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V 독점기업 수장 FT 인터뷰…“AI 영향 10~15년 지속, 지금은 빙산의 일각”
이미지 확대보기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에 대한 과도한 기술 수출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해 강력한 경쟁자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케 CEO는 인공지능(AI)이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앞으로 10~15년에 걸쳐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 나타나는 변화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각) 푸케 CEO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ASML의 EUV 독점과 AI 반도체 수요, 대중국 수출통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도했다.
ASML은 첨단 AI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공급하는 기업이다.
푸케 CEO는 FT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처음에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설계에 주목했고 이어 이를 생산하는 TSMC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결국 TSMC가 어떻게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지를 살펴보면서 ASML의 존재를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갑자기 모두가 그 EUV 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단 하나, ASML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ASML 주가는 지난 1년간 88% 뛰었고 시가총액은 5910억유로(약 917조원)에 이른다.
◇10만개 넘는 부품…“돈만으로 생산 못 늘려”
ASML이 EUV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구축한 배경에는 장비 자체의 높은 기술적 복잡성과 방대한 공급망이 있다.
FT에 따르면 EUV 장비 한 대의 가격은 약 4억달러(약 5448억원)에 달한다. 2층 버스만 한 크기의 장비 안에서는 초당 6만개의 녹은 주석 방울을 쏘고 거울과 레이저, 단파장의 빛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를 새긴다.
EUV 장비 한 대에는 10만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간다. 이를 공급하는 주요 협력사는 200곳이며 전체 공급망에는 약 2000개 기업이 참여한다.
광학장비는 독일 자이스, 레이저는 트럼프, 메카트로닉스는 네덜란드 VDL 등 각 분야 전문업체가 공급한다.
푸케 CEO는 “ASML이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하려 했다면 EUV 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복잡한 공급망은 경쟁업체가 ASML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게 만드는 진입장벽인 동시에 ASML이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푸케 CEO는 수십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하는 것만으로 생산능력을 20% 늘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현실은 공급망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고객사들도 하나의 공급업체에만 의존하는 것이 괜찮은지를 고민하지만 새로운 경쟁업체가 ASML 수준에 도달하려면 막대한 학습과 투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푸케 CEO는 ASML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도한 수출통제, 중국 기술개발 더 자극”
ASML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변수 가운데 하나는 대중국 수출통제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를 제한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 등에 압력을 가해 ASML의 EUV 장비 중국 수출을 막고 있다.
푸케 CEO는 국가안보 등 정당한 이유로 특정 기술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규제가 지나치면 당초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도하게 제한하면 절박함을 만들어낸다”며 “절박함은 사람들이 자체 기술 개발을 가속하고 언젠가는 강력한 경쟁자가 되도록 만드는 엄청난 동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화웨이를 비롯한 기업들이 기존 세대인 심자외선(DUV) 노광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푸케 CEO는 이런 경고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을 향한 메시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출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네덜란드 정부라며 자신의 발언은 네덜란드 정부와 EU를 비롯해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ASML은 현재 최첨단 EUV 장비의 중국 수출이 차단되면서 미국 다음으로 큰 AI 시장인 중국에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장비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AI 혁명 10~15년 갈 것…지금은 빙산의 일각”
푸케 CEO는 최근 금융시장에서 제기되는 AI 거품 우려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기술 발전 방향을 훼손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장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AI가 단기간에 끝나는 투자 열풍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푸케 CEO는 “AI가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10~15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빙산의 일각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ASML도 이에 맞춰 앞으로 10~15년 동안 EUV 기술을 계속 발전시킬 계획이다.
반도체 회로를 수직으로 쌓고 빛을 더욱 정밀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광학계 성능을 높이는 등 반도체 미세화를 지속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추진한다.
푸케 CEO는 AI뿐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과 우주기술도 새로운 성장 분야로 꼽았다.
그는 수년 안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정원 관리나 식기세척기 비우기처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주기술에 대해서는 통신과 에너지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푸케 CEO는 ASML이 약 20년에 걸쳐 EUV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한때 회사 자체가 위험에 빠질 정도로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첨단 기술을 실제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면 수많은 기업이 각자 흩어져 경쟁하는 것보다 해당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강한 믿음과 장기간의 집중적인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