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억 2천만 명 ‘살인 한파’ 영향권... 전력망 붕괴 ‘퍼펙트 스톰’ 경고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1년 새 2.5% 폭증, 원전 20기 분량 ‘꿀꺽’
삼성전자, 2021년 악몽 재현될라 ‘촉각’... 당시 4천억 손실·웨이퍼 7만 장 폐기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1년 새 2.5% 폭증, 원전 20기 분량 ‘꿀꺽’
삼성전자, 2021년 악몽 재현될라 ‘촉각’... 당시 4천억 손실·웨이퍼 7만 장 폐기
이미지 확대보기배런스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살인 한파가 다가오면서 유틸리티(공익사업) 기업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미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억 2000만 명이 한파 주의보 영향권에 들었으며,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가 전력망 안정성을 시험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살인 한파’와 ‘AI 전력’의 위험한 만남
미국 국립기상청(NWS)은 현재 4800만 명이 극한 추위에 노출됐으며, 1억 2000만 명 이상을 겨울 폭풍 감시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시카고 지역은 체감온도가 영하 37도까지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보됐다. 특히 23일(현지시간) 남부 평원과 미시시피 밸리 하류 지역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얼음 폭풍이 닥칠 것이라고 기상청은 경고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한파가 2021년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백만 가구를 암흑 속에 가뒀던 ‘겨울 폭풍 유리(Uri)’ 사태 이후 전력망에 닥친 최대 시련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문제는 5년 전과 달리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가 전력 소비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북미전력신뢰성협회(NERC)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1년간 데이터센터 증설로 늘어난 최대 전력 수요는 2.5%에 이른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20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통상 전력 수요는 에어컨 사용이 많은 여름철에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데이터센터는 계절과 상관없이 1년 365일 24시간 가동한다. 난방 수요가 폭증하는 겨울철에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까지 겹치면서, 전력망 예비 전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구조상 취약점이 생긴 셈이다. NERC는 이번 겨울 텍사스를 비롯해 남동부, 북서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정전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재생에너지 한계와 가스관 ‘동맥경화’
미국 전력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겨울철 발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평소에는 남는 전력이 충분해 문제가 없지만, 지금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24시간 기저 발전’ 부재가 치명타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최대 발전원인 천연가스 공급망도 불안하다. 기온이 급강하하면 가스관이 얼어붙는 ‘프리즈 오프(Freeze-off)’ 현상이 발생해 가스 생산량이 줄어든다. 천연가스 공급망이 극한 추위 탓에 얼어붙어 생산과 운송이 중단되는 상황이다. 이미 천연가스 가격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발전소 운영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비스트라(Vistra), NRG 에너지, 콘스텔레이션 에너지 등 주요 발전사들은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와 남부 지역을 강타한 겨울 폭풍 ‘유리(Uri)’ 사태 당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미리 약정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자체 발전 설비가 멈추자 현물 시장에서 평소의 수백 배 가격으로 전기를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메가와트시(MWh)당 40달러 수준이던 전력 도매가격은 상한선인 9000달러(약 1320만 원)까지 치솟았다. 비스트라는 당시 16억 달러(약 2조 34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2021년 셧다운 ‘악몽’... 4000억 손실 교훈 삼아 ‘총력전’
이번 한파의 중심지인 텍사스주는 한국 기업들의 주요 생산 거점이라는 점에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도 높다. 삼성전자는 오스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며, 테일러시에는 새 파운드리 공장을 구축했다.
삼성전자는 2021년 ‘유리’ 사태 당시 텍사스주 전력 중단 명령으로 오스틴 공장이 6주간 완전히 멈추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2월 16일 전력 공급 중단 이후 단계적 복구를 거쳐 3월 말이 되어서야 가동률이 90% 수준을 회복했다.
피해는 막심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오스틴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3000억~4000억 원 수준”이라고 직접 밝혔다. 당시 라인에 투입됐던 웨이퍼 7만 1000장이 전력 차단 탓에 전량 폐기되거나 손상됐다. 이후 삼성전자는 보험사인 FM글로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약 4억 달러(약 5870억 원) 규모의 보상금 합의를 끌어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현지 협력사들은 당시 경험을 교훈 삼아 비상 발전기 가동 준비와 용수 확보 등 대응 매뉴얼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이번 한파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과 맞물려 예측 불가능한 ‘블랙아웃’으로 이어질 경우, 생산 차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업체인 ERCOT는 지난 사태 이후 발전 설비 월동 준비(Weatherization)를 의무화하고 “전력망이 정상 작동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의 불신은 여전하다. 제프리스의 줄리앙 두물랭 스미스 애널리스트는 “이번 폭풍이 계획대로 지나가지 않는다면 유틸리티 기업은 재무 타격은 물론 평판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전력난이 현실화하면 비난의 화살은 데이터센터로 향할 공산이 크다. 이미 지역 사회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전기 요금 인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거세다. 스미스 애널리스트는 “텍사스 같은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면, 공급 속도를 앞지르는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한파는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AI 산업의 핵심 기반인 전력 인프라가 기후 변화와 수요 폭증을 견뎌낼 수 있는지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