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경마시행 독점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온라인 마권(馬券) 발매(온라인 베팅)을 허용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은 코로나19에도 끄떡 없이 오히려 경마매출이 늘어 세계 말산업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경마 시행과 국내 말산업 육성을 전담하고 있는 한국마사회는 온택트(On-tact, 비대면 연결) 시대로의 대전환을 맞아 온라인 기반의 경마 시행과 발매 등 말산업 제 분야에서 디지털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언택트(비대면) 경마 이용환경으로 전환을 통한 말산업 활성화 대책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말산업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마사회 오순민 건전화본부장과 비대면(서면) 인터뷰를 갖고, 한국경마와 말산업에 가장 시급한 현안과 마사회 중장기 계획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코로나19로 마권 발매를 통한 정상적인 경마 시행이 5개월 넘게 중단되고 있는데, 경마 중단에 따른 한국마사회와 말산업계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마사회는 지난 2월 23일부터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경마를 잠정 중단했다. 경마가 중단된다는 것은 경마팬에게도 아쉬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경마상금이 지급되지 않으므로 경기에 참여하는 경마 관계자에게는 당장의 수입원이 사라지고, 더 나아가 말산업을 움직이는 '혈액'이 공급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사회는 경마 관계자들을 위한 200억 원의 안정자금 무이자 대여 등을 지원하며 발등의 불을 꺼 왔지만, 경마 중단이 4개월째 넘어가면서 이마저도 한계 상황에 이르자 말산업 기반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유 재원을 활용해 지난 6월 19일부터 '무(無)관중 경마'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잠시나마 말산업은 숨통이 틔었지만, 마사회는 유래 없는 막대한 적자가 예정돼 '무관중 경마'의 지속 여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현재 코로나19에 따른 말산업 피해액은 5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마사회의 매출 손실도 4조 원에 이르며, 말 구매수요의 하락으로 말 생산농가는 극심한 경영난에 처해 있고, 경주마 관계자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경마공원과 장외발매소에 입점한 29개 식당, 65개 편의점도 현재까지 117억 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마정보 제공업체들의 수입도 전무한 상황이다.
마사회가 매년 납부하던 1조 5000억 원 규모의 세금도 올 상반기에만 7000억 원이 감소하고, 마권 발매가 안된다면 연말까지 최대 1조 원 이상 급감할 전망이다. 당기순손실로 1000억 원대의 축산발전기금도 납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국내 말산업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마사회는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비해 경영 정상화와 동시에 말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들을 검토하고 있다.”
위기 속에서 경마 정상화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방안이 있다면.
“먼저 철저한 방역을 전제로 '유(有)관중 경마'를 시행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온택트 시대로 대전환에 걸맞는 경마 시행과 마권 발매 등 각 분야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언택트 경마 이용환경 조성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경마를 중단한 기간 동안 일본과 홍콩 등 해외 경쟁국들은 온라인 발매에 기반한 무관중 경마를 차질 없이 진행,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면서 동시에 말산업 피해도 최소화했다. 특히, 일본은 상반기 경마 매출이 코로나19에도 오히려 지난해보다 1.5% 증가했고고, 말 가격도 상승해 세계 말산업에 주도권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마도 오프라인에 집중된 매출 구조를 온라인으로 분산해 말산업의 지속성을 높이고 변화된 트렌드에 대응해야 할 때다.
마사회가 추진하려는 온라인 마권 발매는 금융기관 수준의 철저한 실명기반으로 운영되며, 시스템에서도 구매액을 제한해 과몰입을 원천차단할 수 있고, 온라인에서 성행 중인 불법경마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양성화할 있는 이점을 가진다. 아울러 장외발매소 이용수요를 흡수함으로써 '장외발매소=도박시설'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해소시키는 부가적 효과들을 기대할 수 있다.
이밖에 온라인 발매 도입과 연계해 많은 관중의 운집을 막을 수 있도록 복권방과 같은 비체류 방식의 초소형 발매소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마산업의 국민신뢰 회복, 경마 선진국 진입, 말산업 발전 등 한국마사회의 중장기 플랜을 소개해 달라.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마는 양과 질 모두 큰 성장을 이뤘다. 경마 매출은 세계 7위 규모로 커져 한국을 '경마산업의 G7'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성장에 맞춰 경마제도도 국제기준에 맞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예선-본선-결선 방식을 도입하는 등 프로 스포츠의 매력을 더해 가고 있다.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더욱 강해진 한국 경주마들이 세계 유수의 두바이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하고, '경마 올림픽'이라 불리는 미국 브리더스컵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높아진 한국 경마의 국제 위상을 바탕으로 해외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이미 14개국에 연간 760억 원의 경주 실황을 수출했고, 올해에는 정부의 신남방·북방정책 추진에 힘입어 신흥국인 베트남, 카자흐스탄의 경마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마사회뿐 아니라 경마시행 장비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활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근 완공된 전북 장수목장에서 문을 연 실내 언덕주로처럼 국산 명마를 배출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을 통해 국산마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말 생산농가의 소득 증대는 물론 현재 3조 4000억 원인 국내 말산업 시장 규모를 4조 원으로, 2만 4000개 일자리를 3만 개로 늘리는 등 국가경제 기여도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현장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 방역직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익 힐링승마처럼 한국마사회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통한 사회공헌사업을 확대하고, 퇴역 경주마의 체계적인 승용마 전환 등 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
특히, 오는 2022년 한국 경마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마사회는 경마를 스포츠이자 산업으로서 가치를 확장시키고, 사회공익에 기여함으로써 국민 신뢰 회복과 위기 극복을 이뤄 '말산업 강국'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오영훈·김승남 의원 주최 ‘경마산업 정상화를 위한 긴급좌담회’에서 제안된 ‘환급률 단계적 인상’, ‘국산경주마 우대 경주 시행’ 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마산업 정상화 긴급좌담회는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 유관단체, 경마팬, 마사회가 모여 경마산업의 위기상황을 공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경마산업 관계자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내어줬다.
우리나라의 경마 환급률은 현재 73%로, 영국 92%, 호주 88% 등 경마선진국과 비교해 낮다. 불법경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높은 환급률로 고객을 유인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합법경마의 상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환급률 인상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마사회는 경마 시행을 통해 국가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므로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또한 좌담회에 참석한 생산농가에서 건의했던 국산마 우대도 경매활성화, 국산마 상금 확대 편성 등 마사회가 지속해 추진하고 있는 정책으로 변화된 경마 환경과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국내 말산업의 위기 극복과 지속 성장을 위해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코로나19에 따른 경마 중단은 한국마사회의 경영 위기이기도 하지만 연 매출 3조 4000억 원, 전체 2만 4000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말산업 전체의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현재의 상황과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응해 말산업의 '딥 체인지(Deep Change, 근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기반으로의 대전환을 꾀하는 한편, 온택트 콘텐츠인 경주실황 수출사업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경마의 산업 가치를 키우겠다.
현재 매우 어려운 시기이지만 한국마사회 장학관, 국민드림마차처럼 국민이 체감할 수 있고, 사회공익 승마처럼 차별화된 사회공헌사업을 꾸준히 전개하면서 사상초유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겠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