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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나무에게 위로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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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유난히 길었던 장마철 비구름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울감이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생이란 게 원래 조금은 우울한 것이라 해도 우울모드가 이처럼 오래 지속하기는 처음인 듯싶다. 어느 철학자가 말하길 모드 전환을 하기 위해선 세 가지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 세 가지는 다름 아닌 사람‧장소‧시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울 때라 사람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가장 쉬운 방법은 장소를 바꾸어 보는 것이다. 나는 기분전환을 위해 작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가까운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진화 기간에 99.5%를 자연환경에서 보낸 우리 인간에겐 바이오필리아(bio philia)가 있다고 한다. 바이오필리아란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에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는 학설로 “자연의 장소와 소리를 선호하고 다른 생물에게 호기심을 갖거나 끌리거나 최소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선천적인 성향”을 가리킨다. 몸이 아프면 엄마의 품속이 그리워지듯 마음이 지칠 때 내 발걸음이 숲으로 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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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장마라는 지루한 장마가 지나가는 동안 숲을 찾는 발걸음이 뜸했다. 어쩌면 마음의 감기라는 내 안에 깃든 우울증은 오래 숲을 떠나 있는 동안 생겨난 일종의 향수병이었을 수도 있다. 숲길엔 꺾인 나뭇가지와 떨어진 나뭇잎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 마이삭이 남긴 흔적이다. 코로나 때문인지 인적도 뜸하여 홀로 사색하며 걷기에 딱 좋다. 나는 길을 벗어나 잠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보드라운 흙이 나의 몸무게를 거부감 없이 받아준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를 가만히 안아보기도 하고 나무의 수피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나무에 등을 대고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흙냄새, 풀 향기, 나무 향기가 마스크로 답답하던 콧속으로 마구 밀려든다.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나를 옥죄던 긴장감을 풀어주며 편안하게 한다.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물소리가 나는 계곡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의 물이 제법 불어나 물소리가 크고 명랑하다. 크고 작은 바위틈을 지나며 때론 폭포를 이루고 소를 만들며 흘러가는 물소리는 천상의 음악처럼 감미롭다. 어쩌면 태아 때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양수의 리듬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숲에 관한 많은 연구가 우리가 녹색공간에 많이 노출될수록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 완화, 면역력 강화, 공격성 감소, 기억력과 인지능력 향상, 항암효과 증가 등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녹색공간(공원, 숲, 개발되지 않은 호수, 해변)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1㎞ 넘는 사람들은 둘 사이의 거리가 300m 미만인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느낄 확률이 평균 42%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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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붙박인 채로 평생을 살아가는 나무에 비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잠시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 싶다. 비바람 눈보라에도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나의 엄살이 심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행여 나처럼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삶이 너무 팍팍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가까운 공원이나 숲을 찾아 나무에게 말을 걸어보실 것을 강추한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둘레길 입구의 화원에서 소담스레 꽃을 피운 국화 화분이 나란히 늘어서 가을 향기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잠시 꽃구경을 하다가 작은 국화 화분 하나를 사 들고 집으로 왔다. 물을 흠뻑 주어 창가에 놓으니 금세 집안 가득 가을 향기 자욱하다. 모쪼록 저 꽃이 시들기 전에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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