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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수레바퀴 아래의 삶…박명숙 안무의 '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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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안무의 '윤무'
춤이 수레바퀴를 단다/ 낮은 현실을 타고 지존의 숲에 이를 때까지/ 고즈넉한 광장 성당의 기도를 두 눈으로 가렸다/ 욕정은 핏대의 삼류정치처럼 끓어 올랐고/ 단맛에 중독된 권력자와 졸부들은/ 단두대의 제물처럼 파리한 눈망울과 이성을 거세당했다/ 부처의 번뇌가 스쳐 가는 열 개의 화두/ 그 낮은 곳에서의 오투(汚鬪)/ 얼굴 한 면에서부터 아래 춤으로 번져오는 햇살 가닥들/ 살아가고 숨 쉬고 존재하는 것들을 보석처럼 펼치면/ 평범한 일상이 보석처럼 빛난다/나는 오늘도 수레바퀴 옆에서 대추나무 염주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경자년 12월 4일(금)∼5일(토) 저녁 여덟 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서울댄스씨어터(총예술감독 박명숙 예술원 회원) 주최, 박명숙 안무의 2020년 <윤무>가 공연되었다. <윤무>는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의 희곡 ‘윤무’(Reigen, 1900)를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관계에 대한 실존의 문제를 10개의 에피소드로 엮어 춤으로 묻는다. 창녀에서 백작까지 열 명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욕구 충족을 위해 대상이 변주되고, 목표가 달성되면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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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는 빈사람들(Wiener)의 감정과 탐닉에 걸친 시리고 아픈 사랑 이야기를 세련된 문체로 묘사했다. 각 인물의 행동양식은 자기보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아 정복하기 쉽다고 여겨지는 상대에게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외면하지만 상반될 때는 초라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각 장면은 현재의 한국과 흡사하게 남성은 유혹성 아첨, 질투,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관되지만, 여성은 유혹에 대해 방어하거나 그렇게 비추어지기를 바랄 뿐 익명으로 시종을 하며 개인의 인적 사항에 관한 질문은 거짓이거나 무시된다.

오래된 것의 새로움; 발자취를 남긴 작가, 노련하게 움직임을 구사하는 안무가, 새로움에 눈뜨고자 하는 연출가, 그들은 고전이 되어 갔다. 옛 우물에서 물 깃 듯 과거를 끄집어내어 오늘에 안착시키면 동화적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속이 꽉 찬 해학이 과학적이다. 그것을 아이 스코핑(eyescoping)하도록 작가는 배려한다. 안무가는 강도 높은 춤으로 리듬감 있는 현장을 만들고, 연출가는 방향과 한계를 계산하여 호기심을 끌어올린다. 타협이 있을 뿐 억지는 없다.

구조화된 틀 속의 확장; 벗어날 수 없는 지시적 행동반경은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부른다. 견고한 틀은 무너지고, 인간의 원시적 본성이 살아난다. 프레임의 확장은 팝 아트를 궁중으로 진입시키는 듯한 풍파를 일으킨다. 엄숙함이 무너진 상태에서 바라보는 나신은 에덴의 동산으로 회귀하는 듯한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고고한 라틴 문자의 늪에서 대중소설로 임한 춤의 세계는 중세에서 현대로 곧장 넘어온 듯한 신선한 충격과 신천지를 여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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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평화; 파격적 부드러움이다. 평화와 전쟁은 같은 순환 고리 속에 병치한다. 순간의 선택이 부르는 폭력은 웃음소리가 없는 평화를 지향한다.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침묵할 뿐이다. 때의 씨줄을 타고 햇살은 각을 세우며 날줄은 추상적 사고의 틀을 놓는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존중하는 작가는 진공상태의 미세먼지와 청정 공기를 구분한다. 격정과 폭력 사이에 유영 같은 평화가 공존한다. 작용과 반작용이 반복되고, 오해가 없다면 그 틈새에 평화는 장착된다.

지배적 해설의 카리스마; 연극과 무용 사이, 극적 움직임은 반반 맛과 열정과 냉정, 강온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파격을 제공한다. 시대가 지나도 흥분이 일게 한다. 쿠바 시가의 마초적 매력과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적 투쟁의 공존 공간을 지배하는 해설은 카리스마적 톤으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해설자, 연기자들, 유화적 영상의 시각적 비주얼, 일렁이는 조명이 원형광장의 검투사들처럼 경쟁을 벌인다. 관객들은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작품에 집중한다.

메리홀과 코비드-19; 달콤한 인생을 만들어 내는 공연장 메리홀에도 미세먼지처럼 우한 폐렴이 내려앉고, 자유와 낭만, 학문적 예술 탐구를 즐기는 관객들과 연희의 주체자들을 불안으로 몰아왔다. 유쾌한 상상이 빗자루처럼 침울한 현실을 쓸어가면 섣달 초순은 원색의 기쁨이 반짝인다. 우울한 시대의 원색은 동화로 퀼트를 뜰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게 한다. 어두운 시절에도 무대를 지키는 춤 연기자들과 주변 예술가들은 살아있는 검투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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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가 된 열 명의 인물; 사연을 단 등장인물들은 개개인의 환경조사서와 내면을 환히 비추며 관객들 자신과 비교해볼 것을 권유한다. 창녀, 병사, 하녀, 젊은 남자, 젊은 유부녀, 유부녀의 남편, 귀여운 아가씨, 작가, 여배우, 백작은 해설자의 설명을 넘어 자신을 드러낸다. 엄청나게 늘어난 현대적 몸짓을 살피노라면 <윤무>에서의 움직임은 고전적 가치를 소지한다. 대중예술의 클래식화는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 박명숙이 있었다.

사랑의 실체가 없는 인간관계; 그들에게 덧없는 흔적은 상처였다. 단지 거래만 있었을 뿐 사랑을 건질 추억은 없었다. 전투 같은 현란한 색채, 추상은 뿌려져 있었다. 구상과 비구상의 모호한 뜻에 담긴 행위는 그라피티 적 추상이었다. 작가는 응급실의 환자를 치료하듯 스쳐 가는 추상을 포집하여 자기 생각을 예술로 만든다. 자신이 환자로 상대했던 주변 인물을 극화하여 무대화한 것은 천기누설에 가까운 살아있는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일상은 예술이다.; 1) 창녀와 병사, 병사와 하녀(영혼의 상대를 찾는 여성들, 제도적 폭력의 상징인 병사 사이의 물화, 익명화한 인간관계), 2) 하녀와 젊은 남자, 젊은 남자와 젊은 유부녀(사랑을 통한 신분 상승이나 자기 구원은 가능성) 3) 유부녀와 남편, 남편과 귀여운 아가씨(남녀 사이의 근원적 낯섦으로 인한 소통 부재, 사회적 성역할로 인한 자기소외), 4) 귀여운 아가씨와 작가, 작가와 여배우(남녀 간의 역할 교환을 통한 사랑의 가학, 자기 파괴적 속성, 일방적 필요에 의한 사랑의 공허함) 5) 여배우와 백작, 백작과 창녀(사랑은 남녀와 신분,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섹슈얼리티는 자유와 유리된 죽음의 상태를 닮은 불안의 가능성)

박명숙을 각인시킨 안무작 세 편; 끝없는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를 동인(動因)으로 한 <에미>(1996), 배달겨레의 타의적 러시아 유민사를 다룬 <유랑>(1999), 삶의 수레를 그린 <윤무>(2011)는 해마다 해와 장소를 바꾸어 가며 공연되었다. 올해의 윤무(2020)는 원작 탄생 120년의 나이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삶의 수레바퀴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춤의 진정성은 탄탄한 기본기에 기인한다.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던 <안티고네>는 오스트리아 출신 오토 브루사티 연출, 최성옥 안무작이었다. 박명숙 무용극의 전이(轉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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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적 주제의 실존적 존재; 대본·연출 주용철, 공연예술감독 류형준이 참여한 작품은 의도한 드라마투르기를 보여 주었다. 서(序)와 후기(後記)는 사유와 분석의 근거의 틀이다. 프롤로그(현대소비사회의 이면과 인간의 욕망, 남녀 간의 허위의식과 이중성을 풍자), 에필로그(우리에게 사랑은 현실인가, 환상인가? 실재인가, 허구인가? 끝없이 지속되는 생존경쟁. 욕망과의 투쟁. 세상사 자체가 연극이며 유희일지도 모른다는 전환기적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표현)는 팬데믹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원작의 상상을 타고 넘어 탄탄한 구성으로 <윤무>를 직조해낸 박명숙의 솜씨는 조용한 진격과 기습 같은 아이디어를 사용하면서 빛난다. <윤무>를 빛내준 창녀(서해린), 병사, 백작(박영대), 하녀(오하영), 젊은 남자(김희준), 유부녀(이수윤), 남편(황찬용), 귀여운 아가씨(김현주), 작가(진현우), 여배우(박자인) 역의 월등한 기교와 놀라운 열연은 고전을 새로운 감각으로 읽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경자년 <윤무>는 인상적 기억과 함께 의미 있는 한 편의 수작(秀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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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박명숙

박명숙(서울댄스씨어터 총예술감독 겸 상임안무가)은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단 서울댄스씨어터(Seoul Dance Theatre)를 1978년 창단한 이래 30여 년 동안 약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창단 초기 우리의 삶과 죽음, 고대사, 시가를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 「초혼」(81), 「그날 새벽」(89),「고구려의 불꽃」(90), 「황조가」(91) 등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바 있다. 박명숙은 이경자의 소설을 무용화했던 작품 「혼자 눈뜨는 아침」(93) 과 우리의 어머니상을 모티브로 여성의 문제를 공시적·통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에미」(96), 러시아 유민사를 소재로 한「유랑(99)」등의 작품을 통해 연극, 영화적 표현기법을 다양하게 조화시킨 총체적 현대무용 형식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0년대 이후 박명숙은 한국현대사와 가족의 문제를 여성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바람의 정원(08)」과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희곡을 모티브로 인간의 욕망(성적)에 대해 장르를 넘나드는 형식과 과감한 춤으로 표현한 「윤무」(11) 등 오늘의 문화환경에 적합한 독창적인 형식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 후「낙화유수」(14),「잠들지 않는 숲」(14-16), VR Media Performance 「시간과 방을 위한 네 개의 풍경」(16), 「여행」(17), 「춤 네 개의 시선」(17) 등의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우리나라 창작 춤에 끼친 노력을 인정받아 2013년‘ 제5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연극 ‧ 영화 ‧ 무용부문)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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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작품

종이꽃(1980)/ 초혼(1981)/ 몇 개의 정적(1982)/ 잠자며 걷는 사람, 잠자며 걷는 나무 (1984)/에덴의인간(1985)/ 아홉 개의 구름과 꿈(1985)/ 결혼식과 장례식19(86)/ 풀잎환상(1986)/ 시간기행19(87)/ 그 누구의 것도 아닌장미(1988)/ 그날새벽 (1989)/ 고구려의불꽃(1990)/ 황조가(黃鳥歌)(1991)/ 혼자 눈뜨는 아침 (1993)/ 에미(1996)/ 유랑(1999/ 춤추는 돌 거시기한 삶 (2005)/ 바람의정원(2008)/ 윤무(2011)/ 황금가지(2013)/ 낙화유수(2014)/ VR·Media·Performance- 시간과 방을 위한 네 개의 풍경(2016) 외 다수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없는 기자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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