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달러 드론이 70억 전차 격파…전통 방산 '플레이북' 송두리째 흔들려
티베리우스·아크 로보틱스, AI 기반 '서비스형 방위산업' 모델로 승부수
티베리우스·아크 로보틱스, AI 기반 '서비스형 방위산업' 모델로 승부수
이미지 확대보기수십 년에 걸친 개발 주기와 천문학적 비용을 특징으로 하는 글로벌 방위산업의 전통적 패러다임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벌어지는 현대전이 고가의 정밀 병기 중심 전략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AI 기반 무인 시스템이 새로운 전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CNBC가 10일(현지 시각) 이 같은 흐름을 이끄는 실리콘밸리 방산 스타트업들을 집중 조명했다.
"400번의 전쟁, 승자는 경제성"…패러다임의 붕괴
과거의 전쟁은 고가 플랫폼과 정밀 타격이 지배했고, 이는 각국이 첨단 기술에 의존하면서 군사력을 소규모 정예화하는 방향으로의 흐름을 만들었다. 영국 공군(RAF) 항공우주전투센터 전 사령관 블라이드 크로퍼드(Blythe Crawford)는 "500달러짜리 드론이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500만 달러(약 70억 원)짜리 전차를 격파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단언했다.
이 '경제성의 전쟁'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패트리엇 대 샤헤드의 구도다. 티베리우스 에어로스페이스(Tiberius Aerospace) 공동 창립자 앤디 베인스(Andy Baynes)는 "400만 달러짜리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로 2만 달러짜리 샤헤드 드론을 계속 요격한다면 결국 경제적으로 패배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역사를 돌아보면 지난 400번의 전쟁에서 승자는 경제성을 장악한 쪽이었다"고 역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이 변화를 가속화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자율 로봇 개발 스타트업 아크 로보틱스(Ark Robotics)의 최고경영자 아치(Achi, 보안상 가명 사용)는 CNBC에 "전쟁 양상은 AI로 통제되는 대량의 저가 시스템이 주도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바뀌었다"며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라 게임 자체의 교체"라고 진단했다.
'설계와 제조의 분리'…실리콘밸리식 방산 혁신
전통적인 방산 대기업(Prime Contractor)들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한 지붕 아래서 수행하는 수직 통합 구조를 유지해 왔다. 베인스는 이를 "1990년대 전자 산업이 고수하다 결국 무너진 방식"에 비유하면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이 구조를 해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 2년 차의 티베리우스 에어로스페이스는 설계와 제조를 완전히 분리하는 AI 기반 플랫폼 '그레일(GRAIL)'을 통해 이 혁신을 구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무기 설계를 개발한 뒤 이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현지 제조사에 공급하는 '서비스형 방위산업(Defense-as-a-Service)' 모델을 표방한다. 베인스는 "설계와 제조의 분리가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고비용 정밀 체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고효율·저비용 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주 티베리우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실전 검증된 방산 기술의 지식재산권(IP)을 그레일 플랫폼을 통해 영국 내 제조사들이 라이선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레일 플랫폼은 NATO 회원국들이 전장에서 증명된 기술에 접근하고, 수년이 아닌 불과 몇 주 만에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보안 마켓플레이스를 지향한다. 이는 기존 방산 조달 과정의 '병목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다.
아크 로보틱스는 한 명의 운용자가 공중·지상·해상을 아우르는 수백 대의 무인 시스템을 동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전장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OTA)로 즉각 반영하는 이른바 '애자일(Agile)' 방식은, 수십 년이 걸리는 기존 방산 업체의 개발 주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치 CEO는 현재 서방 군 대부분이 "이전 세대 전쟁을 위한 준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레일 플랫폼을 통한 영국 내 생산 기반 접근이 자사의 무인 시스템 양산을 효율적으로 앞당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통 방산의 역설적 호황…라인메탈·사브 수주 폭발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도 유럽의 전통 방산 강자들은 오히려 기록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독일 방산 기업 라인메탈(Rheinmetall)의 수주량은 323%, 스웨덴의 사브(Saab)는 284% 각각 급증했다. 라인메탈은 올해 매출이 최대 4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란 전쟁 관련 미국 시장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호황이 지속되려면 전통 방산 기업들도 '저비용 래퍼(Low-cost wrapper)'를 갖춰야 한다고 경고한다. 크로퍼드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같은 고성능 전투기는 여전히 필수적이지만, 이제는 이를 살아남게 해 줄 저비용 보완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의 스톰 섀도 순항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현저히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 것은 저가 드론 군집과 전자전 장비가 러시아 방공망을 압도한 덕분이었다. 크로퍼드는 이를 '하이-로 믹스(High-Low Mix, 고저 혼합 전략)'라고 정의했다.
이 새로운 조류는 오랫동안 방산 투자를 기피해 온 실리콘밸리 벤처 자본의 태도도 바꿔 놓고 있다. 베인스는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사이에 방산에는 손대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고 전하면서 "방산 시장의 투명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크로퍼드는 새로운 방산의 승자 조건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제 경쟁의 승패는 누가 가장 빠르게 혁신하고, 가장 신속하게 규모를 확장하며,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실리콘밸리와 기술 산업이 이미 오래전에 풀어낸 문제들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