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머니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어린 친아들을 밥을 굶기고 학대를 해 죽게 내버려둘 수 있을까?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은 정말 이럴 때 쓰는 단어인 듯하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비록 대상과 행동 그리고 결과 면에서 다를지언정 그 바탕에 흐르는 심리적 기제는 동일한 행동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계모도 아닌 친어머니가 어린자식에게 배고픔과 고통속에 방치해 사망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전위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하나님이 직접 지은 사람이 아담과 이브이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그 후 낳은 자식이 가인과 아벨이다. 가인과 아벨 둘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지만 하나님은 형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신다. 화가 난 가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 동생을 돌로 때려죽인다. 이 일로 가인은 벌을 받고 다시는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야기를 요약하면, '가인(甲)은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乙)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 화를 동생 아벨(丙)에게 풀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성서 속에만 일어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또는 바로 우리 집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있는 가정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아버지가 형보다 동생을 더 예뻐한다면 형(甲)은 당연히 아버지(乙)에게 화가 날 것이고, 동생(丙)이 미울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화를 내면 '불효자(不孝子)'라는 낙인이 찍히고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화를 참고 있다가 아버지가 안 보이는 으슥한 곳으로 동생을 데리고 가 욕을 하거나 때리면서 분풀이를 할 것이다.
이런 행동기제는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도 나타난다. 아마존 유역에 사는 한 원주민 부족은 대문 밖에 개를 키운다. 그리고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개를 때리면서 화를 푼 후 집에 들어간다. 이들(甲)은 밖에서 다른 사람(乙)에게 화를 풀지 못하면 애꿎은 가족들(丙)에게 분을 풀게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화풀이 당하는 개도 불쌍하지만, 부족들의 입장에서는 애꿎은 가족들에게 분을 푸는 것보다는 개를 때리면서 화를 풀고 가족들과는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인면수심이라는 말 이럴 때 쓰는 단어 심리적 기제는 동일한 행동 종종 발생
이런 현상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당사자에게 직접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가인이 자신의 제사를 거부한 하나님에게 직접 화를 내며 그 이유를 따질 수만 있었다면 아벨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종로에서 뺨을 때린 사람에게 맞서 같이 뺨을 때리거나 응당한 화를 냈다면 구태여 한강에서 눈을 흘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위계(位階) 질서를 강조하는 권위주의적 분위기나 문화에서 더욱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아버지의 권위를 강조하는 가족문화에서는 당연히 형제간의 갈등이 더 자주 일어난다.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는 형이 만만한 동생들에게 분풀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당한 동생들은 형에게 불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형에게도 대들지 못하게 하면 밖에 나가서 만만한 힘없는 친구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정치문화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은 임금이 아니다. 단지 임기동안 국정을 효율적으로 잘 이끌어달라고 국민의 위임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정해진 임기를 마치면 평범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치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것이 마치 임금에게 반대하는 역적의 행동으로 몰아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감히 대통령에게 반대하다니...."하는 말 속에는 이미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는 절대 반대하거나 대들지 못한다는 엄한 규율이 있다는 생각이 나타나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자신의 불만을 감추고 충성심을 드러내기 위해 규율을 어긴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필요 이상의 처벌을 강조하는 것이 함께 나타난다.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이 현상을 잘 보여준다. 모든 자식들에게 똑같이 떡 하나씩을 주면 공평하다. 그렇지만 고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오히려 미운 자식에게 떡을 하나 더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미워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와하는 척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는 '반동형성(反動形成)'이라고 부른다.
조직의 장(長)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과격한 처벌을 주장하는 추종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도 조직의 장에게 불만이 있지만 표현했을 때 오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충성심을 과장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진심으로 따르는 것인지 혹은 불만을 숨기기 위해 반대로 행동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이 지도자에게는 필요한 덕목이다. 반동형성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특징은 과장되고 강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역사상 수없이 많은 지도자가 직언하는 충신(忠臣)을 멀리하고, 아첨하는 간신(奸臣)에게 속아 정사를 그르치는 과오를 되풀이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