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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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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좀처럼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힘겹게 2021년이란 터널을 겨우 지나왔는데 신축년 새해는 희망의 빛은커녕 오히려 더 길고 어둔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으로 인심이 흉흉해져 가는데 설상가상으로 북극 발 한파까지 들이닥쳐 세상이 온통 냉동고 속이다. 게다가 모든 약속은 취소되고 새로이 약속을 잡을 수도 없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한 요즘이다. 하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듯이 생은 지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걷기다.

근사하게 표현하면 산책이라고 할 수 있는 '걷기'는 특별한 장비나 준비가 필요하지 않아 좋다. 기껏해야 운동화 끈이나 단단히 조여 매고 집만 나서면 되기 때문이다. 집 가까운 곳에 산이 있어 지난해엔 자주 산을 오르내리며 숲을 관찰하곤 했는데 잎도, 꽃도 모두 사라진 이 혹한의 계절엔 굳이 숲을 고집하지 않는다. 무작정 집을 나선 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숲길을 걷기도 하고, 때로는 중랑천에 나가 물가로 날아오는 철새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연일 수백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건강하여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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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만 여겨졌던 일상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는 요즘은 버티기만 해도 대단한 것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제때 밥 먹고 제때 잠을 자며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니 생겨난 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란 말도 있듯이 요즘은 그냥 버티기만 해도 정말 대단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제는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딱히 목적지를 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걷다 보니 도선사 입구까지 다녀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은 인도 위엔 아직도 눈이 덮여 있다. 눈 밟히는 소리가 제법 듣기 좋다. 파도에 쓸리는 몽돌 소리 같기도 하고, 장마철 맹꽁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

딱히 운동이라 할 것도 없는 가벼운 산책에 가까운 걷기이지만 추위를 이기려 걸음의 속도를 빨리 하니 장갑을 낀 손에 서서히 열감이 느껴졌다. 꽁꽁 싸맨 이유도 있겠지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동안 혈액 순환이 좋아져서 체온이 올라간 덕분이다. 도로변의 인도를 따라 걷다가 방향을 틀어 산길을 걸었다. 찻길을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숲에 드니 자동차의 소음이 사라진 탓일까. 나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숲의 고요를 흔들고 있다. 그렇게 나의 숨소리에 집중하며 걷다 보면 집안에 있을 때 복잡하던 머릿속이 맑아져 온다. 걷기가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오롯이 나 자신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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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 그런지 도선사 입구엔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푸른 솔가지 사이로 희끗한 눈을 이고선 인수봉이 보이는 공원을 지나 일부러 인적이 뜸한 계곡을 따라 걸었다. 명랑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던 계곡은 온통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던 물줄기도 그대로 얼어붙어 빙벽이 되었다. 지금은 그 무엇으로도 깰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얼음이지만 그 얼음장 아래에는 여전히 물이 흐를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오면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계곡의 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명랑하게 흘러 갈 것이다.

돌아오는 길엔 소나무 아래 흰 눈에 반쯤 덮인 채 석양을 쬐고 있는 맥문동 초록 잎을 보았다. 이 혹한의 계절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은 맥문동, 참으로 강인한 생명력이다. '초록이 희망'이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버터플라이 허그(butterfly hug)는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교차하여 나비 모양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듬어 안아주는 것을 말한다. 눈 속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맥문동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다독이며 견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엄혹한 시절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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