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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가을 산에서 노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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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찬비가 내리고 있다. 가을비는 한 번 내릴 때마다 벼가 한 섬씩 줄어든다는데 올가을은 유난스레 비가 잦다. 문득 며칠 전 산길에 마주쳤던 들꽃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가을 향기를 싸목싸목 풀어놓던 노란 산국, 감국, 보랏빛 쑥부쟁이와 개미취, 자주쓴풀, 분홍의 물봉선과 꽃향유 등…. 들꽃들의 이름을 하나씩 입속으로 되뇌는 동안 내 안에도 가을 꽃향기가 은은하게 스미는 듯하다. 저마다의 뜨거움으로 후끈하게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찬비에 젖어 소슬하게 지고 있을 것만 같다.

틈만 나면 꽃을 찾아 산과 들로 쏘다니는 나를 보고 그 이유를 물을 때마다 나는 '자연은 위대한 도서관'이라고 했던 헤르만 헤세의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꽃을 보는 일은 자연이란 도서관에서 시를 읽는 일과 같다고. 굳이 헤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연은 인간이 쓴 그 어떤 책보다 더 깊이 있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하늘이 만든 글자 없는 책, 무자천서(無字天書)'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봉선의 씨앗 하나에도 삶의 진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한해살이풀인 물봉선은 단단한 씨앗 속 강한 생명력으로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따뜻한 햇볕의 기운으로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우고, 여름에는 뜨거운 더위 속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잘 키워 서늘한 가을이 되면 햇살에 잘 여문 열매를 바닥에 흩어놓고 어김없이 다시 올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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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의 안색을 살피며 산길로 접어들면 제일 먼저 여기저기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들국화가 나를 반긴다. 감국, 산국, 구절초, 개미취, 쑥부쟁이는 있어도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지구상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 꽃들을 뭉뚱그려 들국화라 부르면 감미롭고 그윽한 가을 향기가 한꺼번에 코끝을 맴도는 것 같아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꽃에 눈길을 주며 걷다 보면 발밑에 도토리가 밟혀 발이 자주 미끄러진다. 그러고 보니 다람쥐들의 귀한 겨울 양식인 도토리를 생산하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도 저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참나무라는 이름 아닌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런데도 굳이 그들의 고유한 이름을 알려 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궁금한 게 많아지는 것처럼 이름을 알고 특성을 알면 그만큼 자연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사전을 찾듯이 새로운 꽃을 만나면 야생화 도감을 펼쳐놓고 찾아보기도 하고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면서 꽃 이름을 알아가는 것은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각별한 기쁨이다. 감국과 산국을 구별하고,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알아본다는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닐지라도 알고 나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마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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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은 노년에 청량산에 올라 '讀書人設遊山似(독서인설유산사), 今見遊山似讀書(금견유산사독서)'란 글을 남겼다. "사람들이 책 읽는 것이 산에 가는 것과 같다더니, 산에 가는 것이야말로 책 읽는 것과 같구나."라는 의미이다. 그런가 하면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는 박용래 시인은 구절초를 두고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마디마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라고 노래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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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꽃을 보고 그 이름 때문에 친구와 옥신각신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같은 꽃이라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 꽃의 크기나 색 등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미심쩍으면 카메라에 담아 와서 조용히 확인해 보면 될 일. 그보다는 물들어가는 가을 숲에서 향기 짙은 꽃들을 보며 가을을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근사한 일이 아닐까 싶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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