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틱 AI가 바꾼 보험업 생산성 좌우… 손해율·사업비 동시 차단
하드마켓 가격 인상에 기술 결합… 국내 손보사 고도화 나침반
하드마켓 가격 인상에 기술 결합… 국내 손보사 고도화 나침반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 기술을 인수 심사와 보상 처리 중심부에 이식한 미국 대형 손해보험사 트래블러스가 시장 예상을 깨고 기록적인 실적을 올렸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소송 난타전으로 고전하던 전통 보험 산업이 업황 회복 주기에 기술 혁신을 결합해 극적인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크 기업에만 쏠리던 투자 자금이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을 증명한 전통 금융사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배런스가 지난 10일(현지시각) 보도한 자료를 보면 트래블러스의 올해 주가 상승률은 18.5%를 기록했다.
배런스가 같은 날 공개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의 올해 상승률은 9.8%에 머물렀다. 트래블러스가 2026년 7월 주주서한에서 밝힌 연간 정보기술 투자 금액은 15억 달러(약 2조 2500억 원)를 넘어섰다.
기후변화 지옥서 살아남은 비결… 에이전틱 AI의 실증 리포트
2025년 로스앤젤레스 산불로만 이 회사는 17억 달러(약 2조 5557억 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손실을 냈다. 물가 상승에 따른 보상액 증가와 소송 대행 로펌의 난립으로 법률 비용이 급증하는 사회 고물가 현상도 수익성을 옥죄었다.
앨런 슈니처 트래블러스 최고경영자는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기술 투자를 전면 확대했다.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손해율 통제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트래블러스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을 사전에 거르는 인수 심사 단계와 고액 사기 의심 건을 실시간 검출하는 영역에 인공지능을 전면 배치했다. 기술 기반 위험 관리가 작동하면서 총손해율은 전년 대비 2.1%포인트 개선됐다. 고위험 계약 비중 축소와 정밀한 요율 산정이 실증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정해진 시나리오대로만 움직이는 기존 챗봇이나 단순 반복 업무 자동화와 달리 스스로 청구 서류와 사고 정황을 분석해 지급 여부까지 판단하는 에이전틱 AI를 현장에 심었다. 규제 환경이 까다로운 보험업 특성을 고려해 저위험 표준화 청구 건에 우선 적용하는 리스크 관리 지침을 세웠다.
그 결과 전체 보험금 청구 건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인간 개입 없이 디지털로 자동 처리되는 구조를 확립했다. 고객 역시 자동 가공 과정을 3분의 2 비율로 수용하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가격 인상 사이클에 구조 혁신 결합… 합산비율 85.3%의 비밀
효과는 숫자로 드러났다. 보험사 운영 효율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합산비율(손해율과 사업비율의 합)은 손해보험업계 최고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낮을수록 우수하며 100% 미만이면 이익을 냈다는 의미다.
현재 트래블러스의 합산비율은 85.3%다. 보험료 1달러를 받아 마케팅과 보험금 지급에 85.3센트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이익으로 남겼다는 뜻이다.
최근 실적 호전이 모두 인공지능 덕분만은 아니다. 보험료가 오르고 인수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업황 주기, 이른바 하드 마켓 진입에 따른 보수적 재보험 가격 책정 수혜가 기초 체력을 받쳤다.
다만 트래블러스는 업황 개선 분에 만족하지 않고 기술을 융합해 보상 가공 시간을 크게 단축하며 추가 이익을 확보했다. 인공지능 고도화로 사업 비율은 2016년 31.5%에서 2025년 28.5%로 3%포인트 낮아졌다. 사업비율을 1%포인트 줄일 때마다 세전 이익은 해마다 4억 4000만 달러(약 6614억 원)씩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가격 인상이라는 단기 주기 호재에 인공지능을 통한 구조 비용 차단 혁신이 맞물린 결과다. 지난 5년 동안 주가 상승률은 126%에 이르러 지수 성장률인 75%를 가볍게 제쳤다.
PBR 2.5배 가치평가 논쟁… ROE 상승이 프리미엄 정당화하나
월가 금융투자업계 평가는 엇갈린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은 가치평가 부담을 이유로 투자 의견을 시장수익률 하회로 유지하며 목표주가를 276달러(약 41만 4900원)로 제시했다. 현재 주가인 333달러(약 50만 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만 동종 기업과 비교해 주당순이익(EPS) 상향 조정 폭과 주가 상승 동력은 가장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레이먼드 제임스는 투자 의견 강력 매수를 유지하며 목표주가를 375달러(약 56만 3700원)에서 400달러(약 60만 1300원)로 올렸다. 이 회사가 제시한 2026년 말 장부가치 추정치는 161달러(약 24만 2000원)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5배 수준이다. S&P500 보험 업종 평균 주가순자산비율인 1.9배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전통 금융업 평가 틀인 주가순자산비율과 자기자본이익률 관계로 보면 주가순자산비율 2.5배는 암묵적으로 높은 자기자본이익률 유지를 전제로 한다. 월가 시장 추정치 기준 트래블러스의 현재 자기자본이익률은 19.2%에 이른다.
레이먼드 제임스는 인공지능 효율화가 이 회사의 구조 자기자본이익률 레벨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업종 평균을 웃도는 프리미엄 가치평가가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국내 금융권 시사점… 디지털 전환 속도 내는 손보사 주목
미국 대형 손보사의 성공 사례는 국내 금융권에도 뚜렷한 나침반을 제시한다. 국내 금융 생태계에서는 복잡한 약관 분석과 대면 소송 비중이 높은 은행이나 카드보다 데이터 규격화가 잘 이뤄진 손해보험업권이 인공지능 투자 효율을 가장 먼저 뽑아낼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등 국내 대형 손보사들은 사기 방지 시스템 고도화와 장기보험금 자동 심사 프로세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금융보안 규제와 인공지능 자동 승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책임 소재 법제화 문제가 남아 있어 미국식 에이전틱 AI 도입까지는 기술 검증과 규제 완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금융사 실적을 실제로 바꾸는 단계에 진입했다. 앞으로 투자자가 점검해야 할 요소는 명확하다. 대형 자연재해 발생 주기와 재보험 분산 비율을 상시 확인해야 한다.
에이전틱 AI 전면 도입 이후 장기 손해율 추이도 핵심 점검 대상이다. 인공지능 심사가 도덕적 해이나 신종 사기 기법을 정밀하게 걸러내지 못하면 장기 손해율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률 시장 소송 비용 증가율도 변수다. 결국 전통 금융업 가치평가 재평가의 본질은 인공지능을 통해 달성한 고변동성 손해율 통제력과 고마진 자기자본이익률의 지속 가능성에 달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