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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한국판 뉴딜’, 뉴딜정책은 무엇?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0-09-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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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이 ‘한국판 뉴딜(New Deal)’을 들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2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정부가 나서서 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며 “고용창출 효과가 큰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단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견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부처에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대국민연설에서도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미래 선점투자”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교육·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도시와 산업단지, 도로와 교통망, 노후 SOC(사회간접자본) 등 국가기반시설에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스마트화하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사업도 적극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판 뉴딜정책’ 얘기가 나오자 언론은 “여권이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이 뉴딜 정책을 계기로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한 미국 민주당의 ‘뉴딜동맹’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현 집권세력은 ‘뉴딜동맹(혹은 뉴딜연합)’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 예(例)가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펴낸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라는 책이다. ‘미국의 뉴딜연합(1928~1936)’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이 책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크리스티 앤더슨 시러큐스대학교 맥스웰스쿨 명예교수의 《The Creation of a Democratic Majority, 1928~1936》를 번역한 것이다.

이철희 전 의원은 이 책에서 “뉴딜은 진보를 표방한 정치세력이 다수 연합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 큰 변화를 이루어낸 정치전략이자 기획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권한 진보가 해야 할 일은 권력과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이 진보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결속하는 한편, 새로운 갈등・균열 또는 프레임을 설정해 정치・사회적 질서를 재편함으로써 다수 연합을 구축하는 것”이라면서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실업자를 구제하는 것으로 뉴딜을 받아들이는 수준의 이해로는 결코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만들어낸 뉴딜연합이라는 정치지형이 완전히 흔들리고, 미국의 정치지형이 다시 한 번 근본적인 변혁을 겪은 것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에 이르러서였다. 흔히 뉴딜연합이 30년을 갔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반(半)세기 가까이 유지됐다. 사실 루스벨트는 미국의 정치학자 프레드 그린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노동자, 노동조합 및 소수민족들의 강력한 연합의 리더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집안은 부계(父系)로는 18세기 초, 모계(母系)로는 17세기 초 미국의 모태(母胎)가 되는 플리머스 식민지 개척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명문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대지주이자 철도 회사 경영자였다. 12촌 아저씨는 제26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미국판 귀족집안인 셈이다. 루스벨트는 명문 사립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다 해군차관, 민주당 부통령 후보, 뉴욕 주지사를 거쳐 1932년 제32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시설의 설계 가상도. 자료=한국석유공사, 공주대 지질환경과학과이미지 확대보기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시설의 설계 가상도. 자료=한국석유공사, 공주대 지질환경과학과

루스벨트가 1932년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1929년 10월 29일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가(株價) 폭락으로 촉발된 경제대공황 때문이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1932년 11월 대선에서 미국 국민들은 당시 뉴욕 주지사던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루스벨트는 투표율 기준으로 57%, 선거인단 투표 기준으로는 89%(48개 주 중 42개 주에서 승리)의 압승을 거두었다. 정부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이탈 투표’의 전형이었다. 1997년 외환(外換)위기의 충격 속에서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당선된 것과 흡사하다.

루스벨트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후보수락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여러분에게 미국 시민들을 위한 뉴딜을 약속합니다. … 저를 도와주십시오. 단지 표를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개혁에 승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뉴딜’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가까운 것이었지, 구체적인 정책 콘텐츠를 갖고 있지는 못했다. 다만 후일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실시한 일련의 뉴딜정책들은 흔히 ‘3R’로 요약된다. ‘구호(Relief・실업자 및 빈곤층에 대한 구호)’ ‘회복(Recovery・재정 지출과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한 경제회복)’ ‘개혁(Reform・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의 강화, 친노조 정책,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등)’이 그것이다.

1933년 3월 취임한 루스벨트는 바로 의회에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했다. 이후 100일 동안 미국 의회는 대공황 극복과 관련된 일련의 법률안들을 통과시켰ㄷ. 민주당 의원들은 법안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통과!”를 외쳐댔다. 그 중 ‘뉴딜연합’의 형성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정책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일자리 창출 등과 관련된 정책들이 있다. 전국산업부흥법(NRA)을 제정하고, 이 법에 따라 공공사업청(PWA)을 만들어 연방정부 주도의 대규모 SOC사업 등을 벌였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대규모 SOC사업을 예고하는 것과 유사하다. 전국산업부흥법에 따라 연방긴급구호청(FERA)이 설립되어 실업자・극빈자에 대한 구호도 실시했다. 민간자원보존단(CCC)을 설립해 17~25세 청소년들을 준(準)군대식으로 편성해 재조림(再造林)・치수(治水)사업 등에 투입해 일자리를 제공했다. 문재인 정부가 실시하는 청년일자리 사업, 거리 청소 등 노인일자리 사업 등과 흡사하다.

농민들을 겨냥한 정책도 있었다. 정부 재정으로 농민들의 유휴(遊休) 농지와 잉여 농축산물을 매입해 농축산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사업을 담당하는 농업조정국(AAA)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테네시 계곡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전력(電力) 및 비료 생산, 국민휴양지 조성 등을 담당하는 테네시밸리개발공사(TVA), 농민들의 대출(모기지)을 지원하는 농장모기지자금지원법 등도 농민층,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인 남부 농민들의 지지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주택소유자자금대부공사(HOLC)는 예금 및 주택저당권을 보호함으로써 서민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미국의 역사가인 케네스 데이비스는 “뉴딜정책은 1776년(독립혁명)과 1860년(남북전쟁)의 경우처럼 미국에 일대 전환기를 마련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방정부의 혁명적 변환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제까지는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만 그 영향력이 국한되었던 정부가 이제는 누구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기관이 된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부작용도 따랐다. 뉴딜정책으로 만들어낸 일자리들은 ‘좋은 일자리’는 아니었다. 《잊혀진 사람》의 저자 애미티 슐래스는 “뉴딜정책으로 만들어진 비상 일자리들은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동안만 지속되는 단기적인 일자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일자리에 정착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자리들은 어떤 정치인의 관심이 지속되는 동안, 즉 몇 달 동안만 존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뉴딜정책의 큰 부분을 차지한 대규모 SOC사업들에 대해서도 “사실 인프라 지출이란 우리가 선심성 정부보조금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더 그럴듯한 이름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뉴딜정책의 대표적 산물 중 하나인 전국산업부흥법은 공공사업 외에도 생산, 유통, 최저임금, 최저 근로시간 등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는 사업주들은 해고로 대응했다. 인디애나주의 한 여성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7년 5개월 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됐다’고 하소연하는 편지를 루스벨트에게 보냈고,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명목임금을 전반적으로 올려서’ 국가 소득을 증가시키려는 생각, 다시 말해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 이미 193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셈이다.

하지만 뉴딜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은 지지부진했다. 《잊혀진 사람》의 저자 애미티 슐래스는 “루스벨트는 경제적 측면에서 일을 추진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더 잘 아는 분야인 정치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뉴딜연합 출현에서부터 ‘레이건 혁명’까지는 거의 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 기간에 ‘리버럴 시대’에 대한 피로감이 축적되고, 그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보수 이념을 정비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보수운동이 전개됐다. ‘한국판 뉴딜연합’ 아래서 희생되는 것은 유리지갑을 가진 보통 사람들(C)이 될 것이다. ‘한국판 뉴딜연합’이 지배하는 세상은 C가 A, B, D에게 영원히 착취당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진짜 잊힌 사람’을 각성시키고 조직화하는 것이야말로 ‘한국형 뉴딜연합’에 대한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파제가 될 것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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