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우리가 무더위와 장마 속에서도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듯이 여름 숲에도 끊임없이 꽃들은 피고 지기를 되풀이한다. 우리가 무더위와 비에 핑계를 대며 숲을 찾지 않아도 때맞춰 꽃을 피우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요즘 화단마다 원추리꽃이 한창이다. 예로부터 근심을 잊게 해주는 꽃이라 해서 망우초(忘憂草)로 불리는 어여쁜 여름꽃이다. 망우초로 불리게 된 데에는 원추리나물을 많이 먹으면 의식이 몽롱해져 무엇인가를 잘 잊어버린다는 속설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원추리꽃을 보고 신숙주가 망우초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연이야 어떠하든 습한 계절에 꽃등을 환하게 밝히는 그 고운 모습만으로도 원추리는 우리에게 지치기 쉽고 우울해지기 쉬운 이 우울한 계절을 거뜬히 견딜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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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이내 져버리는 원추리꽃은 꽃의 단명함을 상징하는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옛말도 무색하게 만든다. 워낙 꽃의 시간이 짧아 무언가를 궁리하고 근심할 틈조차 주지 않는 꽃이다. 덕분에 서양에서는 하루백합(daylily)으로 불린다. 그렇다고 일 년 중에 단 하루밖에 원추리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백일홍이 피고 지기를 거듭하면서 석 달 열흘 쉬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원추리꽃도 한 송이 지고 나면 이어서 또 다른 꽃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원추리꽃 중에서도 노란색의 각시원추리는 그 단아한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원추리꽃은 그 원색의 강렬함과 난초 잎을 닮은 이파리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더위를 잊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화단에서 만나는 꽃도 예쁘지만, 여름 숲속에서 만나는 각시원추리는 각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하지만 꽃의 가장 큰 미덕은 꽃을 바라보는 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꽃은 빠지지 않는다. 수시로 비를 뿌리는 장마 중이라 해도 가끔은 언뜻언뜻 파란 하늘도 보이고, 햇살 부신 날도 들어 있게 마련이다. 장마철엔 일조량이 줄어들고 고온 다습한 날씨로 컨디션이 낮아지고 야외활동도 자제되다 보니 우울해지기 쉽다. 이런 때일수록 건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마음을 잘 챙겨야 한다. 비가 와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처럼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며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느 소설가는 “삶을 누린다는 건 길섶에 핀 꽃의 이름을 알고 나무의 변화를 살피는 일, 숲에서 만난 새의 습관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비에 젖어 바닥으로 내려앉은 능소화를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원추리나 비비추, 수련 같은 꽃들은 비 오는 날에도 생기에 차 있어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 준다. 비록 비가 자주 내려 마음이 울적해진다 해도 원추리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이 무덥고 후덥지근한 장마철을 잘 건너가고 싶다.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