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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100년 -하] 폐암 신약 '렉라자' 개발, 빅 파마가 손짓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에 당당히 등극

'오픈 이노베이션'선언 9년만에 미 FDA 승인...지난한 검증과정은 유한양행의 자산으로

우크라 전쟁 피난민 추적해 임상하는 등 우여곡절...계약사 얀센 "렉라자 대박 가능"
유한양행 100년사. 사진=유한양행 이미지 확대보기
유한양행 100년사. 사진=유한양행
유한양행이 창립 100년을 맞았다.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시작한 보건 안보의 첨병 100년이다. 2018년에는 글로벌 제약사인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얀센바이오테크와 1조4천억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제약업계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유한양행 100년의 발자취를 통사 1회와 연구개발 부문 2회 등 세 차례 싣는다. <편집자주>
오픈 이노베이션. 오랫동안 유통 중심 사업으로 성장해온 유한양행의 한계를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이며 뛰어넘어야만 하는 불가피한 선택지였다. 신약 개발의 긴 시간과 비용을 내부에서 감당하는 폐쇄주의를 버리고 외부의 유망한 기술과 연구역량을 결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지난한 여정의 로드맵과 같은 말이었다.

2015년 3월 20일. 국내 매출 1위 회사의 정기 주주총회는 일순 정적이 흘렀다. 대표이사로 새로 취임한 이정희 사장의 취임사는 유한양행의 현실을 제대로 파고 들었고 대안은 분명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움직였다.

제노스코에서 폐암 치료제 신물질 도입


4개월 뒤 국내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의 미국 회사인 제노스코로부터 전임상 직전 단계에 있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신물질을 도입했다. 10억 들었다. 유한양행의 폐쇄주의 문이 열리고 오픈 이노베이션 돛이 활짝 펴진 순간이었다. 이 돛을 펴고 간 긴 여정의 끝에 위대한 혁신 신약 '렉라자'가 있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별을 품었으며 천문학적 기술수출은 덤이었다.

렉라자. 사진=유한양행
렉라자. 사진=유한양행


유한양행 연구진은 신물질 레이저티닙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 신물질은 내성 돌연변이를 정밀 타격하고 고질적 부작용인 피부 발진이나 심장 독성 우려까지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이때가 2015년 7월. 그러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다른 거대 제약사가 이미 임상단계에 진입해 있어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정희 사장의 뚝심이 빛났다. 렉라자 개발을 연구소 단위가 아니라 전사적 최우선 프로젝트로 격상시켰다. 매주 진행 상황을 직접 챙기며 의사결정을 내렸고 원팀 체제를 가동, 글로벌 임상을 속도감있게 밀어붙였다.

레이저티닙의 높은 혈관장벽 투과율 최대 장점

유한양행은 레이저티닙이 가진 높은 뇌혈관장벽 투과율, 특정변이에 대한 우수한 선택성, 낮은 독성에 주목했다. 3세대 폐암 치료제의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후발주자인 유한양행은 속도를 잡을 것인가 품질을 유지할 것인가 기로에서 망설임 없이 품질을 택했다. 지난한 작업 끝에 초기 원료 형태를 유리염기 대신 메실산염으로 방향 전환했고 이는 신약 개발로 가는 길을 성큼 당겼다.

유한양행 연구진이 집중한 다음 과제는 렉라자의 가장 강력한 장점인 '뇌혈관장벽 투과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효능 평가였다. 내외부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고난도 과정을 거쳤다.

치밀한 검증을 거친 레이저티닙은 2017년 마침내 인체 대상 임상의 첫 걸음을 뗀다. 초기 1/2상 결과 유의미한 항종양 활성을 확인했고 주목을 끌었던 심장 안전성 측면에서도 두드러진 위험 신호는 없었다.
기술수출의 신기원을 연 얀센바이오테크와의 계약 체결식. 2018년 11월이다. 사진=유한양행 이미지 확대보기
기술수출의 신기원을 연 얀센바이오테크와의 계약 체결식. 2018년 11월이다. 사진=유한양행


얀센바이오테크, 철저한 투명성 완벽함 요구


이제 얀센바이오테크와 기술수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얀센은 병용요법으로폐암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글로벌 3상 주도권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조건을 관철시켜 진정한 공동개발 구조를 완성했다.

이후 기술검증과 실사는 축배가 아닌 뼈아픈 자기 객관화 시간이었다. 국내 최고 연구개발 수준이라고 자부하던 역량은 글로벌 제약 시장의 요구 앞에서 가볍게 무너졌다. 얀센의 실사단은 화려하게 포장된 프리젠테이션이나 깔끔하게 정리된 결론 요약본에는 관심이 없었다. 집요하게 파고 든 건 레이저티닙의 약효를 증명하는 투명성과 완벽함이었다.

유한양행 연구진도 방어에 급급하지 않고 부족한 근거는 추가 시험과 문서화로 보완했다. 이같은 철저한 검증 과정은 유한양행 연구개발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꾸는 혁신의 계기가 됐다. 실사는 참으로 긴 터널이었다.

'렉라자' 개발 과정은 단순히 운좋게 발굴한 유망 물질 하나를 상업화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글로벌 빅파마의 눈높이와 잣대에 맞춰 완전히 환골탈태시킨 위대한 혁신의 무대였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체득이야말로 유한양행 100년 역사에 남긴 가장 값진 자산이었다.

얀센바이오테크와 1조4천억 규모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


당시 이정희 사장은 매주 수요일 서울 본사가 아닌 기흥 중앙연구소로 출근했고 외부 영입인사를 연구소장에 기용하며 전권을 위임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렇게 유한양행의 핵심역량으로 체화했다.

2018년 11월 유한양행은 얀센바이오테크와 총액 12억55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환율로 1조4천억이 넘는 것으로 한국 신약 개발사에 획을 그은 거대한 이정표로 기록됐다.

2021년 7월 8일, 역사적인 렉라자 출시 기념식. 코로나19로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진=유한양행 이미지 확대보기
2021년 7월 8일, 역사적인 렉라자 출시 기념식. 코로나19로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진=유한양행


악재는 늘 돌출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역사적인 '렉라자' 품목허가 기념식에는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채 기념사진을 찍었다. 2022년 2월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 따라 두 국가 모두 임상시험을 하는 나라로서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담당자가 피난을 떠나 연락이 두절되는일도 있었다. 피난 간 환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끈질기게 임상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폐암 환자 900명에 한달 600만원 제품 무상 공급


2021년 1월 렉라자가 식약처로부터 국산 신약허가를 받았다. 나아가 2023년 6월 1차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때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정신을 잊지 않았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전까지 처방을 희망하는 폐암 환자들에게 무상 공급했다. 한 사람당 매달 600만원 가량의 경제적 고통을 온전히 유한양행이 짊어졌다. 900명의 환자가 렉라자로 생명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었다.

2024년 8월 드디어 '렉라자'는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으로 미국 FDA 승인을 받는다. 이 기념비적 사건은 유한양행뿐 아니라 한국 제약산업의 위상을 단숨에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얀센은 이 병용요법이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레이저티닙이 병용요법으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아 2024년 8월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유한양행  이미지 확대보기
레이저티닙이 병용요법으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아 2024년 8월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유한양행



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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