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미지 확대보기숫자에는 힘이 있다. 막연한 위기의식을 정책 언어로 바꾸고, 전략적 판단에 근거를 부여한다. 국가에너지안보지수(NESI)를 설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를 '느끼는' 시대는 끝내고, '측정하고 설계하는' 시대를 열기 위해서였다.
NESI는 Energy Security = f(Flow, Route, Control)이라는 공식을 정량화한 지수다. 에너지는 이동하는 자산이다. LNG도, 수소도, 암모니아도, 희토류도 모두 흐름으로 작동한다. 에너지 안보 지수도 그 흐름의 세 차원-얼마나 안정적으로 흐르는가(Flow), 어떤 경로로 흐르는가(Route), 누가 그 흐름을 통제하는가(Control)-을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기존의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 에너지 트릴레마 지수는 공급 안정성과 다변화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Flow·Route·Control을 직접 변수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NESI는 그 지점을 정면으로 넘어선다.
첫 번째 축은 흐름 안정성(Flow Stability, 가중치 30%)이다.
폐루프 순환율(폐희토자석 재활용률 등), 수소·암모니아 국내 조달 목표 달성률(25% 기준), 실시간 에너지 가용량이 핵심 지표다. 2022년 가스 위기를 겪은 유럽은 비축이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높은 저장률에도 불구하고 공급 흐름의 급격한 변화와 가격 급등이 동시에 발생하며 시스템이 흔들렸다. Stock이 아무리 많아도 Flow가 단절되면 국가는 단기간에 마비된다. 가중치 30%는 그 무게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 축은 경로 안전성(Route Security, 가중치 30%)이다.
호르무즈·말라카·수에즈 등 병목 통과 의존도, 북극항로(NSR) 대체율, 북미·캐나다 에너지 수입 경로 전환 비중이 주요 지표다. 한국 원유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LNG 역시 말라카와 수에즈에 집중되어 있다. 경로 하나가 막히면 대체할 곳이 없는 구조다. 동맹국 기반 항로(Alliance Route) 확대와 북극항로 이용률을 대안 지표로 병기함으로써 경로 다변화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최근 북극항로 물동량은 3,600만 톤을 넘어서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의 시범 항해도 계획되고 있다. Flow와 동일하게 30%를 부여한 것은 흐름과 경로가 에너지 안보의 물리적 기반을 함께 구성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축은 통제 역량(Control Capability, 가중치 25%)이다.
SMR 특허 건수, AI 기반 계통 최적화 기술 수준, 폐희토 재활용 기술이 기술 주권 지표이고,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력이 규범 주권 지표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가르쳐 준 것은 자원 무기화의 본질이 결국 기술과 규범, 그리고 시장 설계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자원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흐름을 설계할 수 있느냐가 진짜 힘이다. 현재 한국의 최대 강점이 바로 이 영역이다(시뮬레이션 75점). 그러나 Flow와 Route라는 물리적 기반 없이 Control만으로는 안보가 성립하지 않는다. 가중치 25%는 이 위계를 구조적으로 표현한 결과다.
네 번째 축은 전략적 다변화(Strategic Diversification, 가중치 15%)다.
공급국 다변화 지수(Shannon-Wiener 지수)와 에너지 믹스의 유연성을 측정한다. 가중치가 가장 낮은 것은 의도적인 설계다. 다변화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흐름이 끊기고 경로가 막히고 통제력이 없으면, 다변화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안보는 무너진다. 15%라는 숫자는 그 판단을 담고 있다.
NESI의 점수 구간은 대학 학점 체계를 차용했다. S(95~100)는 설계국가, A(90~94)는 허브국가, B(80~89)는 연결국가, C(70~79)는 확보국가, D·F(60 미만)는 안보 위기에 처한 국가다. 이 지표는 정책 담당자가 즉각 집행할 수 있는 실전 도구로 의도하였다. 교수가 학점 비율을 조정하듯,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체계의 핵심 강점이다.
2025~2026년 시뮬레이션 결과, 한국의 종합 NESI는 59점이다. D등급과 C등급의 경계, 사실상 경보 단계 직전이다. 항로 안보(Route Security)가 45점으로 가장 낮다.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 70%가 그대로 반영된 숫자다. 통제 역량은 75점으로 유일한 강점이지만, 가중치 구조상 Route의 낮은 점수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지속될 경우, 점수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전의 가능성도 있다. 울산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폐희토자석 재활용으로 폐루프 Flow를 완성하고, 울산항을 북극항로와 북미 에너지 수입의 복합 거점으로 전환하며, SMR과 수소로 Control을 강화한다면 NESI는 76점(B등급)으로 급상승한다. "울산은 한국 에너지 전략의 축소판"이라는 명제가 수치로 증명되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