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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자소서를 대신 써주는 AI, 합격을 대신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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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요즘 고3 교실에서 흔히 벌어질 법한 풍경 하나를 떠올려보자. 자정이 넘은 시각, 단체 채팅방에 파일 하나가 올라온다. "이거 AI로 다듬었는데 봐줘." 몇 시간 전까지 백지였던 자기소개서(자소서)는 어느새 매끄러운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문법은 흠 없이 정돈됐고, 어색한 표현은 세련된 어휘로 바뀌었다. 아이는 비로소 안도한다. 뭔가 완성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안도감이 정확히 무엇을 대가로 얻어진 것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입시라는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AI는 이미 학생의 손끝에 가장 먼저 닿는 도구가 돼 있다. 그중에서도 자소서를 먼저 들여다보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입 자소서는 성적표가 담지 못하는 한 사람의 서사를, 오직 그 사람의 언어로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거의 유일한 글쓰기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장르에, 가장 조용하고 가장 고르지 못한 방식으로 AI가 스며들고 있다.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와 카네기멜런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 연구진이 진행해 2026년 2월 발표한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숫자로 보여준다. 연구팀은 미국에서 입학 경쟁이 치열한 한 공과대학에 2019학년도부터 2024학년도까지, 다섯 번의 입시 사이클에 걸쳐 제출된 지원서 8만1663건을 추적했다. 챗GPT가 널리 쓰이기 전인 2023학년도까지를 이전 시기로, 그 이후인 2024학년도를 이후 시기로 나누고, 지원서 접수비 면제 여부로 지원자의 경제적 형편을 가늠했다. 편의상 이 접수비 면제 지원자를 저소득층, 나머지를 고소득층으로 부르며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연구팀은 실제 지원서 문장이 사람이 쓴 글과 AI가 쓴 글, 이 둘의 언어적 패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비교하는 통계 모델을 만들어 각 자소서가 AI 생성 텍스트와 얼마나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지를 추정했다. 그 추정치를 소득 수준, 합격 여부와 함께 살핀 것이다.

결과는 이중의 역설을 보여준다. AI와 유사도가 높은 상위 구간에 속한 비율은 저소득층 지원자가 고소득층 지원자보다 21% 더 높았다. 과외나 컨설팅에 기댈 수 없는 학생일수록 AI를 더 적극 끌어다 썼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그 유사도가 합격 여부와 맺는 관계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여기서 잠깐 개념 하나를 짚고 가자. '오즈(odds)'란 합격할 가능성이 불합격할 가능성보다 몇 배 큰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오즈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건, 합격 가능성이 불합격 가능성에 비해 그만큼 작아졌다는 뜻이다. 이 연구에서 AI 생성 텍스트와의 유사도가 한 단위 오를 때마다 고소득층 지원자는 이 오즈가 약 62% 줄었고, 저소득층 지원자는 약 83%, 거의 두 배 가까이 줄었다. 다시 말해 똑같이 AI 문체에 가까워졌어도 그로 인해 합격 가능성이 줄어드는 정도는 저소득층 지원자 쪽이 훨씬 더 컸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사이의 실제 합격률 격차도 챗GPT 이전보다 이후에 눈에 띄게 더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통계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그동안에도 배경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는 장르였다. 컨설턴트를 고용할 수 있는 가정의 아이는 자기의 경험을 입학사정관이 듣고 싶어 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법을 배웠고, 그러지 못한 아이는 진짜 이야기를 서투른 문장에 담아야 했다. AI는 이 격차를 메워줄 것처럼 보였다. 무료로, 누구에게나, 순식간에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어 주니까. 그러나 매끄러움과 설득력은 다른 것이다. 코칭을 받아본 적 없는 학생이 AI에게 맡긴 문장은 화려하지만 어딘가 붕 떠 있고, 입학사정관은 그 이질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반면 이미 글쓰기 감각을 갖춘 학생은 AI의 제안을 자기 문체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결국 AI는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의 손에서는 무기가 되고,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의 손에서는 흔적이 된다.

이 결과 앞에서 부모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를 쓰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그 질문은 이미 늦었다.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아이가 AI 없이도 자신의 경험을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AI는 문장을 다듬어줄 수 있어도 그 문장이 누구의 삶에서 나왔는지는 증명해 주지 못한다. 입학사정관이 결국 가려내려는 것도 매끄러움이 아니라 그 서사의 진위다. 자소서를 AI에게 맡기는 순간, 아이는 자기의 삶을 남에게 대신 진술하게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진술서에 서명하고 결과를 떠안는 사람은, 끝까지 AI가 아니라 아이 자신이다.

그러니 지금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프롬프트 작성법이 아니라 자기 경험을 스스로 문장으로 세우는 훈련이다. 초고는 반드시 아이의 손에서 나와야 한다. AI는 그다음에, 이미 서 있는 문장을 다듬는 역할로만 들어와야 한다. 순서가 바뀌는 순간, 자소서는 더는 그 아이의 것이 아니게 된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그 결과를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목소리로 쓴 사람뿐이다. AI는 그 책임까지 대신 떠안지 않는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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