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미지 확대보기첫째, 에너지 안보는 비축의 안보에서 흐름을 설계하는 안보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불안정, 미·중 경쟁은 특정 공급국과 수송로에 의존하는 체계의 위험을 드러냈다.
10년 뒤 한국은 석유와 가스의 비축에 더해 해외 청정수소·암모니아의 생산, 해상 운송, 항만 인수, 저장, 배관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북극항로는 운항 여건과 경제성, 지정학적 위험을 검증받으며 보조 수송로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글로벌 기업의 청정전력 요구가 본격화하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이 곧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이 된다.
둘째, 국토 공간의 전환이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분산화의 심화다. 해안의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으로 수도권에 보내는 방식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송전망 건설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지역 갈등도 따르는데,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센터의 수요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5년 약 485TWh에서 2030년 약 950TWh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36년에는 전력이 생산되는 곳에 산업이 들어서는 '지산지소'가 산업 입지의 기본 원칙이 되어 있을 것이다. 5극 3특 균형성장 전략도 이 흐름 속에서 실제 산업 투자로 이어진다.
동남권의 원전·해상풍력·수소 인프라, 호남권의 재생에너지, 대경권의 에너지 기자재 산업이 각 지역의 산업 기반과 결합할 것이다.
광역지자체 간 전력거래도 제도로 자리 잡을 것이다. 전력이 남는 지역과 부족한 지역이 거래 계약을 맺고, 송전 비용과 지역별 요금이 거래 조건에 반영되는 구조다.
이때 지방정부는 전력을 소비하는 행정 단위를 넘어 전력을 사고파는 경제 주체가 된다. 물론 기업은 요금만 보고 이전하지 않는다. 전력 공급의 신뢰성, 부지, 인력, 물류와 거래처를 함께 갖춘 지역이 거래의 주도권을 쥘 것이다.
공간의 전환은 한반도로 넓어질 수도 있다. 남북 경제교류가 재개되면 접경 지역의 경제협력 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이 첫 단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이미 개성공단에 전력을 보낸 경험이 있다.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 합의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에너지는 남북 협력의 가장 실질적인 연결 고리가 될 것이다.
셋째, 원자력·해상풍력·수소가 산업 현장에서 연결되는 전환이다. 2036년에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수소가 실증을 넘어 산업의 한 축으로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다. SMR은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가까이에서 전기와 공정열을 함께 공급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원자로 형식에 따른 열의 온도, 입지와 안전성, 인허가와 경제성에 대한 검증을 마쳐야 한다. 부유식 해상풍력은 국내 조선·해양플랜트와 전력기자재 산업에 새 일감을 만드는 산업 정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수소는 쓰임새가 분명한 곳부터 확산될 것이다. 수소환원제철, 석유화학 원료, 대형 상용차, 해운·항공처럼 직접 전기화가 어려운 분야다.
해외 청정수소를 암모니아로 들여와 항만에서 인수·저장·크래킹한 뒤 배관으로 공급하는 체계가 울산과 여수·광양, 부산을 중심으로 가동될 것이다. 원전의 전기와 열을 활용한 수소 생산도 경제성을 입증하는 단계에 들어설 것이다.
넷째, 전력시장의 전환이다. 태양광과 풍력이 늘수록 발전설비의 규모보다 시간대별 수급을 맞추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2036년의 전력시장에서는 지역별 비용을 반영하는 요금, 직접전력거래, 수요반응, 에너지저장장치와 가상발전소가 하나로 연결되어 움직일 것이다. AI는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산업인 동시에 발전량과 수요를 예측하고 분산된 설비를 제어하는 운영자가 된다.
이 변화에서 지방정부는 산업 수요를 파악하고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설계하며 기업·발전사업자·주민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주체가 된다. 중앙정부는 지역이 실행할 수 있도록 시장 규칙과 위험 분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2036년의 에너지 체계는 어느 한 발전원이 압도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분산화된 전원과 지역 간 거래,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 수소의 산업적 쓰임, 삼천리 반도의 연결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누가 어떻게 이들을 연결하고, 필요한 투자를 이끌며, 전환의 비용과 위험을 나눌 것인가다. 향후 10년 한국의 에너지 미래는 그 통합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