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3’ 공법으로 방사능 유출 원천 차단… 구리 캡슐·점토로 이중 봉인
전 세계 40만 톤 방폐물 난제 해결 모델 부상… 한국 ‘고준위 특별법’ 시사점
전 세계 40만 톤 방폐물 난제 해결 모델 부상… 한국 ‘고준위 특별법’ 시사점
이미지 확대보기AP통신은 지난 9일(현지 시각) 핀란드 서부 올킬루오토 섬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 ‘온칼로(Onkalo)’의 내부 현장을 보도했다. 핀란드어로 ‘굴’ 혹은 ‘구멍’을 뜻하는 온칼로는 지하 430m 깊이에 건설된 거대 미로와 같다. 지난 2004년 착공 이후 20년 만에 운영 허가 단계에 진입했으며,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부터 실제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전 세계가 원자력 발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가운데, 핀란드의 이번 행보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이라는 난제를 마주한 한국을 포함한 원전 국가들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1.9억 년 암반과 구리 캡슐의 만남… ‘KBS-3’ 공법의 과학
온칼로 프로젝트의 핵심은 자연적 장벽과 인공적 장벽을 결합한 ‘KBS-3’ 처분 방식이다.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3중으로 차단한다.
먼저 1단계(구리 캡슐)로 사용후핵연료를 부식에 강한 두꺼운 구리 주철 캐니스터(Canister)에 담아 밀봉한다.
다음 2단계(벤토나이트 점토)에서는 구리 캡슐을 지하 터널에 수직으로 매립한 뒤, 수분을 흡수하면 팽창하는 성질을 가진 벤토나이트 점토로 주변을 메운다. 이는 지하수 침투를 막고 암반의 미세한 움직임으로부터 캡슐을 보호한다.
끝으로 3단계(천연 암반)에서 19억 년 동안 지질학적 변화가 거의 없었던 지하 430m의 단단한 화강암반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투오마스 페레(Tuomas Pere) 지질학자는 현장에서 “인류 문명과 완전히 격리된 이 암반은 지상 시설보다 훨씬 안전하게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탈원전’ 국가들도 주목… 전 세계 40만 톤 쓰레기 대안 될까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약 40만 톤에 이른다. 이 중 상당수는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이나 수조에 보관 중이며, 영구 처분장을 확보한 국가는 아직 없다.
스웨덴이 지난해 포스마크에 처분장 건설을 시작해 2030년대 후반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고, 프랑스의 시제오(Cigéo) 프로젝트는 주민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반면 핀란드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원전 인근 지자체인 에우라요키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10억 유로(약 1조 7200억 원)에 달하는 건설 비용은 원전 운영사들이 수십 년간 적립해 온 기금으로 충당해 재정적 지속성도 확보했다.
리스크와 과제, 10만 년의 불확실성
물론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계 일각에서 장기적인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미국 우려과학자연맹(UCS)의 에드윈 라이먼 원자력 안전 책임자는 “지질학적 처분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 중 그나마 나은(least bad)' 선택”이라며 구리 캡슐의 부식 속도에 대한 과학적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만 년 뒤의 후손들에게 이곳이 위험 지역임을 알리기 위한 ‘핵 기호학(Nuclear semiotics)’적 대책도 과제로 남아 있다. 언어나 상징이 변해도 위험을 전달할 수 있는 세라믹 안내판 설치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포화 임박’ 원전 쓰레기, 핀란드 온칼로가 던진 한국의 숙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한국 에너지 정책의 고질적인 난제다. 최근 세계 최초의 고준위 방폐장인 핀란드 ‘온칼로’가 가동을 앞두면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 처리가 시급한 한국 산업계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가장 시급한 지표는 국내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의 포화 시점이다. 오는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저장 시설이 순차적으로 가득 찬다. 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이 지연될 경우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곧 국가 전력 수급과 산업 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투명한 절차 설계도 관건이다. 온칼로의 성공은 지자체의 ‘거부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파격적인 경제적 보상을 병행하며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한국 역시 특별법을 통해 지역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전 관리 체계와 보상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 협정 틀 안에서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줄이는 ‘파이로 프로세싱’ 등 재처리 기술의 외교적 협상 진척도를 지켜봐야 한다. 원자력이 진정한 ‘청정 에너지’로 인정받으려면 폐기 과정의 안전성 입증이 필수다. 온칼로의 가동은 우리 원전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할 거대한 실증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