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더욱 주목할 것은 종교적 갈등이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대립이 종교적 신념에 의해 정당화되는 현상이다. 정치적 선택이 마치 신앙고백처럼 되고,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신앙적으로도 잘못된 사람으로 판단한다. 본래 목적이 다른 종교와 정치가 왜 이렇게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근본주의(Fundamentalism)'다. 근본주의는 원래 20세기 초 미국 개신교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수호하려는 운동과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다. 이후 종교학과 심리학에서는 특정한 진리체계에 대한 절대적 확신과 배타적 태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정치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고방식이 나타난다. 다만 정치적 근본주의는 종교적 근본주의처럼 엄밀하게 확립된 학술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적 신념을 절대화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표현에 가깝다.
종교심리학자 밥 알트마이어(Bob Altemeyer)와 브루스 헌스버거(Bruce Hunsberger)는 종교적 근본주의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인간과 신에 관한 오류 없는 근본적인 진리가 존재하며, 그 진리는 악의 세력과 대립하고, 과거의 변하지 않는 가르침에 따라 지켜져야 하며, 이를 따르는 사람들은 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근본주의의 특징을 보다 넓게 이해할 수 있다. 근본주의의 핵심은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믿는 데 있지 않다. 특정한 교리나 이념을 오류 없는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적대시하려는 태도에 있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질문이나 비판을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진리와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같은 종교를 믿거나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자신의 판단을 성찰할 수 있다면 근본주의적 태도와 구별된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근본주의자는 아니며,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고 근본주의적 사고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종교적 근본주의에서는 세상을 정통과 이단, 신앙과 불신앙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정치적 근본주의적 사고에서는 정의와 불의, 애국과 반역, 우리 편과 적이라는 구분이 강조된다. 두 집단은 믿는 내용이 서로 다르지만 심리적으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자신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옳은 답이 있고, 자신들이 속한 집단은 선하며, 그 반대편에는 물리쳐야 할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알고 싶어 한다. 세상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고, 옳다고 믿었던 것이 틀릴 수도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한다. 인간은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 유난히 어렵다.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이때 모든 문제에 분명한 답을 제시하는 종교나 정치이념은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근본주의적 태도의 밑바탕에 반드시 강한 확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불안이 작용할 수도 있다. 겉으로는 매우 확신에 차 있지만 자신의 확신이 흔들리는 상황에는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은 인간의 정체성 발달을 설명하면서 전체주의적 사고(Totalism)의 문제를 다루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체성이 불안정하면 자신에게 분명한 소속감과 행동 기준을 제공하는 집단이나 이념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다.
이때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은 단순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중요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자신의 신념에 대한 비판은 자기 존재 전체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것은 근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심리적 특징이다. 자신이 믿는 것과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면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신념을 수정하는 것이 곧 자신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주장을 검토하기보다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려는 태도가 나타날 수 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성경 해석이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신앙이 부족한 행동으로 여긴다. 정치조직에서도 지도자의 주장에 반대하면 배신자로 취급하는 일이 나타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보다 지도자의 생각에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대화와 타협이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절대적인 정의로 생각한다면 타협은 배신이 된다.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조차 잘못된 일로 여겨진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할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정치적 입장에 종교적 정당성이 부여되면 상대방은 단순히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잘못된 사람으로 규정될 수 있다. 반대로 정치적 진영 논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그렇다고 종교가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평화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다만 종교적 양심에 따라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것과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절대화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근본주의적 태도를 단순한 교육이나 설득만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는 이유를 올바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이 설명하고 가르치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의 신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형성된 인간관계와 소속감, 자존감, 삶의 경험이 함께 얽혀 있다. 어떤 사람에게 특정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을 포기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변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 점에서 상담심리학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 Rogers)는 사람의 변화에 필요한 핵심 조건으로 공감적 이해,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진실성을 강조했다. 이는 상대방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거나 잘못된 행동까지 용납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주장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구별하라는 의미다.
상대방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 상대방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모순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공동체에서 버림받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자기 존재를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바로 이러한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정치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를 조정하는 방법은 얼마나 배우고 경험했을까?
근본주의의 문제는 무엇을 얼마나 강하게 믿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존재를 어디까지 부정하려 하는가에 있다.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는 사실이 곧 다른 사람을 배제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을 때 그 신념은 더욱 성숙해진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