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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소설(小雪)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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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났다. 창밖에는 아직도 가을이 상영 중이지만 가을이라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머지않아 눈은 내려 온통 세상을 하얗게 덮을 것이다. 이미 설악산엔 눈이 내려 쌓이고 서울에도 첫눈이 흩뿌렸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처럼 첫눈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 시인이 “경지 정리가 잘 된 수백만 평 평야를/ 흰 눈이 표백하여 한 장 깨끗한 원고지를 만들어 놓았다”고 표현했듯이 눈이 내려 쌓여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지워 만든 순백의 원고지 빈칸에 설레는 마음으로 나의 문장을 적어 넣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아름답지만 너무 짧다. 갈수록 가을은 짧아져서 오는가 싶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단풍을 탐할 틈도 주지 않고 불쑥 들이닥친 추위에 저마다 시린 손을 부비며 꽁꽁 옷깃을 여미기에 바쁘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으로 세상이 어수선해도 자연은 인간처럼 허둥대지 않고 다음 계절을 향해간다. 매화는 추울수록 맑은 향기를 피워올리고, 자작나무 수피는 겨울이 깊을수록 하얗다 못해 은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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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나무 열매들은 잎이 다 스러지고 난 뒤에야 더욱 붉은빛을 발한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나무 가지 끝의 홍시가 그러하고, 찔레나 산수유 열매, 산사나무, 백당나무 열매가 그러하다. 그 열매들이 붉은빛을 발하는 것은 숲속의 새들이나 다람쥐, 청솔모 같은 동물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다. 그들의 눈에 띄어 허기진 속을 채워주고 대신 자신들의 씨앗을 보다 멀리, 보다 넓게 퍼뜨리기 위한 나무들의 전략이다.

무언가에 쫓기듯 앞만 보고 종종걸음치게 되는 겨울 문턱이다. 내 몸의 들이닥친 추위에 급급하느라 마음이 팍팍해진다 싶으면 나는 종종 숲속의 붉은 열매들을 떠올리곤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삶은 끊임없이 주고받는 베품과 나눔의 연속이다. 만약 그 열매들의 나눔이 없었다면 푸른 숲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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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성 시인 ‘가네코 미스즈’가 쓴 ‘참새의 엄마’라는 제목의 짧은 시가 있다. “어린아이가 새끼참새를 붙잡았다. / 아이의 엄마가 그걸 보고 웃고 있었다. / 참새의 엄마도 그걸 보고 있었다. /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보고 있었다.” 새끼참새를 잡은 아이와 그 엄마는 즐겁지만 어린 참새와 참새 엄마는 얼마나 애가 탈까. 인디언 격언 중에 여섯 의자에 다 앉아 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탁자를 빙 둘러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데 앉는 의자에 따라 풍경도 다르고,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의자에 앉아 본 뒤에야 비로소 현명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추운 사람이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할 때, 세상엔 비로소 온기가 돈다.

“편지를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그리운 것들을 위하여/ 올겨울 길고 긴 편지를 써야겠다// 내가 나에게 써야겠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세상의 그리운 것들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박남준의 ‘겨울 편지를 쓰는 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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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연일 수천 명대의 확진자와 수백 명의 위중증 환자가 속출하는 모두가 힘든 시기다. 나무가 잎을 떨구어 스스로 제 시린 발등을 덮어주듯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흰 눈이 내려 세상이 깨끗한 원고지로 바뀌면 세상의 모든 그리운 것들을 위해 길고 긴 편지를 쓰자.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로 하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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