다.

학력•소득 등 비슷한 조건의 '동질혼' 그나마 행복할 가능성 커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 그리고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이 동질적이면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보장(保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동질성은 원만한 결혼생활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 주위에서 보듯이 외형적으로는 동질적이지만 파경(破鏡)에 이르는 결혼도 적지 않다.
외형적으로는 선호하는 배우자의 조건으로 꼽히는 의사나 변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의대생의 동갑내기 여자친구 살해사건이나 변호사의 아내 살인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가 불과 몇 년 전에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人才)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이 컸다. 과거 언론과의 대담에서 “좋은 외과의사가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범인은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해서 더욱 충격이 컸다. 또한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가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범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음성 파일이 방송을 통해 일부 공개되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유족에 따르면 피해자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후 남편과 별거하기 시작했다가 사건 당일 딸의 책가방을 가지러 가기 위해 남편과 함께 살던 집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피의자의 부친은 검사 출신의 전직 다선 국회의원으로 알려졌다. 이 두 경우 모두 상대방의 헤어지자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 비극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요소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원가족(原家族)과의 심리적 독립이다. 원가족은 개인이 태어나서 자라온 가정 혹은 입양되어 자라온 가족을 말한다. 두 번째 가족은 결혼과 함께 새롭게 형성되는 가족이다. 첫 번째 가족을 ‘원가족’이라고 하고, 두 번째 가족을 ‘형성 가족’이라고 부른다. 개인이 원가족에서 성장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성격의 형성과 대인관계의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개인이 성장하면서 원가족의 습관과 가치관을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면화된 습관과 가치관은 성인이 되어 맺는 대인관계나 결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두 번의 탯줄을 끊으면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해 간다. 첫 번째는 태어나면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던 탯줄을 끊으며 어머니로부터 육체적으로 독립한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발달해갈 때는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며 최상의 조건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해 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어머니의 몸과 분리되면서 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때 어머니로부터 육체적으로 분리된다.

외형적으로 동질적이라도 파경에 이르는 경우 '허다'


비록 육체적으로 분리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최소 1년이 지날 때까지는 어머니와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심리적으로 의식하지도 못한다. 심리적으로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10여 년의 발달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위 청소년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방황과 불안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 소위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해야 한다. 정체성은 자기(自己)에 대한 주관적 경험으로서 아동 자신이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에서 시작된다. 정체감의 형성 과정에서 아동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소망, 사고, 기억 등을 갖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 이런 자신만의 독특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성장하면서 쉽게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 안에서 탈바꿈을 해야 하듯이, 어린이도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큰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의 핵심은 갓난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육체적으로 분리되면서 탯줄을 끊고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쉬고 음식을 먹으며 생존해 가야 하는 것과 같다. 즉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아동은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탯줄을 끊고 부모의 보호 아래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생존해 가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양쪽에서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더 이상 자신의 우산 아래 있는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녀를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제 자녀는 자기 나름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안전한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성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변화는 한편으로는 독립의 기쁨이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두려움도 따르게 된다. 독립의 기쁨과 두려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점차 두려움보다는 기쁨을 더 선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심리적 탯줄을 끊는 과정이다.

각자 부모에게서 떠나는 것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출발점


결혼은 근본적으로 두 성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 위에서 조화로운 결혼이 유지되기 위해 선결돼야 하는 과제는 두 사람 모두 원가족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충분히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함께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부가 하나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의 부모를 떠나야 한다. 즉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배우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심리적으로 충분히 독립하지 못한 채 결혼하게 되면, 배우자에게서 부모를 찾게 된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배우자에게서 부모를 찾고 부모의 역할을 해주기를 요구하게 된다. 부모에서 배우자에게로 옮겨 갔을 뿐 여전히 심리적으로는 부모의 보호와 애정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학력이나 지위, 경제력 등의 외적인 요소들에서 동질적인 것이 많을수록 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 성숙한 짝을 만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짝을 찾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외적인 조건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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