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가까운 도봉산을 찾았다. 지난해에 만월암 계곡의 단풍에 취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례없는 폭염과 긴 가뭄으로 푸른 잎이 지는 조기 낙엽 현상과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마르는 통에 화려한 단풍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비록 고운 단풍을 볼 수 없다 해도 그리 실망할 일은 아니다.
로베르 뒤바는 '나무의 철학'이란 책에 이렇게 썼다. “나무는 수직의 축, 우주적 축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의 세상,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와 보이는 지상 세계, 그리고 끝없이 연장된 천상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산을 오르는 일은 곧 그 다양한 나무들과 만나는 시간이기에 내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로베르 뒤바가 말한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는 나무의 뿌리이자 과거이고, 보이는 지상 세계는 현재로서 생존을 의미한다. 끝으로 끝없이 연장된 천상 세계는 나무 끝에서 펼쳐지는 나무의 꿈과 희망이자 미래라 할 수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예년만은 못해도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까. 낙엽이 밟히는 등산로는 단풍객들로 제법 붐빈다. 산을 오르다 보면 간간이 소나무도 눈에 띄기도 하지만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들이 대부분이어서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이 좋다. 오후 햇살을 받아 선홍색으로 빛나는 단풍나무 아래에는 어김없이 등산객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작가 니시베 스스무는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도 정신적인 성숙의 실상이다”라고 했다. 세상살이의 힘듦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되는 단풍길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만날 수 있는 성숙의 공간이기도 하다.
단풍을 제대로 즐기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단풍의 신비로움은 알록달록한 색상들의 조화인데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나뭇잎의 상처가 보이고, 너무 멀어지면 그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운 단풍이라도 한 가지 색으로만 물든다면 금방 싫증이 날 것이다. 다양한 나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한데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절묘한 색의 조화가 우리를 가을 숲으로 이끄는 것이다. 떡갈나무가 오색영롱한 단풍나무의 변신을 부러워하며 주눅 들지 않듯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누구나 나무처럼 자존감을 잃지 않고 당당했으면 싶다.
오색단풍의 아름다움 속엔 여름의 폭염과 비바람을 견딘, 자연의 산고를 이겨낸 승리자의 환희가 담겨 있다. 하지만 단풍의 비범함은 따로 있다. 제아무리 고운 단풍도 화려함을 고집하지 않는다. 찬 바람이 불면 낙엽이 되어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단풍으로 누린 호사를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낙엽이 소멸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순환의 과정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형기 시인은 '낙화'란 시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다. 꽃이나 단풍이나 ‘때’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모든 일의 끝은 또 다른 일의 시작을 의미하듯 ‘때’는 시작과 끝이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울이 멀지 않다.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듯 밖으로만 내닫던 눈길을 거두고 내 안을 찬찬히 살필 때가 된 듯하다.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