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해 한국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에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만나 “절대 당신을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이 지적했다.
현대차 그룹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에만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 걸쳐 모두 105억 달러(약 15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말은 허언이 됐고, 이에 한국인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새로 뽑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현대차 등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중간 선거 이전에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대체적 전망이다.
미국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3690억 달러(약 531조 원)를 투입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발효했다. 이 법에는 전기차 확대를 위해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되 그 대상을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자동차로 제한했다. 현대와 기아차는 모두 전기차를 한국에서 생산하기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에너지부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2022∼2023년형 북미 조립 전기차 모델 31개를 발표했고, 현대·기아차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추진하는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의체(칩 4)에 참여키로 하는 등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나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이에 맞는 대우를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WSJ이 전했다.
한국은 올해 상반기에 전기차 배터리 업계를 중심으로 미국에 3만 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미국에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든 국가라고 이 신문이 강조했다. 이는 베트남 2만 2500개, 일본 1만 4349개, 캐나다 1만 3671개보다 많은 것이다.
WSJ은 바이든 정부가 해외 동맹국들과 추진하는 ‘경제 안보 동맹’과 국내에서 추진 중인 ‘미국 우선주의’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웬디 커틀러 전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WSJ에 “미국이 적대국들을 견제하면서 공급망을 동맹국들과 연결하고, 미국 내에는 더 많은 제조업을 끌어오려는 조처를 모색하고 있으나 아직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화가 나고 실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