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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물가·정부 차입 1년 만에 최고…예산안 발표 앞두고 비상

9월 물가상승률 3.5%·정부 차입액 245억파운드…에너지 가격 급등 직격탄
국가채무 사상 첫 3조파운드 돌파…재정준칙·감세 약속 사이 힐리 재무부 장관 압박
지난 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차량에 경유를 넣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차량에 경유를 넣고 있다. 사진=로이터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정부 차입 규모가 나란히 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경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중동과 유럽의 전쟁으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정부의 이자 부담까지 늘어나면서 오는 28일(이하 현지시각) 첫 예산안을 발표하는 존 힐리 영국 재무부 장관의 재정 운용에 부담이 커졌다.

영국의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5%로 8월의 3.1%보다 0.4%포인트 높아졌다고 BBC가 21일 보도했다.

영국 통계청(ONS)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날 발표된 정부 재정 통계에서도 악화된 흐름이 확인됐다.

영국 정부의 9월 공공부문 순차입액은 약 245억파운드(약 43조4700억원)로 1년 전보다 18억파운드(약 3조1900억원) 증가했다.

올해 회계연도 시작 이후 누적 정부 차입액도 영국 예산책임청(OBR)이 제시한 공식 전망치를 약 60억파운드(약 10조6500억원) 웃돌았다.

특히 영국의 전체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3조파운드(약 5323조원)를 넘어섰다.

물가상승과 정부 차입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노동당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가계와 기업을 지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휘발유·경유 가격 급등…중동·유럽 전쟁 영향


영국의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린 주요 요인은 자동차 연료 가격이다.

ONS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휘발유 가격은 2022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휘발유 평균 가격은 8월보다 리터당 8.2펜스 상승한 169.5펜스(약 3007원)에 달했다.

경유 가격도 리터당 192.5펜스(약 3415원)까지 치솟았다.

자동차 연료 가격은 통계가 집계된 기간 전반에 걸쳐 29.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중동과 유럽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공급 차질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세계 원유 공급의 주요 통로가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면서 세계 석유 정제 능력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국제 원유와 석유제품 공급이 위축되면서 영국 소비자들의 연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랜트 피츠너 ON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9월의 두드러진 물가 상승으로 영국의 인플레이션이 거의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료비 외에도 항공료와 컴퓨터 게임, 공연 등 현장 행사 관련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정부 차입 245억파운드…국가채무 3조파운드 첫 돌파


물가상승은 영국 정부의 재정에도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ONS에 따르면 9월 정부 차입액은 약 245억파운드로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과 OBR의 공식 전망치를 모두 웃돌았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물가에 연동된 국채의 이자 지급 부담이 늘어난 점도 정부 차입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 정부의 올해 회계연도 누적 차입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줄었지만 공식 재정 전망과 비교하면 약 60억파운드 초과한 상태다.

국가채무 총액 역시 처음으로 3조파운드를 넘어섰다.

다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년 전보다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정부가 재정준칙 준수 여부를 판단할 때 활용하는 주요 지표다.

영국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설정한 재정준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물가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는 예산 편성의 여유를 줄이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루스 그레고리 영국 담당 부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정부 차입 통계가 예산안 발표를 앞둔 영국 재정의 암울한 상황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그는 9월 기준 차입액이 시장 예상뿐 아니라 OBR의 전망도 웃돌았다고 지적했다.

◇28일 첫 예산안 발표…주요 세금 인상 배제 약속


힐리 재무부 장관은 오는 28일 첫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노동당이 약속한 소득세와 국민보험료, 부가가치세 등 3대 주요 세금의 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하면서 정부의 재정준칙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높은 물가상승률과 정부 차입 증가로 이러한 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힐리 장관은 중동과 유럽의 분쟁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영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주 영국 정부의 재정규율 준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근 정부가 북해 잭도 가스전의 추가 가스 생산을 승인한 사실도 언급했다.

힐리 장관은 28일 예산안에서 재정준칙을 준수하면서 전국 각 지역의 성장을 촉진하고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인 보수당은 물가상승과 정부 차입 증가가 노동당 정부의 경제 운용 실패를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앤드루 그리피스 보수당 예비내각 재무부 장관은 힐리 장관이 재정적자를 줄이고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높이는 규제와 탄소중립 관련 비용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당은 세금과 복지 지출, 불필요한 정부 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연금·복지급여 인상에도 영향…재정 부담 지속


이번 9월 소비자물가 통계는 내년 4월 영국의 연금과 복지급여 인상률을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영국의 국가연금은 이른바 '트리플 록' 제도에 따라 물가상승률, 임금상승률, 2.5%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준으로 인상된다.

이에 따라 내년 국가연금은 올해 5~7월 평균 임금상승률을 반영해 3.9%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독립수당(PIP)과 간병인수당 등 일부 복지급여는 법률에 따라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4월 인상된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질수록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복지 지출도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레고리 이코노미스트는 힐리 장관이 28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순효과가 크지 않은 신중한 예산안을 발표하고 가장 어려운 재정적 결정은 내년으로 미룰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과 유럽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물가 안정과 재정건전성 회복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영국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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