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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진은영 ‘가족’과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제대로 되면 ‘정치’가 되지만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거꾸로 흘러간다. 그렇다. ‘정치’가 아니고 그저 ‘치정’이 될 뿐이다. 국가도 그렇지만 가족이란 공동체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성인 공자는 일찍이 말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논어의 ‘안연’편 )

이진우 기자

기사입력 : 2021-02-12 11:02

가족 / 진은영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The Milkmaid)', 17세기,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The Milkmaid)', 17세기,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해는 다해 경자가 떠났다. 정월 초하룻날, ‘설날’이 왔기 때문이다. 우리들 곁에, 2021년! 신축이 펼쳐졌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의 그 해. 경술년에 천재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이 태어났다.

만약에 이상이 요절하지 않고 환갑의 나이를 맞이했다면 1970년(庚戌年)에 가족이 모여서 잔치를 열었을 터이다.

경술년(庚戌年, 1970년생) 시인들의 운명애! 사용설명서


한강·문태준·김선우·최금진·손택수·심보선·김행숙·진은영…… 이들이 경술년에 출생한 시인들이다. 지금, 대한민국 시단을 거의 이끌면서 좌지우지하고 있다. 어엿한 중견시인으로 꽃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이 땅에 피워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뜨겁고 두터운 마니아 독자층을 자랑한다.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졸업한 진은영(1970~ ) 시인은 비교적 늦은 나이 서른하나(2000년)에 정식 데뷔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첫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진은영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이 그것이다.

앞의 시 ‘가족’이 거기에 삐죽 앞쪽에 보인다. 이 시는 추석이나 설날의 명절이 해마다 다가오면,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는 타이밍이 되면 내 마음 속 상자에서 습관처럼 자꾸만 꺼내진다. 나와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지난 세월을 아프게 돌아보게끔 시가 안내하기 때문이다.

한강, 문태준, 손택수 시인을 나는 인연이 닿아서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밥도 같이 먹었다. 심지어 설왕설래, 말도 몇 가고 오거니 했다. 애독자 팬으로서 나에겐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것은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다. 그때도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낀 게 하나쯤 있다. 첫 인상이 차분하다는 것. 기운을 아무렇게나 발산하는 그런 숫기는 없는 대신에 조금은 느릿느릿 굼뜨긴 한데 뒷심은 좋다는 것.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내성적이면서도 사람됨이 수더분하다는 것.

뒤늦게 알았다. 1970년 출생의 비밀을 말이다. 말하자면 경술년. 즉 천간의 경(庚)은 오행 중에 금(金)이요, 지간을 차지하는 술(戌)은 토(土)를 말함이니, 땅속 깊이 묻힌 금의 기운이 아주 왕성한 해에 태어난 것이다. 그랬으니 첫인상이 그렇게 보인 거라고. 나는 지금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아무튼 사주팔자 지간에 ‘술(戌)’이란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작가로서 재주가 선천적으로 대개는 없다고 보면 된다. 후천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한다면 혹 모를까.

그것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만세력에 자기 사주를 넣자. 조회하자. 그러면 바로 답이 곧 보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경술년 시인들은 사주팔자 지간에 술(戌)이 적어도 하나 이상일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의 최고봉인 시(詩)를 잘 쓸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났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도, 아예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소설가, 평론가, 기자, 칼럼니스트 등으로 하향(下向)이 될 밖에. 참고로 내 사주엔 술(戌)이 하나다. 일주에 있다.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다행 아닌가. 시인은 나, 못 되었다. 하지만 나도 글 좀 쓴다. 내 팔자를 스스로 알고 잘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웃음)

가족이란 수상한 신세계


진은영의 시 ‘가족’은 평범하다.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구성원의 삶의 일터. 즉 현장인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의 존재 가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의 화자가 처한 입장이다. 화자가 퇴근 후, 집안으로 들어와서 가족(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 자매 포함)과 만나면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서 “집에만 가져가면/ 꽃”과 같이 보기 좋았던 ‘나’는 기가 죽는다. 집안 분위기로 숨이 점차 막혀서 자기 맘대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화분”에 갇힌 딸(꽃)이 되고 만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존재로 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때문에 밖에선 그렇게 펄떡이고 발랄하고 빛났던 화자인 ‘나’는 오아시스가 아닌 사막에 버려진 신세로 전락한다. 대개 자녀 순서상 첫째가 아니고 막내도 아닌 둘째에게서 자주 벌어지는 현상이다. 첫째는 장녀라서, 막내는 어리다고 해서 사랑을 받는 것에 비해 둘째의 위치는 자녀의 입장에서 좀 더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진은영은 가족 구성원에서 자녀 입장으로 보자면, 차녀일 것이다. 결코 장녀와 막내라면 저런 시를 쓸 수 없다. 이 때문이다.

“다 죽었다”

일부러 행간을 벌인 다음에 시인은 “다 죽었다”로 시를 끝맺음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두 가지 의미로 시어가 읽혀서다. 하나는 ‘나’의 기분이 다 죽었다, 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또 하나는 ‘나’와 관계된 ‘가족들’을 향한 울부짖음과 저항의 몸부림으로 마사지가 함축되어서 뜻이 전송된다. “다 죽었다”라는 마지막 시어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 시에 우리가 관심을 갖거나 애정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라고 했다면 나는 낙담하고 실망했으리라. 하지만 시를 다시 잘 살피자. 분명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라고 했다. 이러니 나는, 겅중겅중 기뻐할 밖에. 시인의 세심한 배려(//)가 그 지점에서 아주 돋보인다. 시의 전문, 그 텅 빈 여백에 다 예컨대 (너희들)이라고 쓰고 “다 죽었”어 식으로 말하고 나면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물러날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닌 신세계가 될 것이 자명하고, ‘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은 더 이상 무관심과 질시의 대상이 아닌 쉼표와 느낌표의 순기능을 작동하게 될 것이 뻔하다.

가족은 ‘제대로 된 집안’을 말함이다. 말하자면 고전 논어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 ‘부부 자자(父父 子子)’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남들이 우리 가족을 마침내 거꾸로 읽게 된다. 욕처럼 들릴 것이다. ‘족가’는 집안이라고. (웃음)

克己復禮, 爲仁 (극기복례, 위인)

자기를 이겨내 예(禮)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인(仁)’이라고 했다. ‘인’은 두 글자로 말하자면 ‘사랑’이 되기도 하고 ‘미움’이 되기도 한다.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

(그를) 사랑하면 살기를 바라고, (그가) 미우면 죽기를 바란다. 이는 보통 인간이 가지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심리이다.

제대로 되면 ‘정치’가 되지만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거꾸로 흘러간다. 그렇다. ‘정치’가 아니고 그저 ‘치정’이 될 뿐이다. 국가도 그렇지만 가족이란 공동체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성인 공자는 일찍이 말했다. 다음이 그것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논어의 ‘안연’편)

그런 의미에서 진은영의 시 ‘가족’은 부모의 도리, 자식이 된 입장을 두루 살피게 되는 철학적인 담론을 제시한다. 가족의 밖과 안이 집에서 빛이 나도록 어두운 그늘진 그 서늘함을 낱낱이 파헤치며 보여준다. 안팎에서 ‘나’를 빛날 수 있도록 그 길을 제시하며 안내한다.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왜 죽는가, 그 원인을 우리는 시를 통해서 마침내 마주치게 된다. 마주쳐서 이제 빛나지 못하게 만든 원흉들을 “다 죽었다”고 복창하면서 싸우고 이겨내서 아버지(혹은 자식)인 ‘나’로 돌아와서 자리를 되찾자. 그러면 말(극기복례, 위인)이 되는 거다. 그런 거다.

인턴, 가족이 되는 기간의 필요성


미국 코미디 영화 <인턴>(2015년 作)을 나는 안방에서 킥킥대며 봤다. 정식 직원이 되기 위한 창업 1년 반 된 온라인 의류회사 수습사원 과정을 밟아가는 4명의 남자 인턴 중에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이 등장한다.

의류회사 CEO의 이름은 ‘줄스’(앤 해서웨이)이고 나이는 30대, 딸 하나를 둔 엄마이고 남편이 있는데 남편이 전업주부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남편은 딸의 유치원 친구 엄마와 바람이 나고 이를 안 줄스는 실망을 넘어 자책을 하고 절망의 입구까지 들어간다. 이 영화는 두 가지 메시지를 관객에 제시한다.

하나는 취업 시장에서 나이 제한의 어리석음을 꼬집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여성의 경영 능력이 가지는 독창성과 열정, 아울러 사회에서 여성 기업인이 갖게 되는 성차별을 코믹하고 예리하게 연출한다. 연출자는 낸시 마이어스라는 중년 여성 감독인데 <왓 위민 원트>, <로맨틱 홀리데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아무튼 여주인공 줄스는 회사에서 보자면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열정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집에만 가”면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위치가 전락한다. 그녀의 꿈과 열정, 이상과 능력 등이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 혹은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다는 자책의 이유 등으로 줄스의 경영자로서 능력, 즉 꽃들이 있는 화분은 점차 시들어만 가서 딱 죽기 일보 직전이다. 이를 우연히 운전기사를 담당하면서 경험 많은 벤이 알게 된다. 그러면서 벤과 줄스가 친구 같은, 가족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는 스토리가 어쩐지 진은영의 시를 자꾸 생각나게 만들었다.

회사이고 가정이고 뭐고 “다 죽었다”고 우리가 생각할 즈음, 반전이 일어난다. 즉 영화의 막판에 이르게 되면 “다 죽었다”가 아니라 줄스 주변의 모든 관계가 “다 살아난다”로 막을 내린다. 젊은 자식들만 있는 회사에서 유일한 아버지 같은 벤 덕분에 일궈낸 쾌거! 그런가 하면 전문 경영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실은 있음에도 불구하고(벤의 주장) 자기(여주인공)를 믿지 못해서 흔들려야만 했던 줄스가 다시 열정을 되찾는 과정의 흥미로움! 마치 두 주인공은 부녀(父女) 같은, 가족 같은 찰떡의 궁합을 보여줬다.

미국 코미디 영화 ‘인턴’(2015년)의 한 장면.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코미디 영화 ‘인턴’(2015년)의 한 장면.


이 영화의 명대사. 울고 있는 줄스에게 벤이 손수건을 건네면서 말했던가.

“손수건은 상대방에게 빌려주기 위한 겁니다.”

저 말이 긴 어둠을 몰아내는 한 줄기 새벽의 빛과 같이 다가왔다. 전율처럼 느껴졌다. 영화처럼, 마음을 움직인 그림이 하나 있다. 유명한 서양 그림이다.

네덜란드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우유 따르는 여인>이 그것이다. 그림을 설명하면서 미술평론가 유경희 작가는, “서양미술사에서 빛이 던지는 시적 감흥을 이렇게도 섬세하고 참신하게 묘사한 화가는 없었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미술사학자 이진숙 작가의 해설은 이렇다.

창으로 흘러 들어온 아침 빛은 조심스레 방 안을 채운다. (중략) 화가는 이 벽에 남아 있는 작은 못이나 못 자국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그렸다. 이 크고 작은 흠집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았던 사소한 흔적들이다. 여인은 붉은색 치마에 노란 상의, 푸른색 앞치마를 둘렀다. 빨강, 노랑, 파랑의 순색을 사용하면서도 그림을 야하게 하지 않는 고전적인 감각이 그림에 기품을 더한다. 그중 그림을 압도하는 색은 앞치마와 식탁보 위에 쓰인 선명한 울트라마린 블루다. 울트라마린 블루는 준보석인 청금석에서만 구해지는 값비싼 안료로, 성화나 신분이 높은 사람을 그릴 때만 사용되는 재료였지만, 화가는 이 소박한 장면을 위해 눈부신 울트라마린 블루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은 이렇게 가장 위대한 것이 되었다.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 33쪽 참조)

The Milkmaid,


우유를 따르는 여인! 혹은 우유를 따르는 하녀?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면서 원제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한참 고민했다. ‘MAID’의 뜻은 ‘처녀, 여인’도 맞고 ‘(집안의 일을 거드는) 하녀’도 맞다. 그래설까, 전문가들의 책들을 뒤적이면 ‘여인’이라고 단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하녀’로 본 사람도 있었다.

예컨대 미술사학자 이진숙은 ‘하녀’로 번역했고, 미술평론가 유경희와 작가 조안나는 ‘여인’으로 저서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 제목을 달았다.

나는 ‘여인’으로 보고자 한다. 이유가 있다. ‘여인’으로 읽으면 자기의 집안에서 식구들을 위해 묵묵히 엄마로서 우유를 따르는 것이 되지만, ‘하녀’로 그것을 해석하자면 상전을 위해 무표정한 얼굴을 한 하녀로서 우유를 따르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꽤 크다. 하녀의 입장에서 빛은 단지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시그널이 되지만, 여인의 입장에서 빛은 집안일, 죽임의 반대말 ‘살림’으로 아름답게 자리가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서른의 나이, 여자들은 과거의 엄마, 처녀로서 나, 더불어 미래의 엄마까지 보게 될 것이다. 저것이 과연 행복인가?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가족’이란 말이 제대로 들린다면 ‘여인’으로 읽을 것이고, ‘가족’이란 말이 제대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자신을 ‘하녀’의 입장으로 확대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엄마가 왜 그렇게 가족을 위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겼는가, 하는 질문을 할 줄 안다면 집안이, 가정이 다 평온해질 터이다. 하지만 질문을 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명절이 반복되고, 가족 모임이 중노동 같더라고 하더라도 ‘행복한 순간’의 빛은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서른 즈음’의 여성들이 꼭 읽어야 할 시와 그림, 영화까지 나는 소개했다.

마흔이 지나고 쉰의 나이가 되면, 남녀를 따질 것 없이 모두, 이런 시! 한 편의 시가 어쩌면 더 꽝꽝 언 가슴을 녹여내며 울릴 것이다.

식구 / 박제영

사납다 사납다 이런 개 처음 본다는 유기견도

엄마가 데려다가 사흘 밥을 주면 순하디순한 양이 되었다

시들시들 죽었다 싶어 내다버린 화초도

아버지가 가져다가 사흘 물을 주면 활짝 꽃이 피었다

아무래도 남모르는 비결이 있을 줄 알았는데,

비결은 무슨, 짐승이고 식물이고 끼니 잘 챙겨 먹이면 돼 그러면 다 식구가 되는 겨

‘가족’이 모이고 ‘식구’가 함께 하는 명절! 설 연휴가 코로나 탓에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깝다. 매우 아쉽다!

“끼니, 잘 챙겨 먹고 있니?”

가족이 모이지 않고, 식구들이 밥상에 함께 앉을 수 없으니 부모가 이번 명절에 자식들에게 안부 문자를 많이 보낼 것 같다.

“엄니, 설 연휴 지나고 코로나 풀리면 꼭 시골집에 갈라요. 우리 걱정 마쇼.”

이런 게 바로 “부부 자자(父父 子子)”이다. 정치(政治)가 아니라 정치(情致)라는 거다.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2003.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 민음사, 2015.

유경희 <창작의 힘>, 마음산책, 2015.

조안나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마로니에북스, 2019.

박제영 <식구>, 북인, 2013.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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