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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337)] 진정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한다

군인이나 경찰관, 소방관과 같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억제하도록 훈련받는다. 처리되지 않은 공포와 슬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쌓인다.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장갑차.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군인이나 경찰관, 소방관과 같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억제하도록 훈련받는다. 처리되지 않은 공포와 슬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쌓인다.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장갑차. 사진=뉴시스
미국 드라마 'S.W.A.T.'는 2017년 시작한 시리즈로 로스앤젤레스 경찰 특수기동대의 임무와 대원들의 삶을 그린 미국 범죄 액션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시즌3 제18화의 제목은 '낙인(Stigma)'이다. 화려한 총격전이나 범인 검거보다 경찰관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정신적 상처를 다룬 에피소드다.
제18화의 주인공은 한때 SWAT팀을 이끌던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작전 중 비무장 흑인 청소년에게 총을 쏜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고 술에 의지한다. 잠결에 아내를 범인으로 착각해 다치게 하면서 부부관계마저 파탄 난다.

아내는 상담을 권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자신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평생 지켜온 강한 경찰관이라는 정체성도 무너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견디는 것을 강함이라고 믿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나약함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술과 분노, 불면과 고립의 모습으로 그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자살예방 상담전화에 전화를 걸었다가 1분도 되지 않아 끊는다. 살고 싶어 도움을 청하려는 마음과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 것이다. 그는 결국 권총을 들고 해안가로 향한다. 옛 동료들이 그를 찾아낸다. 한 대원이 위기 협상 기법을 사용해 설득하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대원에게 그 기법을 가르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다루려는 기술이 아니었다. 동료들은 마침내 기술적인 설득을 내려놓고 진심을 말한다.
“우리는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주변 사람들이 짐을 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남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실패한 지휘관이나 짐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소중한 동료라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그는 마침내 총을 내려놓는다.

그를 살린 것은 명령도 논리도 아니었다. 자신의 고통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며 “당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준 진정한 관계였다. 사건이 끝난 뒤 SWAT 대원들은 상담자와 개별적으로 면담한다. 처음에는 자살하려고 한 동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점차 자신들도 두려움과 죄책감·무력감을 경험해왔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특히 평소 가장 침착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던 대원이 뜻밖의 고백을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자신이 맡을 것으로 기대했던 지휘관 자리를 다른 대원에게 내주었을 때 자신도 총을 들고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군인이나 경찰관, 소방관과 같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억제하도록 훈련받는다. 위급한 현장에서 두려움과 슬픔을 잠시 뒤로 미루는 능력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 문제는 현장에서 유용했던 감정 억제가 일상에서도 계속될 때 생긴다. 처리되지 않은 공포와 슬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쌓인다.

더구나 이런 조직에서는 상담받는 것이 나약함이나 직무 부적격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이 일을 할 자격이 없다”, “동료들은 다 버티는데 나만 약하다”, “상담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승진과 보직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라는 두려움이 도움을 가로막는다. 주인공이 두려워한 것도 고통 자체만이 아니라 고통을 드러낸 자신에게 찍힐 낙인이었다.
그러나 약하고 불안할 때가 있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있다. 병에 걸리거나 직장을 잃을 때, 사업에 실패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낼 때 누구나 흔들린다. 자녀 문제와 부부 갈등으로 무너질 수도 있고,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삶이 공허하고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부모는 자녀 앞에서, 지도자는 구성원 앞에서, 교사는 학생 앞에서 늘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 지도자나 상담자처럼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도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담의 목표는 인간의 약함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두려움과 슬픔, 불안과 외로움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다. 이런 감정은 위험과 상실을 경험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담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작업이 아니라 안전한 관계 안에서 그것을 인정하고 표현하며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상담을 받고 나서도 삶의 어려움은 계속될 수 있다. 다시 불안하고 흔들릴 수도 있다. 상담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 자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도움을 받아 다시 균형을 찾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약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 때문에 삶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힘든 사람에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렵게 마음을 열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중요하다.

“그 정도 일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

“다른 사람들은 더 어려운 일도 잘 견딘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된다.”

이런 말은 격려처럼 들리지만 상대방의 고통을 사소하게 만들고 다시 침묵하게 한다. 약함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조롱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약함을 말하는 사람에게만 용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가족과 친구, 동료와 상사도 다른 사람의 약함을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성급하게 충고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저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기보다 공감하며, 혼자 견디게 하기보다 곁에 머물러야 한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곁에 있겠다.”

이런 말이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람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사람을 절망에서 구하는 것은 때로 대단한 해답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견뎌주는 한 사람이다.

군인이나 경찰관, 소방관에게 상담은 직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정이 아니다. 다음 임무를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심리적 장비 점검이다. 총기와 차량, 방탄복과 소방 장비는 정기적으로 점검하면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점검하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장비를 방치하는 셈이다. 조직도 상담받은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제공하고, 지휘관과 선임자부터 자신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인에게도 상담은 심각한 문제가 생긴 사람만 받는 특별한 치료가 아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지치고 관계가 어려울 때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증거다.

'S.W.A.T.'의 주인공은 자신이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야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도 자신에게 구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대원들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약함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 강한 사람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금 힘들다”, “나는 두렵다”,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따뜻한 위로와 공감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도 강한 사람이다. 오늘은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지만, 내일은 내가 그 손을 필요로 할 수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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