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독주 속 선전…실적 향방은 루빈 양산 속도와 빅테크 AI 수익성에 달렸다
이미지 확대보기HBM4는 단순 속도 개선이 아니다. 메모리와 GPU 구조가 세대를 넘어 바뀌는 전환이다. 국제표준화기구 JEDEC 규격을 보면 데이터 통로 폭은 1024비트에서 2048비트로 두 배 넓어졌다. 독립 채널도 16개에서 32개로 늘었다. 스택 하나가 초당 최소 2테라바이트(TB)를 전송한다.
엔비디아는 루빈 GPU 한 대에 HBM4를 최대 288기가바이트(GB) 얹는다. 목표 대역폭도 스택당 초당 22TB로 높여 공급사에 재검증을 요구했다. 288GB는 16GB 스마트폰 약 18대의 저장 용량과 맞먹는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통째로 메모리에 올려두고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초격차 경과, 양산은 시작됐다
젠슨 황 CEO는 지난달 5일 서울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회사 모두 루빈용 HBM4 샘플과 설계 검증을 통과했다고 확인했다. 이는 기능과 호환성을 확인한 단계다. 대량 양산용 신뢰성과 반도체 칩을 완제품 기판에 실제로 장착하고 연결하는 검증은 남은 관문이다. 블룸버그는 SK하이닉스가 루빈용 물량의 60~70%가량을 배정받은 것으로 업계가 추정한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공식 배분율을 밝히지 않았다.
디지타임스는 지난 13일 SK하이닉스가 6월 말 엔비디아에 12단 HBM4 양산 물량을 출하했고, 9월 증산을 앞두고 물량을 늘린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2월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4나노 로직 베이스 다이와 6세대 10나노급 D램을 얹은 이 제품은 최근 엔비디아와 AMD 품질 검증을 통과하고 수율도 업계 추산 60~70%대 안정권에 진입했다. SK하이닉스는 난이도 높은 고유 독점 공정인 'MR-MUF' 기술을 16단까지 확대 적용하며 독보적인 열 방출과 생산성 노하우로 팽팽한 기술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다음 관문은 16단 HBM이다. 엔비디아는 16단 제품의 4분기 납품 가능성을 타진했다. 16단을 쌓으려면 웨이퍼 두께를 약 50마이크로미터(㎛)에서 30㎛로 줄여야 한다. 마이크론은 이미 16단 샘플을 엔비디아에 전달했다.
매출 추이, 성장률은 꺾여도 이익은 신기록
SK하이닉스는 2026년 1분기 매출 52조 5763억 원, 영업이익 37조 6103억 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4월 22일 발표했다. 영업이익률 72%로 모두 사상 최대다. 분기 매출이 50조 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달 25일 SK하이닉스가 1분기 HBM 매출 기준 점유율 58%로 1위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각각 21%였다.
성장 속도는 완만해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 상승률 전망치를 50.0%에서 28.9%로 낮췄다. HBM 비중이 큰 판매 구성, 일반 D램 가격의 기대 이하 상승, 3~5년 장기공급계약의 가격 안정 효과가 겹친 결과다. 가격 급등이 계약 기반의 완만한 성장으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이 변화는 쇠퇴가 아니라 정상화다.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영업이익 증가율을 2026년 419%, 2027년 53%, 2028년 19%로 봤다.
주목할 변화는 'HBM의 웨이퍼 잠식'이다. HBM은 같은 용량의 일반 D램(DDR5)보다 웨이퍼를 약 3배 더 쓴다. HBM4는 약 4배다. 미국 시장조사매체 테크인사이더는 지난달 4일 HBM이 2026년 전체 D램 웨이퍼의 약 23%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HBM이 늘수록 일반 D램 공급이 줄어 범용 메모리 가격까지 오른다. 삼성전자가 2월 HBM4로 웨이퍼를 돌리자, 공급난은 더 심해졌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7월 10일 나스닥 상장 첫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내년은 공급 측면에서 업계 역사상 가장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0년 이후에도 수요가 공급 능력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UBS도 글로벌 D램 공급 부족이 2028년 2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다.
루빈 판매는 빅테크 투자에 달렸다
HBM4 수요를 결정하는 마지막 변수는 빅테크의 설비투자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네 회사의 2026년 설비투자 계획은 합쳐 약 7250억 달러(약 1070조 원)다. 지난해보다 77% 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증가분 중 250억 달러(약 36조 9200억 원)가 메모리와 부품 가격 상승분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 투자가 곧바로 메모리 회사 매출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투자가 이어질 수 있느냐다. 하반기 논쟁은 '투자 규모'에서 '수익 증명'으로 옮겨갔다. 메타는 지난 1일 남는 GPU 자원을 빌려주는 '메타 컴퓨트'를 발표했다. 메타 주가는 약 8% 올랐다. 반면 메타에 GPU를 대던 중개업체 코어위브와 네비우스 주가는 10~15% 내렸다. 투자가 커질수록 수익 증명 압박도 커진다.
리스크, 루빈 지연은 3사 공통 병목
가장 큰 변수는 루빈 양산 속도다. 미국 증권사 키뱅크의 존 빈 애널리스트는 지난 14일 보고서에서 루빈 초도 출하가 몇 주 밀렸다고 진단했다. 열 리드(thermal lid) 제조 문제와 SK하이닉스의 HBM4 검증 지연이 이유다. 6월 통과가 샘플·설계 승인이었다면, 이번 지연은 양산 실장과 수율 검증 벽이다. 베이스 다이를 파운드리 공정으로 만들며 난도가 올랐다.
키뱅크는 앞서 4월 보고서에서 엔비디아의 2026년 루빈 단독 생산목표가 200만 대에서 150만 대로 약 25% 낮아졌다고 밝혔다. 트렌드포스는 루빈이 엔비디아 GPU 출하에서 차지하는 비중 전망을 29%에서 22%로 낮췄다.
루빈이 늦어지면 3사의 HBM4 매출 인식 시점도 함께 밀린다. 다만 키뱅크는 루빈 감소분을 블랙웰 울트라(B300)가 메운다고 봤다. 엔비디아 전체 인공지능 GPU 출하 전망과 투자 의견은 그대로 뒀다.
시장의 낙관론도 여전하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국면을 수요가 이끄는 '슈퍼사이클'로 규정하고 이익 전망을 올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990년대 반도체 호황에 견줬다. 반론도 있다. 증설과 경쟁으로 HBM 가격이 2027년부터 조정에 들 수 있다는 신중론이다. 슈퍼사이클의 방향은 빅테크 투자와 루빈 출하가 정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