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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가을 단풍, 색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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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 색의 유혹 / 백승훈 시인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지난주에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오색단풍을 맘껏 즐겼으니 이대로 겨울로 접어든데도 크게 아쉽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거리를 오갈 때마다 미처 단풍이 들기도 전에 떨어지는 가로수의 낙엽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른바 ‘조기 낙엽’ 현상이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가을 가뭄까지 겹치면서 나무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은 탓이다. 가뭄으로 수분이 부족해진 나무가 물을 아끼기 위해 잎의 기공을 닫고 잎을 일찍 떨어뜨리는 것이다. 색색의 고운 단풍을 못 보는 아쉬움보다 잎을 일찍 떨군 나무들이 광합성을 하지 못해 건강을 해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럼에도 단풍을 즐기려고 산을 향하는 행락객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미당 서정주는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라고 노래했지만, 나뭇잎이 단풍 드는 것은 무탈하게 겨울을 나기 위한 나무들의 준비 과정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감성은 개인적이지만 이해는 일반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시시각각 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숲을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황홀경에 사로잡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든 탓일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보낼 때마다 내게 남은 계절을 헤아리곤 한다. 내게 몇 번의 가을이 더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나면 내게 오는 계절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어느 영화에선가 “기회를 한 번 놓쳤다고 낙담하지 마.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많으니까”라는 대사가 기억난다. 일찍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혹은 시간이 없어서 단풍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까닭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단풍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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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왕릉 숲 개방에 맞춰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의 광릉 복자기 숲길을 걸었었다.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를 지닌 단풍나무류는 대부분 붉은색을 띠는데 종류별로 약간씩 다른 색으로 물든다. 붉은색 위주의 단풍나무와 달리 복자기는 노랑과 주황 그리고 단풍나무 집안의 붉은색을 바탕으로 진한 주홍색을 더해 화려하기 그지없다. 가로변의 벚나무 낙엽이 바람에 쓸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휑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복자기나무 화려한 단풍을 보면 환호성이 절로 터진다. 1㎞ 남짓한 복자기나무 숲길을 걸으며 “태초에 빨강이 있었다”라고 말할 만큼 정열 넘치는 에너지를 느꼈었다. 올해는 지난 주말 이틀만 개방되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해 아쉽게도 기회를 놓쳤다.

왕릉 숲길을 걷는 기회를 놓쳤다 해도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숲은 단풍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선왕릉 가운데서도 숲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광릉은 서울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라 당일치기 산책 코스로도 적당하다. 이제 서울을 둘러싼 산들은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 중이다. 기상이변으로 ‘조기 낙엽’이 져서 포도 위에 푸른 낙엽이 뒹군다 해도 숲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단풍은 충분하다. 더 늦기 전에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손짓하는 숲을 찾아 나설 때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세상은 점점 흉흉해진다. 우리의 감성이 메말라 가는 탓이리라. 사람이 이름 붙인 첫 번째 색이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색의 이름인 열정적인 빨강을 비롯해 다양한 자연의 색들이 빚어내는 색의 향연장인, 단풍 물든 가을 숲. 더 늦기 전에 그 숲에 가서 한껏 무뎌진 감성을 회복하고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은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당신의 가을도 무탈하고 여유롭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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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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