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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놀아주는 시대, 몸으로 노는 아이가 결국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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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아이가 태어나 처음 배우는 것은 언어가 아니다. 뒤집기다. 그다음은 기기, 서기, 걷기다. 넘어지고, 긁히고, 다시 일어서는 그 반복 안에서 뇌는 세상을 배운다. 뇌는 생각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몸이 움직일 때 비로소 자란다.그런데 지금, 아이들의 몸이 멈추고 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태블릿 앞에 앉아 인공지능(AI)와 대화하고, 손끝으로 검색하며 눈으로만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AI는 친절하다. 묻는 것마다 답해주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그 친절함이 아이의 몸을 의자에 붙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이대학교 아동정신발달연구센터 연구팀이 2025년 10월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했다. '스크린 타임(영상 시청 시간)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 및 그 발달 간의 연관성(Association of Screen Time with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Symptoms and Their Development)'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미국 전역 21개 기관이 참여한 대규모 아동 추적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다. 연구팀은 9~10세 아동 1만여 명이 하루에 스마트폰·텔레비전·게임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기록한 뒤, 2년 후 같은 아이들의 뇌를 다시 살펴봤다. 화면 앞에 오래 앉아있는 아이들의 뇌에서는, 집중하고 충동을 참는 기능을 맡은 부위가 또래보다 얇아져 있었다. 산만함과 충동 조절의 어려움도 함께 나타났다.

물론 이 연구가 화면이 뇌를 직접 망가뜨린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화면 앞에 오래 앉아있는 아이일수록 이런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는 패턴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1만 명의 아이를 2년 동안 따라가며 포착한 이 패턴은, 우연으로 넘기기엔 너무 일관된 신호다. 그렇다면 몸이 움직일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몸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뇌는 특정 물질을 분비한다. 이 물질은 뇌세포를 자라게 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의 연결을 촘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몸을 쓸수록 뇌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더 잘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스페인 바스크대학교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이 이 물질에 주목한 연구를 지난해 7월에 발표했다. '운동이 아동의 뇌 성장 물질에 미치는 영향(Exercise as Modulator o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in Children)'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5~12세 아동 385명이 참여한 임상 연구 5편을 종합 분석했다. 효과가 확인된 운동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단순히 뛰는 것보다 복잡한 동작과 순간적인 판단을 동시에 요구하는 운동에서 뇌 성장 물질의 수치가 의미 있게 올라갔다. 태권도처럼 균형을 잡고, 방향을 바꾸고,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해야 하는 활동이 대표적이었다. 주 3회 이상, 12주 이상 꾸준히 이어진 경우에 효과가 뚜렷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아이들의 뇌 건강을 위해 복잡한 신체 활동을 학교 현장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뇌는 그냥 많이 움직이는 것보다 복잡하게 움직이는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걷기보다 달리기, 달리기보다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구기 종목, 혼자 뛰는 것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어야 하는 놀이, 예측 불가능하고 불규칙한 몸의 경험이 뇌를 빚는다.

서로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 두 연구가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아이의 뇌는 몸의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균형을 잡고, 방향을 틀고, 예상치 못한 충돌에 반응하는 그 과정에서 집중력과 감정 조절, 판단력의 토대가 쌓인다. 뇌는 몸을 통해 먼저 세상을 배우고, 그 위에 생각하는 힘을 올린다. AI가 아이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이 순서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고 AI를 멀리하라는 말이 아니다. AI를 아이가 몸을 움직이는 계기로 바꿔 쓰는 것이 지금 부모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AI에게 "공룡처럼 움직이는 놀이를 알려줘"라고 물어 함께 따라 해볼 수 있다. 축구를 좋아한다면 AI로 드리블 훈련 계획을 짜고 아이가 직접 몸으로 실행하게 한다. AI가 미션을 설계하고, 아이의 몸이 그것을 수행하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AI가 끝까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실제로 몸을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 스스로 오늘 한 신체 활동을 AI에게 말로 기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몸을 쓴 경험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은 뇌를 또 다른 방식으로 자극한다. 이때 AI는 정답을 주는 기계가 아니라 아이의 하루를 함께 되돌아보는 기록자가 된다.

넘어지는 것, 헛발질하는 것, 예상이 빗나가는 것. 이 경험들은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화면 안에서 줄 수 없다. AI를 잘 다루는 아이보다 AI를 쓰고 난 뒤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아이가 결국 더 단단하게 자란다. 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이 보내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더 그렇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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