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마음산책(317)] 분열의 시대, '메아 쿨파'의 마음으로 통합을
이미지 확대보기외부 귀인의 함정에 갇힌 한국 사회
현재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수준의 정치적 양극화와 세대 갈등, 이념적 분열이라는 깊은 균열 속에 놓여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책임 전가로 점철된 이 분열의 고리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의 독선, 외세의 개입 혹은 시대의 불가항력 등 외부에서 찾는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적 통합은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메아 쿨파(Mea Culpa)의 정신, 즉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는 내부 귀인(Internal Attribu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회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가 주창한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하는지를 다룬다. 귀인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동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행동의 원인을 행위자 자신의 개인적 특성, 성향, 능력이나 노력 등 내부적인 요인으로 돌리는 내부 귀인이다. 예를 들면, 친구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 친구는 똑똑하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둘째는 행동의 원인을 상황, 환경, 운 또는 과제 난이도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리는 외부 귀인이다. 친구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 "시험 문제가 쉬웠거나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외부 귀인이 영구화하는 갈등의 악순환
외부 귀인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 두기 때문에 나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의 잘못을 성찰할 필요를 없앤다. 예컨대 정치권이 상대방의 부패를 비난하는 데만 몰두할 때, 자신들이 저지른 권력 남용과 독선의 과실은 은폐된다. 이로 인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능동적인 의지가 마비되어 자정 능력이 줄어들며,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에 유리한 분열된 상태가 지속된다. 내부 귀인 없이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능하다.
또한 외부 귀인은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윤리적 우월감을 가져온다. 이 우월감은 상대방을 타협의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적(敵)으로 규정하게 만든다. 지적 겸손이 사라지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정서적 공감 능력이 마비되면서 대화의 가능성은 차단된다. 모든 사회적 에너지가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증명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집중되어 정작 사회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의제와 타협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비효율을 낳는다. 이처럼 외부 귀인은 갈등의 에너지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지속하는 악순환의 핵심이다.
메아 쿨파: 통합을 위한 용기 있는 자기 성찰
분열을 멈추고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수용하는 용기 있는 내부 귀인의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후회나 사과가 아니라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윤리적 전환점이며, 메아 쿨파의 정신이 사회적 차원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메아 쿨파'는 중세 가톨릭의 참회 기도에서 유래한 라틴어로, '나의 잘못입니다'라는 뜻이다. 가톨릭 미사에서 신자들은 이 말을 읊조리며 오른손으로 가슴을 세 번 친다.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입니다)." 가슴을 치는 행위는 단순히 형식적인 동작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나약함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인정하는 내적 통회(痛悔)의 외적인 표현이다. 즉 잘못의 원인을 타인이나 제도, 환경이 아닌 '나의 태도, 나의 무관심, 나의 침묵'에서 찾는 행위다. 이 고백은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하게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늘 분노 속에 살지만,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이미 자유롭다.
'메아 쿨파'의 정신은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현재의 분열과 갈등이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즉 내부 귀인 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상대 진영의 분열주의적 정책에 분노하기 전에 '내가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고 독선적이었다'고 인정해야만 상대도 타협의 장으로 나올 수 있다. 세대 간 갈등에서도 상대방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내가 상대의 입장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내부 귀인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바로 나와 우리임을 깨닫게 하여, 외부 비난에 낭비되던 에너지를 자정(自淨)과 개혁으로 전환시키는 능동적인 동력을 확보하게 한다. 책임 회피의 비활성 상태에서 책임 수용의 행동적 상태로의 전환이야말로 통합을 위한 가장 강력한 힘이다.
겸손과 공감으로 여는 대화의 문
이런 지적 겸손은 정서적 공감으로 이어져 이념과 세대를 초월한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다. 비로소 갈등은 파괴적인 투쟁이 아닌 건설적인 사회적 숙의(熟議) 과정으로 승화될 수 있고, 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된다. 동시에 '메아 쿨파'는 '나는 약하고 불완전하다'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나도 타인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마련한다.
내부 귀인의 실천: 정치권과 세대 간 화해의 길
'메아 쿨파' 정신을 바탕으로 한 내부 귀인은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 머물지 않고, 정치·경제·세대 등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권은 상대 진영을 파괴하는 데 몰두했던 권력 남용과 독선 그리고 민의(民意)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과실에 대해 진심으로 내부 귀인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고백과 함께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협력의 원칙을 회복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권력은 길어야 5년만 유효한 시한부임을 깨닫고, 국민 전체를 위한 공공선에 봉사하는 초월적인 리더십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진정한 정치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세대 간의 갈등 해소에도 내부 귀인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누려온 성장의 과실을 다음 세대에게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기득권을 고수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미래 세대의 희생을 기반으로 쌓아 올린 번영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반면, 젊은 세대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외면하거나 정치적 무관심에 빠졌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각 집단이 자신의 책임과 과실을 인정하고, 다른 세대의 고통에 공감하며 미래의 책임을 연대할 때 건강한 사회적 계약이 다시 체결되고 세대 간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현 한국 사회의 분열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독선과 책임 회피가 만들어낸 결과다. '메아 쿨파'의 정신을 통해 나의 잘못을 고백하는 용기 있는 내부 귀인만이 이 분열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타인의 입장을 포용할 때, 한국 사회는 비로소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성숙하고 통합된 미래를 향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개인적인 심리적 성숙도 '통제 가능한 내부 귀인'을 통해 자기 책임감을 확립하고 성장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과 관련이 깊다. 이는 현실적인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하며, 단순한 자기 비난이나 외부 회피가 아닌 문제 해결 중심의 태도를 의미한다. 물론 모든 내부 귀인이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능력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내부 요인에 대한 귀인은 심리적 미성숙을 유발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주도권을 자신에게 돌리고, 외부 환경이나 운명 탓으로 돌리기보다 자신의 선택과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건설적인 내부 귀인은 분열의 고통을 치유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마음가짐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통합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각자가 "메아 쿨파"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용기 있는 고백에서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너'가 아니라 '메아 쿨파'를 외칠 용기가 없는 '나'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워진다.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분열된 사회의 통합도, 성숙한 인격으로의 변화도 '메아 쿨파', 즉 내부 귀인에서 시작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