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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호랑이 오명 벗었다"… 中, 유럽을 '진짜 전략적 맞수'로 인정

400여 명 中 학자·분석가 대상 연구… "EU의 강경 노선, 미국의 꼭두각시 아닌 독자적 전략으로 재평가"
中 하이브리드 수출 쿼터 양보에도 폰데어라이엔 "구조적 불균형 해결 안 돼"… '연대 메커니즘' 연내 구축
글로벌 사우스 연대 구축 우려하는 베이징… 4월 佛 대선 전 EU 단결력 유지·법제화가 핵심 관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대중 무역 불균형 해소와 단일시장 보호 조치 강화를 역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대중 무역 불균형 해소와 단일시장 보호 조치 강화를 역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그동안 유럽연합(EU)을 "말만 앞서고 내부가 분열된 허약한 집단"으로 깎아내리던 중국의 전략적 시각에 근본적인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기차와 희토류 등을 둘러싼 격렬한 통상 마찰 속에서 브뤼셀이 전례 없는 단결력과 강력한 무역 방어 수단을 실제로 휘두르자, 중국 정책 당국과 기득권 싱크탱크들이 유럽을 미국의 '단순 추종자'가 아닌 실질적인 협상력과 보복 역량을 갖춘 '독자적 전략 행위자(Strategic Actor)'로 진지하게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21일(현지시각) 영국 기반 중국 정책 연구기관 '시니피케이션(Sinification)'의 제이콥 마델(Jacob Mardell) 수석 분석가가 기고한 분석에 따르면, 유럽 내 대중 전문가들은 최근 브뤼셀이 베이징을 상대로 역사상 처음으로 실질적인 영향력(레버리지)을 확보했다는 낙관적 기류에 차 있다.

하이브리드차 양보에도 흔들리지 않은 EU의 결의


앞서 지난 10월 8~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EU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중국은 향후 4년간 유럽향 하이브리드 자동차 출하량을 자체 제한하겠다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당시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의 유화책이 유럽 내부의 단결과 강경 기조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지난 16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이사회 정상회의에서 유럽 지도부의 단일 대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브리드 협정만으로는 중국과 유럽 간의 심각한 구조적 무역 불균형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동시에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단일 시장 접근 제한 장치를 신속히 가동하고, 중국의 표적 무역 보복에 노출된 회원국을 전 회원국이 공동 지원하는 '연대 메커니즘(Solidarity Mechanism)'을 연말까지 공식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中 분석가 400명 조사: "EU, 독자적 주권 지닌 강경 행위자" 인정


이 같은 유럽의 강경 노선은 중국 내부의 계산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시니피케이션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이 중국 내 정책 입안자와 학자 약 400명의 기고와 논문을 공동 분석한 결과, 중국 엘리트층 사이에서 브뤼셀을 무게감 있는 전략적 상대로 인정하는 뚜렷한 전환 흐름이 확인됐다.

과거 중국은 유럽의 반덤핑 관세와 보조금 조사를 "워싱턴의 지시를 따르는 꼭두각시 행태"로 치부했으나, 2025년 말 이후, 특히 2026년 5월 시진핑-트럼프 정상회담 이후로는 유럽의 강경 노선을 독자적 경제안보 수호 차원의 독립적 행보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중국 내 제조업 과잉 생산과 국내 소비 위축이라는 '내부 불균형'이 해외 통상 마찰의 근본 원인임을 인정하고, 글로벌 무역 재조정(리밸런싱)을 위한 중국 측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공식 선전 매체의 호전적인 담론과 달리, 중국 내부 정책 제언의 주류는 유럽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자제와 극히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무역전쟁 이겨도 연합 전선 형성되면 치명적"… 중국의 고심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유럽이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국)'와 연대해 거대한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는 시나리오다.

중국 통상 분석가들은 개별 무역전쟁에서는 중국이 EU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나, 만약 유럽의 규제 조치가 중남미, 동남아 등 신흥국으로 확산되어 중국산 저가 공산품에 대한 글로벌 저항 전선이 형성될 경우, 수출 주도형 경제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과 부산 회담을 거쳐 "건설적 전략적 안정"을 합의한 베이징으로서는, 내수 경기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 위기라는 내부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소비시장인 유럽과 불필요한 전면 충돌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결국, 중국이 제시한 하이브리드차 수출 쿼터 양보 역시 충돌을 피하고 시간을 벌기 위한 전형적인 위험 회피성 타협책으로 분석된다.

4월 프랑스 대선 전 입법 완료해야… "단결을 제도로 굳혀라"

전문가들은 베이징이 유럽을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EU가 구조적 무역 방어망을 영구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한다.

시간은 점차 중국의 편으로 기울 수 있다.

2027년 4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유럽의 대중 단일 대오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고, 미·중 무역 휴전이 추가 연장될 경우 베이징이 다시 유럽을 각개격파할 여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이콥 마델 분석가는 "중국 지도부는 오랫동안 유럽의 반강압 수단(Anti-coercion Instrument) 등 무역 무기들을 '실행력이 결여된 공허한 엄포'로 여겨왔으나, 최근 유럽의 단호한 태도가 그 인식을 바꾸고 있다"며 "중국이 물러서고 있는 지금, 프랑스 대선 이전에 경제안보 수단을 완벽히 법제화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유럽의 협상력을 영구히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언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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