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대 1학년 핵심수업서 노트북·태블릿·휴대전화 금지
버클리는 과제 구상부터 편집까지 생성형 AI 사용 원칙적 차단
버클리는 과제 구상부터 편집까지 생성형 AI 사용 원칙적 차단
이미지 확대보기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변호사의 업무를 빠르게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명문 로스쿨들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AI와 전자기기를 내려놓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 실무에서는 AI가 젊은 변호사들이 맡아온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강력한 생산성 도구가 되고 있지만 교육 단계에서부터 편리한 지름길에 의존하면 법률가에게 필요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주요 로스쿨들이 새 학년을 맞아 기초 법률교육에서 생성형 AI와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7일(현지시각) 소개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시카고대 로스쿨은 새 학년도부터 1학년 핵심 수업에서 휴대전화, 태블릿, 노트북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윌리엄 허버드 시카고대 로스쿨 AI위원회 위원장은 “기술을 이용한 지름길이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금지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핵심은 어려운 방식으로 해보는 것”이라며 “그래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AI 대신 직접 논쟁…소크라테스식 교육 지키기
시카고대 로스쿨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오랫동안 법학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온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AI 때문에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교수와 동료 학생들 앞에서 판례와 법원칙을 실시간으로 토론하고 질문에 직접 답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세워야 한다.
허버드 위원장은 AI가 이런 과정에 끼어들 경우 학생이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훈련을 충분히 거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AI 도구의 능력이 빠르게 강해지고 법률업계도 적극적으로 이를 도입하는 지금이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학교가 대응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카고대 로스쿨이 AI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애덤 칠턴 시카고대 로스쿨 학장은 학생들이 결국 AI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교육과정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교의 목표는 학생들이 ‘AI와 함께’, ‘AI 없이’, ‘AI에 관해’ 배우도록 하는 것이라고 칠턴 학장은 밝혔다.
교실 밖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공부할 때, 법률 클리닉이나 AI 자체를 가르치는 수업 등에서는 AI 이용을 허용한다.
즉 AI를 외면하기보다는 기초적인 사고 훈련에서는 AI에 기대지 못하게 하고 이후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까지 가르치겠다는 방식이다.
◇“AI 쓰느냐보다 직접 고민한 시간이 중요”
허버드 위원장은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최근 연구도 언급했다.
AI를 숙제의 지름길로 이용한 학생들에게서 학습 손실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는 연구다.
그는 중요한 것은 AI 사용 여부 자체가 아니라 학생이 학습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직접 투입했느냐라고 설명했다.
법률 분야에서 AI가 만들어내는 역설도 여기에 있다.
실제 직장에서는 같은 일을 적은 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이 AI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효율성이 반드시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버드 위원장은 직장에서는 AI가 “놀라운 생산성 도구”지만 교육에서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오히려 목적과 정반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고과정을 직접 거쳐야 법률가에게 필요한 능력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대는 학부생에게는 더 엄격한 방식도 도입한다.
필수 사회과학 핵심수업에서는 기술 사용을 금지하고 종이로 된 글을 읽는 등 ‘아날로그’ 방식으로 공부하도록 할 예정이다.
제니 트리니타폴리 시카고대 사회과학 대학부 책임자는 학생들에게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버클리는 제출과제에서 AI 사용 사실상 금지
FT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로스쿨은 과제에서 더 강한 제한을 두고 있다.
버클리 로스쿨은 학점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과제를 만들 때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금지 범위도 단순히 AI가 글 전체를 작성하는 경우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디어 구상, 개요 작성, 초안 작성, 수정, 번역, 편집 등 과제 제작 과정 전반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다만 개별 교수에게는 일정한 재량이 허용된다.
어윈 체머린스키 버클리 로스쿨 학장은 “학생이 제출하는 과제가 AI 모델 클로드가 만든 결과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I가 학생 대신 생각하고 글을 쓴다면 우리는 학생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로펌에서는 오히려 “AI가 더 좋은 훈련 상대”
그러나 AI가 젊은 법률가의 성장을 반드시 방해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로펌 메이어브라운의 키엘 보웬 파트너는 경우에 따라 AI가 더 나은 변호사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젊은 변호사는 통상 선배 변호사에게서 경험을 통해 얻은 작은 지혜와 요령을 배우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보웬 파트너는 때로는 AI가 더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까지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험 많은 변호사라도 자신의 경험과 전문 분야에서 형성된 시각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에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관한 부분도 있다”
허버드 위원장은 그럼에도 법률 업무에는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률 실무의 핵심 가운데는 책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관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법률가의 일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편에서 싸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매우 인간적인 업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AI가 이런 인간적 업무를 오히려 강화할 가능성도 인정했다.
AI가 반복적인 일을 대신해 변호사의 시간을 확보해주면 고객에게 전화를 되돌려주는 것처럼 실제 의뢰인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칠턴 학장은 앞으로의 핵심 과제를 AI가 대신할 수 있는 훈련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젊은 법률가들이 어떻게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할 것인가로 봤다.
FT는 법조계가 마주한 문제는 다른 직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AI가 어느 정도까지 인간을 대신하도록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편리함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가 결국 핵심이라는 얘기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