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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판 NATO' 비상 계획 현실화…독일 노선 선회가 판 바꿨다

미국 이탈 대비 지휘 체계 유럽화 착수…영·불·독·북유럽·캐나다 결속
마크롱·메르츠, 프랑스 핵우산 독일 확장 논의 개시…NATO 역사적 분기점
2026년 2월 브뤼셀에서 열린 NATO 국방장관 회의. 미국의 이란전 참전 요구와 그린란드 위협으로 동맹의 균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유럽 주요국들은 미국 이탈 시 NATO 기존 구조를 활용해 자체 방위를 유지하는 비상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026년 2월 브뤼셀에서 열린 NATO 국방장관 회의. 미국의 이란전 참전 요구와 그린란드 위협으로 동맹의 균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유럽 주요국들은 미국 이탈 시 NATO 기존 구조를 활용해 자체 방위를 유지하는 비상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위협과 이란전 지원 거부를 이유로 "NATO 탈퇴는 이미 재고 단계를 넘어섰다"고 선언한 지 며칠 만에, 유럽이 조용하지만 전례 없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 시각) 유럽 국가들이 미국 없이도 NATO 기존 구조를 활용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을 비공식 채널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이를 '유럽판 NATO'라고 부른다. 수십 년간 유럽 자주 국방 논의에 제동을 걸어 온 독일이 이 계획에 합류하면서 논의가 실질적 단계로 전환됐다.

독일의 역사적 선회…메르츠가 왜 결단했나


이 계획에서 독일의 참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독일은 그동안 프랑스 주도의 유럽 안보 자립 논의에 지속적으로 저항해 왔다. 유럽이 독자 방위 능력을 키우면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미국산 핵무기를 자국 영토에 유치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미국의 안보 공약 유지가 사활적 문제였다.
메르츠 총리의 생각이 바뀐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메르츠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혼동하고 있으며 NATO 내에서 미국 정책을 이끄는 명확한 가치 기준이 더 이상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동맹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면 위험하다는 판단 아래, 독일이 주도적으로 유럽의 방위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상적으로는 미국이 NATO에 남되 실질적 방위의 무게중심은 유럽이 가져가는 구조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NATO가 대서양을 잇는 가교로 남으려면 더 유럽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Mark Rutte)도 최근 동맹이 "더 유럽 주도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이는 이번에는 미국의 압박이 아니라 유럽 스스로의 주도로 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비공식 만찬에서 군사 계획으로…실질적 과제들


계획은 NATO 안팎의 비공식 회의와 만찬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 폴란드, 북유럽 국가들,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이 구상은 NATO 내 '뜻을 같이하는 동맹 연합'의 형태를 띠고 있다. 스웨덴의 독일 주재 대사 베로니카 완-다니엘손(Veronika Wand-Danielsson)은 "우리는 예방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필요할 때 NATO 내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참여 이후에야 구체적인 군사 문제를 다루는 단계로 전환됐다. NATO 방공·미사일 방어 지휘권을 누가 맡을 것인지, 폴란드와 발트 3국으로의 증원 통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군수 네트워크와 대규모 지역 훈련을 미군 장교 없이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현재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관계자들은 대잠전, 우주·정찰 능력, 공중 급유, 공중 수송 분야에서 유럽이 미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고 인정한다. 독일과 영국이 지난달 스텔스 순항 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은 이러한 격차를 메우려는 새로운 움직임의 사례로 제시된다.

징병제 부활도 논의 대상이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시민 교육, 국가 정체성, 국민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의무 복무제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핀란드는 냉전 이후에도 징병제를 유지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핵 억제의 공백…프랑스 핵우산의 독일 확장 논의 개시


가장 민감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논의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 이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츠 독일 총리는 프랑스 핵 억제력을 독일을 포함한 유럽 다른 국가들에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NATO의 최고 군사 사령관(SACEUR)은 항상 미군 장성이 맡아 왔으며, 미국 측은 이 직책을 넘길 의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만이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핵 우산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NATO 억제력의 창설 원칙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핵 전력이 그 공백을 단기간에 메울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미국의 위성 감시, 미사일 경보 시스템은 어떤 유럽 국가도 현재로서는 대체할 수 없다.
트럼프는 자신의 NATO 탈퇴 언급이 그린란드에서 시작됐다고 직접 인정했다. "그린란드를 원하는데 그들이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좋아, 잘 있어'라고 한 거다." 폴란드 부총리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Radosław Sikorski)는 이 발언을 영상으로 담아 "기록해 둔다(Noted)"는 한마디와 함께 공유했다.

스투브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전화해 유럽의 방위 강화 계획을 직접 설명했다고 밝혔다. "미국 친구들에게 전하는 기본 메시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유럽이 자국 안보와 방위에 더 많은 책임을 질 때가 됐다는 것"이라며, 다만 "빠른 철수가 아니라 관리되고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역 미 해군 제독 제임스 포고(James Foggo)는 "유럽화는 진작 이루어졌어야 했다"면서도 유럽이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더 빠른 투자와 개발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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