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크렘린 기밀 유출 "전쟁 패배, 승리로 포장"… JP모건 "우크라이나, 핀란드식 종전" 50%

러시아 대통령실 내부 문건 폭로, 돈바스 일부 점령지 반환 후 '대서방 승리' 선전 계획
JP모건, 우크라이나 영토 20% 상실·중립화 시나리오 기준 확률 50% 제시… 올해 합의 가능성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대통령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실질적인 목표 달성 없이 마무리하면서도 자국민에게 '역사적 대승'으로 포장하는 선전 전략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는 내부 기밀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이와 맞물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 Co.)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유력한 결말로 '핀란드식 시나리오'를 공식 제시하면서, 국제 금융가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종전 구도 논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유출된 크렘린 기밀 문건… "멈춰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러시아 반정부 매체 도시에 센터(Dossier Center)는 지난 7일(현지시각)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내부에서 작성된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를 공개했다. 도시에 센터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 미하일 호도르콥스키(Mikhail Khodorkovsky)가 재정 지원하는 조사보도 기관으로, 이번 문건은 지난 2월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시사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는 지난 18일(현지시각) 이 문건을 분석하며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 세르게이 키리옌코(Sergei Kiriyenko)의 측근 소그룹에 보고된 자료로, 전쟁을 유리한 성과 없이 끝낸 뒤 이를 어떻게 국민에게 납득시킬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건의 핵심 논리는 "우리는 서방을 굴복시켰다"는 메시지로 집약된다. 구체적 선전 방향으로는 △돈바스(Donbas) 점령지와 크림반도(Crimea)로의 육로 확보를 '영토·자원·인구 확대'의 성과로 부각하고, △귀환 참전용사와 제재를 뚫고 성장한 기업 사례를 언론에 집중보도하며, △핵심 정치 구호인 "푸틴이 서방 제국주의를 물리쳤다"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안이 담겼다.

노바야 가제타 유럽판(Novaya Gazeta Europe)도 같은 날 보도에서 "이 문건은 전쟁 지속이 전면 동원령과 전시 경제 전환을 요구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자원 고갈, 인구구조 위기, 드론 공격의 내륙 확산을 핵심 리스크로 열거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펙테이터는 "문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쟁의 처참한 결과와 성과 부재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대목"이라며 "'멈춰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소제목이 그대로 들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키리옌코는 이념가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 문건이 유출된 것 자체가 크렘린 내부의 '종전파'가 여론을 유도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뉴보이스 오브 우크라이나(New Voice of Ukraine)는 18일(현지시각) 영국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를 인용해 "푸틴은 전쟁 종결 계획이 없으며, 측근들도 그를 교체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단이 없다"고 보도했다.

JP모건 "핀란드 모델이 기본 시나리오"… 영토 20% 상실 가능


JP모건 체이스의 지정학 분석 기구인 JP모건 지정학 센터(JPMorganChase Center for Geopolitics)는 이달 중순 발간한 보고서 '우크라이나 엔드게임: 불완전한 평화로 가는 길(Ukraine Endgame: The Path to an Imperfect Peace)'에서 전쟁 결말 시나리오 네 가지를 제시하고, 그중 '핀란드식 시나리오'에 50%의 확률을 부여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통해 영토의 약 20%를 러시아에 넘기되 주권과 민주주의 제도, 서방 통합 노선을 유지한다. 이는 소련·핀란드 전쟁(1939~1940년) 이후 핀란드가 국토의 약 10%를 소련에 할양하면서도 독립과 시장경제, 친서방 노선을 지킨 역사적 선례를 본떴다.
보고서는 "현재의 전선이 2년 넘게 큰 변화 없이 고착된 소모전 양상"이라며 "현 상태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려면 118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밝혔다. JP모건은 올해 안에 협상 타결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열어뒀다.

나머지 시나리오로는 친러 성향으로의 전환을 내포하는 '조지아식 시나리오'(30%), 군사 지원 속 전선 동결을 전제로 한 '이스라엘식 시나리오'(10%), '한국식 시나리오'와 '벨라루스식 시나리오'가 각각 5%로 분류됐다.

보고서는 또 이란 전쟁이 서방의 무기 재고를 줄이고 국제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려 러시아의 석유·가스 수입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주요 변수로 꼽았다.

'종전 후 나토 공격' 우려… 미국도 발트 3국 재배치 경고


크렘린 문건이 종전 준비를 시사하는 한편, 서방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쟁 이후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쪽 측면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경계론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외교 안보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이달 15일(현지시각) 독일 안보 전문가의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우크라이나 휴전 이후 러시아가 발트 3국 일부를 신속하게 점령하고 핵 위협으로 NATO의 반격을 억지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적 위협으로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벨퍼 센터(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는 지난 2월(현지시각) 발간한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2~3년 안에 발트 3국을 상대로 한 제한적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발트 3국 안보 당국의 평가를 소개했다.

라디오 자유유럽(Radio Free Europe/RFE/RL)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NATO 동부 측면으로 병력을 재배치할 가능성이 높다"며 발트 3국에 대한 군사적·혼합전 압박 강화를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리는 러시아가 이미 발트 지역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과 사보타주 등 혼합전을 구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뮌헨 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가 올해 2월(현지시각) 발간한 보고서는 "일부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휴전 후 2년 안에 발트해 지역에서의 지역 전쟁 태세를 갖출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아울러 러시아 2025년 연방 예산에서 안보·국방비 비중이 전체의 40%,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8%에 달한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이번에 유출된 크렘린 내부 문건은 러시아가 '완전한 승리' 없이도 전쟁을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선전 기계로서 러시아 정치 체제의 민낯을 드러내는 희귀한 1차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JP모건이 제시한 핀란드식 시나리오와 함께, 이 문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가 '누가 이겼는가'보다 '누가 어떻게 이겼다고 말하는가'를 놓고 결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