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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EU 자동차 관세 25%로 전격 인상… '턴베리 합의' 1년 만에 파기

EU산 차량 관세 15%→25% 강행… 독일 완성차 메르세데스·BMW·폭스바겐 집중 타격
미·EU 무역 전쟁 재점화… 연간 57조 원 대미 자동차 수출 급감 위기
수출 선적을 기다리는 독일 자동차.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수출 선적을 기다리는 독일 자동차.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가 대서양을 넘어 다시 한번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프랑스24(FRANCE 24)와 미국 CNBC·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자동차와 트럭에 부과하는 관세를 현행 15%에서 25%로 끌어올리겠다고 전격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EU가 완전히 합의한 무역 협상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며 "다음 주 미국으로 들어오는 EU산 승용차와 트럭에 부과하는 관세를 25%로 올린다"고 밝혔다.

미국과 EU가 지난해 7월 스코틀랜드 턴베리(Turnberry) 골프장에서 맺은 이른바 '턴베리 합의'가 1년도 채 안 돼 사실상 파기 수순을 밟게 됐다.

합의 어디서 어긋났나… 연방대법원 판결이 불씨


트럼프 행정부와 EU는 지난해 여름 양측 간 대부분의 상품 관세를 15%로 고정하는 무역 틀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EU산 자동차 관세는 다른 주요 교역 상대국에 부과된 25%보다 낮은 15%로 묶였다. 그러나 균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올해 2월 20일 6대 3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관세는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합의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이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1974년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0% '임시 수입 부과금'을 신설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튿날 이를 다시 15%로 올렸다. 이에 따라 EU 측에서 적용되는 관세 상한선은 기존 합의의 15%에서 10%로 일시 낮아졌다가 다시 15%로 올라오는 복잡한 경로를 거쳤다.

여기에 EU 의회의 입법 지연이 겹쳤다. 유럽 측 관계자는 EU 의회가 미국산 상품 무관세 조항을 담은 규정을 통과시켜야 하는 상황이며, 이 절차가 유럽 내 정치 갈등과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마찰로 수차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이에 대해 "표준 입법 절차에 따라 합의를 이행 중이며 미국 측에 이를 지속적으로 알려왔다"며 반박했다.

EU 의회의 번트 랑게(Bernd Lange) 무역위원장도 같은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이 거듭 약속을 어기고 있다"며 "25% 관세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 통상정책연구센터의 스콧 린시컴(Scott Lincicome) 선임연구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이런 무역 합의들이 결국 악수와 눈짓, 트럼프가 화내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에 기대는 허상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짚었다.

그는 자신이 파악하기로 유럽은 기본적으로 합의 틀을 지키고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독일 직격탄… EU 대미 자동차 수출 389억 유로 흔들린다


이번 관세 인상의 충격은 아우디(Audi)·포르쉐(Porsche)·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BMW 등 고급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에 가장 크게 집중된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차량 가운데 유럽 공장 비중이 특히 높은 메르세데스, BMW, 폭스바겐이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분석된다.

수치로 보면 충격의 규모가 더 선명해진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와 유로스타트(Eurostat)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EU의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는 75만 7654대, 금액 기준으로는 389억 유로(약 67조 2464억 원)에 이른다.

관세가 10%포인트 추가 오를 경우 단순 산술로도 연간 약 38억 9000만 유로(약 6조 7246억 원)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EU는 이번 합의를 통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월 5억~6억 유로(약 8643억~1조 372억 원)를 절감할 것으로 기대해 왔다. 이 기대가 무산되는 셈이다.

EU 이사회(European Council)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과 EU 간 상품·서비스 교역 규모는 1조 6,800억 유로(약 2904조 원)로 하루 평균 46억 유로(약 7조 9520억 원)가 오간다.

독일 자동차산업협회(VDA) 회장 힐데가르트 뮬러(Hildegard Mueller)는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그 비용은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도 전가될 것"이라며 미국과 EU 모두 기존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ACEA의 2025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21.4% 급감했으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부과한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분석된다.

관세가 25%까지 치솟을 경우 가격 경쟁력 추가 악화와 수출 물량 재차 급감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국가 안보' 명분 232조 카드… 미·EU 무역 전쟁 전선 확산


이번 조치의 법적 근거는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232조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조항을 활용해 관세를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232조는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한 수입품에 독자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232조를 근거로 수입 자동차 전반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이 세율은 현재도 유효하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IEEPA 기반 비상 관세 권한을 제한했음에도, 232조에 기반한 자동차 관세는 대통령의 강력한 수단으로 살아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갈등이 자동차에 그치지 않고 와인·주류 등 다른 품목으로 번질 가능성을 경고한다. 관세 전쟁이 재점화된 시점도 불안 요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고, 세계 경제는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부담이라는 국내 정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내 성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운영을 긍정 평가하는 비율은 30%에 그쳤다는 AP-NORC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번 사태는 한국 자동차 업계가 처한 대외 통상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 현재 대미 수출 자동차에 15% 관세를 적용받고 있으며, EU와 미국 간 갈등이 격화될 경우 글로벌 자동차 공급망 불확실성이 추가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올해 수출이 275만 대(전년 대비 1.1% 증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보호무역 기조 강화"를 핵심 하방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이 협정에 어긋나는 조치를 시행한다면 모든 대응 수단을 동원해 EU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EU 모두 공식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관세 발효 시점인 오는 둘째 주가 다가오면서, 대서양 양안 무역 갈등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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